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호(87) 선생의 시와 사진으로 된 연재물을 싣는다. 시와 사진의 주제는 풀과 나무다. 선생에 의하면 그 풀과 나무는 “그저 우리 생활주변에서 늘 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풀이요 나무들”이다. ‘정관호의 풀 친구 나무 친구’ 연재는 매주 화요일에 게재된다. / 편집자 주
▲ 벽오동. [사진 - 정관호]
벽오동
봉황새가 깃을 트는 나무 사모의 정을 전하는 나무 초승달이 걸리는 나무 빗소리를 듣는 나무
그런저런 이야기와 얽히어서 남정네 정서를 다듬어 온 상서로운 나무로 구전되는 벽오동
그러나 눈밭에 그루 높이 서서 된바람을 이기고 견디는 그 파란 줄기에 손을 얹으면 전해오는 여인네 처절한 몸떨림
깊은 밤에 잠 못 이루고 어둠 속 홀로 몸을 뒤척이며 제 허벅지를 바늘로 찌른다는 과부의 원망에 찬 한탄
다섯 폭 가리개에 둘러싸여 서글픈 소리로 나직이 신음하는 저 씨앗 부딪는 소리를 들어보라
빈 들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 하늘을 날아가는 휘파람 소리 처마 끝을 흔드는 요령 소리
이파리 한 닢 바람에 날려 독수공방 어두운 문살에 스치면 그것은 또 한서린 님의 숨기척
사랑방 동쪽 담장께보다 안방 뒤뜰 장독대 곁이 어울리는 여인의 나무 청상 같은 벽오동.
▲ 벽오동, 꽃차례. [사진 - 정관호]
▲ 벽오동, 수피. [사진 - 정관호]
▲ 벽오동, 열매. [사진 - 정관호]
도움말
벽오동은 중국 원산인 갈잎큰키나무(落葉喬木)인데 줄기 껍질이 푸른색(碧色)이어서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데, 실지로 보면 녹색에 가깝다. 수피(樹皮)에는 세로무늬가 있고 이파리는 오동나무 잎 비슷하다. 가을에 열매가 꼬투리 모양으로 달리는데 익어서 갈라지는 속에 씨가 들어 있다. 바람이 불면 그것들이 달그락거리는 게 아주 특이한 느낌을 준다. 씨는 씹으면 아주 고소한 맛이 난다. 조경수로 널리 식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