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회장 등 민간 조문단 일행은 26일 오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조의를 표시하고, 상주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이는 지난 20일 정부가 담화문을 통해 북측에 조의표명과 함께 정부차원의 조문단 대신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유족에 대해서는 북측의 조문에 대한 답례로 방북 조문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밝힌 것이 성사된 것입니다. 물론 이는 정부가 장차 봇물 터지듯 나올 민간 조문단의 방북 요구에 대해 선수를 치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당국은 그동안의 ‘원죄’ 때문에 정부 조문단을 파견하지 못한다면 민간 조문단이라도 모두 보냈어야 합니다. 그게 ‘통일외교’인 것입니다. 민간도 정부와 함께 엄연한 통일세력의 한 주체인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의 이 같은 협소한 가이드라인은 민간 통일운동의 한 영역인 민간 조문단의 가치를 지나치게 얕본 것입니다. 당장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통일 관련 단체들이 민간 조문단을 구성했지만 정부가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대학가에서 분향소를 설치했지만 학교당국이 당장 철거했습니다. 조전도 정부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수리하겠다”고 했지만 ‘특별한 사유’를 달아 상당수는 ‘통과’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는 통에 코리아연대의 황혜로 공동대표가 정부의 승인 없이 조문방북을 하게 된 사태도 일어났습니다.

민간 조문단 불허, 분향소 철거, 조건부 조전 통과, 무단 조문 방북 등은 모두가 정부의 생색내기용 가이드라인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이때 아쉬운 게 ‘유연성’입니다. 사실 류우익 통일장관이 예의 그 ‘유연성’을 발휘하고자 했다면 이번 조문정국에서 민간 조문단의 방북을 대거 허용하는 조처를 취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말뿐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진정한 가치는 어려울 때 빛나는 법인데, ‘유연성’은 이번 조문정국에서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습니다. 남측의 대북 ‘진정성’을 시위하고 그간 대북 대결정책도 일거에 날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회장이 김정은 부위원장을 만나고 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면담한 것을 두고 북측이 남북관계 개선 메시지를 보낸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습니다. 섣부른 판단입니다. 북측은 특히 고인과 연고가 있던 조문객에 대해서는 예의상 특별대우를 하는 것일 뿐입니다. 북측은 보다 넓게 볼 것입니다. 북측은 “남측 조문단을 모두 받아들이겠다”며 “조의방문 문제는 북남관계 운명과 관련되는 신중한 문제”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민간 조문단의 방북을 사실상 모두 불허했습니다. 남측 당국이 민간 조문단의 가치를 폄하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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