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는 실체는 있는데 그 뿌리가 모호한 우리 그림이다.
수 만점 이상의 그림이 남한과 북한 그리고 일본에 남아있지만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방식으로 발전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조선 후기 영, 정조시대 ‘자비대령화원’ 제도에 의해 촉발되어 고종황제 때까지 근 100여 년의 세월 동안 우리백성들의 애환과 희망, 풍류와 생활을 함께 해 온 민화는 근대를 거치는 동안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이유는 간단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왜곡되고 은폐되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우리 문화재, 역사서를 강탈해 간 것과 같이, 민화로 보이는 것은 시골집까지 뒤져 모조리 빼앗아 갔다.
그 이후 민화는 떠돌이 화공의 저급한 싸구려 미술로 치부되었고 미술계나 화단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생아 취급을 받았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뜻있는 지식인들에 의해 민족문화운동이 일어난다.
풍물, 판소리, 탈춤, 마당놀이, 생활한복, 전통무예 따위가 민족민주운동과 연결되어 복원되고 발전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일련의 민족미술계열의 작가들에 의해 민화는 다시 등장한다.
민화는 후불탱화와 함께 민족전통미술의 상징이 되었다.
대학가에는 ‘민화반’ 혹은 ‘미술패’라고 부르는 수많은 미술동아리가 만들어졌다.
민화의 요소가 가미된 수많은 걸개와 판화와 선전물들이 창작되었고 집회 현장이나 대학가 주변에 뿌려졌다.
작가들은 민화의 민중성에 주목했지만 우리 전통미술에 ‘전투적인 민중성’은 없었다.
백성들의 소박한 욕망에 기초한 그림에 대부분이었다.
시대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직접적인 투쟁성이나 민중성을 가지고 있는 서구의 비판적 사실주의나 중국의 판화 혹은 북한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필요로 했다.
미술운동의 한 흐름으로 시작했던 ‘민화운동’은 더 이상 의식 있는 젊은 작가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작품으로 창작되지 않았다.
민화가 다시 우리 사회에 등장한 것은 21세기, 2000년대이다.
2002년 월드컵 신화와 민주정부의 등장, 남북관계의 발전 그리고 한류열풍은 국민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드높였다. 당연히 우리 전통과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공중파 방송의 대하 사극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여기에 편승하여 허구가 가미된 젊은이들 취향의 퓨전사극 드라마가 상한가를 쳤다. 또한 영화 ‘서편제’에 이어 ‘왕의 남자’와 같은 사극영화의 흥행이 이어졌다.
민화는 바로 조선시대를 다룬 사극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소품을 통해 일반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왕이 있는 궁궐은 기품 있는 ‘일월오봉도’나 ‘궁중모란도’가 장식했고, 힘 있고 권세 있는 양반집에는 고급스런 책거리그림과 연화도의 병풍그림이 들어갔다.
고급 기생집이나 안채에는 화려한 화조도와 매화그림, 문자도, 나비그림, 까치호랑이그림 따위의 화려한 민화로 장식하는 것이 연출되었다.
대한제국 시절, ‘자비대령화원’ 제도가 이유도 불분명한 채 없어지고 일제에 의해 말살된 지 근 100년 만에 민화는 대중매체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민화를 연구하는 젊은 미술이론가도 생겨나고 민화박물관이나 교육기관, 전문미술가모임, 공모전 따위도 생겨났다.
미술경매회사에서는 조선시대 연화병풍그림이 수십억 원에 낙찰되고 패션이나 각종 상품디자인에 차용되면서 민화는 한국의 전통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떠돌이 화공의 천박하고 싸구려 그림으로 인식되었던 민화는 이제 고급미술이 되어 부잣집 거실을 장식하고 있다.

민화는 강렬한 색채와 화려한 장식성, 중독성이 강한 반복성을 가지고 있다.
일단 한 번 보면 눈과 마음이 끌릴 수밖에 없다.
민화의 내용은 남녀노소, 내외국인 할 것 없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에 기반하고 있으며 중국, 일본, 인도, 동남아시아의 상징과도 연결되어 국제성을 가지고 있다.
남북은 반세기가 넘도록 분단을 이어 오고 있다.
그 분단은 남북한 백성들 모두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남북한 모두 한민족으로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하지만 문화적 이질감은 점점 심해진다.
북한은 ‘조선화’라는 이름으로 자체적인 미술문화가 발전하고 있고, 우리는 서구의 미술을 수용해 관념적이고 조형 중심의 미술이 발전했다.
이 둘의 뿌리가 서로 다르기에 화합은 기대하기 어렵다.
남북의 통일은 우리 민족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합하는 일이다.
과거의 통합은 일제와 사대매국주의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은폐된 역사와 전통의 복원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민화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적 뿌리를 찾고 복원하기 위함이다.
화사한 채색중심인 북한의 ‘조선화’가 분명 민화의 영향과 자양분으로 발전했듯이,
민화에 대한 요즘 사람들의 관심과 유행도 민족미술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이다.
민화는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문화유산이고 민족 공동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연재하는 [아름다운 우리그림-민화]에서는 민화의 뿌리와 발전과정을 찾아 볼 것이다.
또한 민화 속에 녹아있는 상징과 의미를 살펴 조선말기 백성들의 정서가 현재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 지도 찬찬히 녹여볼 것이다.
민화의 조형성과 내용은 현대미술에 적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만큼 치밀하고 재미있다.
독자들과 함께 민화를 감상하면서 각 부분을 꼼꼼히 분석해 보고 숨겨진 의미를 찾는 일도 즐거울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많은 민화작품을 곁들여 보여줄 것이다.
무엇보다 민화는 특정 계급의 전유물이 아니라 왕과 양반과 백성이 하나로 연결되어 창조했던 민족공동체문화라는 것이다.
혹 민화를 통해 남북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정서를 확인하여 통일시대 새로운 민족문화, 민족미술이 탄생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현재 작품활동과 전시기획 및 대중미술교육활동을 병행하고 있음.
개인미니홈피 -http://blog.naver.com/smynano
휴대폰-010-5546-0722
개인전
5회 개인전-부천문예전시관 2012
4회 개인전-경인미술관 2011
3회 개인전-부천문예전시관 1999
2회 개인전-Espace Artsenal-Paris 프랑스 파리1998
1회 개인전-21세기 화랑 1997
단체전
JAALA展(일본 동경), 동학 100주년 기념전(덕원미술관),
민중미술15년展(국립현대미술관, 두벌갈이전(관훈미술관), 하얀그림자전(경인미술관), 디지털회화전(세종문화회관 광화랑)
외 수십 회 이상의 단체전에 출품
디지털 애니메이션 제작
[물방울] 2002, [분단의 벽] 2004
저서
[북한미술이야기]-푸른나무 2003
[연필 하나로 내 얼굴 그리기] 2006
현 그림동아리[미술시간]www.misulban.com 대표강사
민족미술인연합 회원


말씀대로 그동안 왜곡되고 은폐되어 온 우리 그림을 바로 볼 수 있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