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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술사에 민족의 기상 떨치려"오병학 대회고전 일본 도요하시시에서 개최
남상삼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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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2.15  14: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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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삼 (일본 삼천리철도 부이사장)


 

   
▲ 2월 7일부터 13일까지 일본 도요하시시의 미술박물관에서 재일동포 화가 오병학 선생의 미수를 기념해 미술전이 개최됐다. 전시회 개최 직전까지 그렸다는 대작을 오병학 화백이 직접하고 있다. [사진 - 최성일]

지난 2월 7일부터 12일까지 일본 혼슈 한 복판에 위치하는 아이찌켄 도요하시시(愛知県 豊橋市)의 미술박물관에서 재일동포 화가 오병학 선생의 88세(米壽)를 기리는 미술전이 개최되었다.

첫날 개회식에는 많은 동포들과 일본시민들, 화백을 따르고 칭송하는 미술애호가들과 지지자들이 참가하였다. 무엇보다도 이곳 거주 동포들은 정견과 단체 소속을 넘어 88세 노화백의 대회고전 성공을 위하여 자리를 같이 하였다.

주최는 오병학대회고전실행위원회. 위원장으로는 삼천리철도 결성 당시로부터의 이사, 기업가인 박태수씨가 맡았다. 작년 나고야시에서 먼저 한 화백의 미술전 이후 뜻을 같이 하는 재일동포와 일본사람들로 사무국을 꾸려 준비를 다그쳤다.

   
▲ 개회식에서 인사를 하는 박태수 실행위원장. [사진 - 최성일]

먼저 개회식에서는 일본 여당의 참의원의원 예산위원장 이시이 하지메(石井一) 선생, 나고야 출신 국회의원 곤도 쇼이찌近藤昭一) 선생으로부터 보내온 축전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도요하시시 사하라 고이찌(佐原光一) 시장이 개회식에 직접 출석하여 대회고전의 개최를 축하하는 인사를 하였다.

축사에서 시장은 “88세 고령에 그린 그림이 제일 크고 웅장할 뿐 아니라 젊음과 박력에 넘쳐있어 놀랐다. 재일동포들도 많이 사는 이곳 도요하시시에서 개최해준데 대하여 감사하고, 시민들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환영한다”면서 축사 후에는 화백 앞으로 다가가 깍듯이 절을 하며 화백의 손을 잡고 그 뜻을 표하기까지 하였다.

개회식의 소식은 일본의 대신문인 쮸니찌신문과 지역지들, 도카이TV 그날 뉴스로, 이어서 지역 유선방송을 통해서 거듭 방영되었다.

   
▲ 개회식 풍경.[사진 - 최성일]

소문은 소문을 불러 이틀째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다. 화백 스스로가 엮어가는 갤러리-토크(주제는 화백의 인생과 미술에 대한 신념, 그리고 작품해설과 질의응답 등)가 열린 마감 전날에는 400여명의 사람들로 붐비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 지역 동포들의 반응은 유달랐다. 한 동포는 이번 회고전을 위하여 화백이 준비한 대작 「가면무극」 앞에서 한참을 선 채 움직이지를 못했고 어떤 동포는 화백의 손을 뜨겁게 잡고는 고맙다고 몇 번이고 뇌이었다. 그리고는 전시장에서 옛친구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며 지나간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이 순간 이곳을 찾은 관람자들 사이에는 총련, 민단 하는 소속 단체나 주장은 사라졌다.

   
▲ 노화백을 친아버지처럼 보살펴온 삼천리철도 도상태 이사장(왼쪽)과 중의원 의원 곤도쇼이찌 선생. [사진 - 최성일]

일제시절 이곳 도요하시 지역은 군사요충지었다. 비행장과 무기관련 제작공장, 당시 동양최대의 도요까와해군공창(豊川海軍工廠)도 있었다. 또 그 수송을 위한 철도부설공사를 위하여 많은 동포들이 모였다. 그 속에는 고향에서 강제연행된 징용자들도 있었다.

조국이 해방되자 동포들이 사는 부락들에서는 만세소리가 울려퍼졌다. 동포들은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이웃을 아끼고 위하며 함께 살았었는데 전쟁으로까지 치달은 조선반도의 이념대립이 그 이후 동포사회를 가르고 찢어놓았다.

그래도 페허가 된 비행장, 군수공장에서 유년 시절 함께 놀던 기억과 서로가 크면서 만나면 그냥 술자리를 같이 하던 추억들은 이념으로 갈린 굴레를 벗어나 생활의 밑바닥에서는 가까운 존재들이었다. 어쩔 수 없이 따로 있어도 마음 한 구석에 늘 하나의 바람을 지니고 살았었다. 그러던 그들이 화백이 펼친 혼신의 대작 앞에서 만나 짜릿한 옛정을 되찾은 것이다.

일본 시민들의 반응도 좋았다. “서양의 유화기법에 동양의 정신을 융합한 독특한 작품세계”, “화백의 투혼과 코리어의 웅장한 기상에 압도되었다”고 절찬하였다

   
▲ 전시회는 재일동포는 물론 인본인들로 성황을 이뤘다. [사진 - 최성일]

회고전을 마치고 관계자들의 뒷풀이도 끝난 다음 날, 화백을 찾아 인터뷰를 청했다.

필자는 대뜸 이번에 발표한 대작에 담으려던 창작의도와 금후 목표에 대하여 물었다. 노화백은 조용히 그러나 신념에 찬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면 뒤에 가려진 민중의 압제자에 대한 분노와 앞날에 대한 희망,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동북아세아를 주름잡으며 활주한 기마민족, 오늘도 이어지는 민족의 기상을 표현하려 했다. 나는 일제시기 세잔느에 끌리어 화가가 되려 단신 일본에 왔다. 극심한 인권차별 속에서 고학을 하며 세잔느의 서양유화의 세계를 터득하려 했으나 결코 선인들의 모방으로 그칠 생각을 해본 일은 없다. 세잔느의 세계와 민족적인 정서와 기법을 융합하여 오병학의 세계 곧 세계미술사에 기여할 만한 독창적인 세계의 창조가 나의 목표다. 지금 어느 단계에 이르렀는가는 보는 사람들이 평하겠지만 남은 여생을 그 목표를 위해 바칠 각오다. 그리하여 통일된 조국의 국립미술관에 내 그림을 기증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참으로 이번 오병학대회고전은 분단된 조국의 남북 겨레와 재일동포 모두에게 하나의 문화를 계승한 한 겨레임을 깨치려는 화백의 신념과 숙원이 낳은 축제, 세계미술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기록하는 거사가 되었다.

<오병학 화백 약력>

   
▲ 작업중인 오병학 화백. [사진-호리 마사오]
1924년 조선 평안남도에서 출생
1942년 도일
1948년 도쿄예술대학 중퇴
1968년 문예춘추화랑에서 개인전, 이후 도쿄(東京).나고야(名古屋).오사카(大阪)를 중심으로 개인전을 개최
1990년 구라파 각국을 순방
1979년 옛 이야기 「금강산의 호랑이 잡기」 출판
2001년 「오병학화집」출판
2006년 서울 인사동에서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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