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우리 정부에게 이란산 원유 수입 감축을 공식 요구했습니다. 핵개발에 나선 이란을 제재하기 위해 동행하자는 것입니다. ‘저승사자’처럼 한국에 온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대북·대이란 제재 조정관은 17일 김재신 외교통상부 차관보와의 면담에서 “우리를 돕는 모든 파트너에게 이란산 원유 구매를 줄이도록 권고하고 있다”며 이같이 이란 제재 동참을 촉구한 것입니다. 말이 ‘권고’이지 사실상 ‘압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란산 원유가 우리나라 전체 수입 원유의 10%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란산 원유 수입 비중을 줄이면서 이를 대체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그 과정에서 물가가 뛰고 온갖 부작용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미국 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단계적으로 이란산 원유 수입 비중을 줄여나가기로 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날 미국 측과의 협의 직후 배포한 공동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 측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의 취지에 공감을 표하고 이란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가능한 범위 내 최대한 협력해 나간다는 의사를 피력했다”고 밝힌 것입니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굴복한 것입니다. ‘압박’의 증거는 미국 대표단이 우리 정부에게 자국의 국방수권법 내용을 설명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1일 발효된 미국의 국방수권법은 이란의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어떤 경제 주체도 미국의 금융기관과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이 법이 6개월 후 시행되면 우리나라와 이란 간 원유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따라서 국방수권법의 예외를 인정받으려면 이란산 원유의 수입을 ‘비중 있는(significant) 규모’로 줄여야 한다고 합니다.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미국의 횡포를 받아들인다면 이게 무슨 동맹관계이겠습니까?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게 있습니다. 다름 아닌 아인혼 조정관이 이란산 원유 구매 감축을 요구하면서 “이란과 북한 상황은 연계돼 있다”면서 “한 곳에서의 진전이 다른 곳에서의 진전을 돕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울러 그는 “이것이 이란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양국 정부가 긴밀하게 협력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습니다. 한마디로 ‘선 대이란 제재, 후 대북 제재’에 우리 정부더러 동참하라는 압력인 셈입니다. 미국의 대북 제재 횡포도 그렇지만 그 압박에 굴복하는 우리 정부의 나약함이 더 못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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