< 총련동포 고향방문 > 1. 의미-전망

22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되는 재일 `조선인총연합회`(총련) 동포들의 `1차 고향방문`은 남북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과 마찬가지로 `사상과 이념이 서로 다른 동포의 재결합`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특히 남북 이산가족이 대체로 45년 해방에서 50년에 발발한 6.25전쟁 전후에 생겨난데 비해 총련 동포 문제는 해방전인 30년대에 일제(日帝)의 강제 연행 등으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비극의 정도와 그 해원(解怨)의 파급효과가 훨씬 크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간에 흩어진 민족의 재결합의 시발이라면 총련 동포들의 고향방문은 해외 동포들의 범민족적 재결합의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번 방문은 사상 처음으로 대한적십자사 초청 형식의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됨으로써 지난 75년부터 재일 대한민국민단(민단)이 추진하고 있는 `조총련 모국방문 사업`과 성격을 달리한다.

이번 사업과 관련해 총련측과의 협의를 맡았던 대한적십자사 박정규 이산가족대책본부장은 `과거의 형식에서 탈피해 `범정부 차원`에서 이뤄졌다는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총련이 희망하는 한 언제든지 총련 동포들의 방문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련 역시 이번 방문을 `1차 방문`이라고 명시하면서 올해안으로 추가 방문을 추진할 뜻을 밝히고 있다.

총련 단체 차원의 방문이 계속 추진되는 것은 앞으로 총련 동포들의 한국 국적 전환을 겨냥한 민단 차원의 총련계 `모국방문사업`이 더 이상 불필요하게 됐음을 뜻한다.

총련을 통한 남측 고향 방문 길이 열린 만큼 총련계 동포들이 굳이 민단을 통해 남측을 방문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이번 `총련 동포의 남한 방문`을 `75년부터 시작된 조총련 소속 동포들의 모국 방문 사업을 공식화, 합법화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도 두 개 사업의 단일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국적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을 빚었던 해외 동포들의 고향방문이 정치색을 배제하고 흩어진 가족의 재결합이라는 의미의 인도적.민족적 차원에서 풀릴 것임을 예고한다.

남북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으로 `월북자`에 대한 적대감이 서서히 불식되듯이 총련계에 대한 적의가 서서히 사라져 가족들간의 유대를 확인하는 것은 이념과 체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민족이 결합할 수 있음을 상징한다.

다만 월북 이산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총련 이산가족이 남측 가족들과 결합되기 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절차상의 문제로 총련 동포들의 고향방문은 개인의 자유로운 방문이 아닌 `임시 여권` 형태의 단체 방문 형식을 띨 것으로 관측된다.

또 `총련계 모국방문사업`으로 단일화된 창구를 놓지 않으려는 현지 민단의 반발도 만만치 않고 남측 정서 또한 아직 과거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민단 서울사무소(소장 김형석 전 경찰청 고문) 관계자가 20일 `북측이 과연 우리에 대한 적대감을 해소하고 통일의 길에 섰는지가 불분명해 당분간 민단과 총련의 관계는 경쟁관계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한 것도 그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관계가 지속되고 남측의 방침의 변함이 없는 한 총련과 민단의 대립이나 남측 정서의 문제는 남북관계 진전과 정비례해서 조금씩 풀려 나갈 것으로 보인다.



< 총련동포 고향방문 > 2. 추진경과

총련 동포들의 남측 고향 방문은 지난 7월말 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과 북은 총련 동포들이 방문단을 구성하여 고향을 방문할 수 있도록 협력하며, 이와 관련한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고 합의한데 따른 것이다.

당시 총련 동포들의 고향 방문은 남측 입장에서 전격적인 것이었지만 북측은 이 문제를 이미 오래 전부터 검토해 왔다.

장관급 회담이 열리기 한 달 전인 6월 30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때마침 진행되는 1차 남북적십자회담과 관련해 `이산가족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대결의 구도가 진정한 화해구도로 전환되어 나가는 속에서 우리 재일동포들의 문제도 순차적으로 풀려 나갈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또 장관급회담 북측 대표인 전금진(全今振) 내각 참사는 8월말 조선신보와의 회견에서 총련 동포 고향 방문 문제에 대한 `상부`의 특별 지시가 있었음을 밝힌 바 있다.

이로부터 한 달 뒤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은 이 문제를 적극성을 보였고 남측은 전향적으로 북측의 제의를 수락함으로써 70년 가까이 풀지 못했던 총련 동포들의 고향 방문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장관급회담 합의문이 발표된 다음날 서만술(徐萬述) 총련 부의장은 `조국 광복 55주년인 8월 15일에 고향방문단 1진을 보내고 싶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장관급회담 결과에도 불구하고 총련 동포들의 고향방문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 75년 이후 `총련게 모국방문단사업` 주체인 민단의 반발이 거센데다가 현지 공관 역시 관행에서 벗어난 본국 정부의 결정에 발빠르게 움직이지 못했으며 총련측 역시 `임시여권` 형식을 수락하려 하지 않았다.

민단의 반발은 총련이 민단을 제치고 남측 정부와 직접 협의하게 됨으로써 총련 동포 고향 방문 사업이 민단과 총련으로 이원화되거나 총련으로 이관될지 모른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었다.

총련측 역시 `방문증`을 발급하는 형태로 자유로운 방문을 허용해 줄 것을 요구했고 총련 일각에서는 민단이 총련계 모국방문 사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총련 입장은 조선적(朝鮮籍)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 취득을 요구하는 민단의 모국방문 사업을 총련 와해를 위한 공작으로 인식해 온 터였고 총련 단체 차원의 방문이 허용된 이상 굳이 민단의 모국방문 사업이 계속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총련의 8.15 방문 계획은 무산됐고 결국 남측 정부는 명목상 민간기구인 대한적십자사가 초청하는 형식으로 `범정부차원`에서 이 문제를 풀었다.

총련측도 남북 장관급회담 합의 실천을 계속 지연시킬 수 없다는 판단에서 더이상 `임시비자` 문제나 민단 사업 중단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고 한적 입장을 수용했다.

한적과 총련 양측은 8월말 날짜와 인원에 대해 개략적으로 합의했고 9월8일 양측이 동시에 `1차 총련동포 고향방문`(22-27일) 일정을 발표했다.

한적측은 `추석절 방문도 고려했으나 남측내 `민족대이동`으로 총련 동포들의 방문 사업이 원활히 진행하기 힘들고 시간적으로 촉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측은 19일 5박6일간의 방문 일정을 확정했고 총련측은 20일 방문단 63명의 명단을 남측 정부에 통보했으며 20만의 조선적을 대표하는 고향방문단 1진 63명은 22일 꿈에도 그리던 `남측 고향`에 첫 발을 내디딘다. (연합200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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