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우익 장관님께

장관님,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북측을 향해 '딱하다'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딱하다'는 표현의 의미를 알고 계신지요. 사전을 찾아보니 '사정이나 처지가 애처롭고 가엾다'라는 뜻이었습니다.

보통 우리가 상대의 처지가 불쌍할 때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며 쓰는 말이지요. 어찌보면 스스로 잘나지 않고서는 함부로 쓰지 않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런 말을 류 장관님이 사용하셨습니다. 장관님께서는 정부의 거듭된 대화제의에 무응답하는 북측의 태도를 두고 "딱한 국면이다. 북한을 위해서 딱하다. 남북관계 발전을 바라는 심정에서 딱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하셨죠.

이 발언은 지난 17일 '남북기본합의서 20주년 학술회의' 축사에서 "북한 당국은 대한민국에 대한 비방과 선전성동을 중단하고 이산가족 상봉 등 우리정부의 대화제의에 조속히 호응해 나올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는 불만에 이은 것입니다. 이제 북측 당국을 불쌍한 대상으로 바라보신 셈입니다.

어찌보면 장관님의 '딱하다'는 표현은 이해도 됩니다. 어제 싸운 친구와 화해하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그 손을 잡지않고 고집부리는 친구의 태도가 안타까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왜 싸웠는지. 어떻게 해야 친구의 마음을 돌려 놓을지 스스로를 되돌아 보지도 않은 채 무조건 '대화를 하자'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 아닐까요.

류우익 장관님은 취임 이후 '5.24조치'로 가로막힌 남북관계를 풀어보려고 '유연성'이란 카드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연초 이례적으로 직접 통일부 업무보고 결과를 발표하시며 '대화'를 제의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고구려고분군 산림병충해 방제를 위한 실무접촉',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을 제안하셨지요. 장관님의 끈질기 대화제의에 찬사를 보냅니다.

하지만 어떻하나요. 북측은 묵묵부답인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지난 2일 북 국방위원회 정책국이 발표한 '9개항의 공개질문장'을. 모르실까봐 다시 각인시켜드리지요.

△ ‘대국상 앞에 저지른 대역죄에 대한 사죄’, △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 의지 표명’, △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으로 더 이상 북을 헐뜯지 말 것’, △ ‘한미 합동군사연습 전면중지’, △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한 실천에 발을 잠글 것’, △ ‘반공화국(반북) 심리모략전 중지’, △ ‘북남협력과 교류 재개 용의’, △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호응’, △ ‘보안법 등 반민족적이고 반통일적인 악법들 철폐’

이는 북측의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과 관련해 우리 정부가 '조문'에 대해 정권과 주민 분리원칙을 내세워 상대의 가슴에 생채기를 냈죠. 그 '생채기'는 기억하시나요.

그마저 모르쇠로 일관하며 장관님은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게다가 9개항 중 첫 번째 '조문'에 대한 입장을 다시 정리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북의 입장을 해석하는 차원이다. 그런 시각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온당한 시각은 아니다"라고 묵살하셨습니다.

류우익 장관님,

장관님께서 9개항을 처참하게 짓밟으시면서 북측 당국과 대화하자고 할 때, 북측의 반응은 어떤 것인가요.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해 좋다고 하신 '고구려 고분군 산림병충해 방제를 위한 실무접촉'에는 일언반구가 없습니다. 지난달 31일 중국 쿤밍시에서 열린 '2012년 인천평화컵 국제유소년 축구대회'에 북측이 '5.24조치'를 이유로 불참했습니다.

그리고 민간 차원의 '3.1절 남북공동행사'는 우리 군의 해상사격훈련 때문에 물건너 갔습니다.

게다가 기대했던 남북 교향악단의 합동공연은 북측이 '정치적 이유'로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난데없이 프랑스와 협연하겠다고 하네요.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이게 다 '9개항' 묵살한 댓가 아니겠습니까. 아니 9개항 중 첫 번째 것이라도 어떻게 답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참으로 딱하십니다.

류우익 장관님,

민간창구를 이용하지 않고 정부가 직접 하겠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처음에는 정말 뭔가 해보려는 구나. 정부의 태도가 바뀌는구나 하며 속으로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민간창구를 배제한 채 무작정 손만 내밀고 상대가 잡아주지 않으니 이를 어찌합니까.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의 6.15 공동행사를 위한 실무접촉을 두고 장관님은 "혹시라도 정치적인 성격으로 흘려서 남북관계 또 다른 문제를 만드는 것은 좋지 않다. 민간단체의 정치적 활동은 자제를 당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조 대왕은 자신의 정적 심환지와 싸우고 틀어지다가도 아래사람을 보내 편지를 주고받고, 국정파트너로 함께 해온 사실은 알고 계시겠지요.

군신관계도 그러했듯 옛날 대감마님들은 서로 싸우다 다시 화해하려면 머슴이라도 먼저 보내 상대의 의중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여차저차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통크게 화해해 왔습니다.

하지만 류우익 장관님은 '9개항'을 묵살하고 대북 민간단체들을 이용하지도 않고, 무조건 대화만 하자고 하고, 그리고는 '딱하다'고 하시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류우익 장관님,

'묘수'를 쓰지 않으신다고 하셨지요. 혹시 바둑은 두실 줄 아시나요. 물론 '묘수를 잘 두는 것보다 악수를 두지 않아야 이긴다'는 말은 있습니다. 하지만 '악수'만 둘 바에는 '묘수'라도 써야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장관님은 '흔들리는 세계판'이란 바둑판에 '악수'만 두고 계십니다. 검은 돌만 먹으려고 무조건 쳐들어가는 '악수'가 뻔히 보입니다. 왜 내 '집' 하나 무너뜨리고 이기는 '묘수'는 생각하지도 않으십니까.

물론, 남북관계는 이기고 지는 게임은 아닙니다. 누가 먼저 통크게 마음을 쓰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9개항'을 무시하고 대화만 제의하는 '악수'를 벗어나십시오. 민간단체를 활용해서 대화의 길을 열어보는 '묘수'를 선택하십시오.

이산가족상봉 하는데 선례대로 식량 제공하고, 금강산 관광 재개하자고 한다고 해서 류우익 장관님이 그 자리에서 쫓겨나시겠습니까. 설령 지금 당장 쫓겨나신들 '박수'는 받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윗선 눈치 보느라 그렇게 못하시겠지요. 지금까지 그러하셨으니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류우익 장관님, 우리 장관님,

봄이 다가오는데 장관님의 마음만 '춘래불사춘'이니. 어떻하나요. 참으로 딱하십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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