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 13주년 기념일인 11월 18일 현대아산은 임직원 13명이 방북해 고 정몽헌 회장의 추모비 앞에서 조촐한 기념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7월 11일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사망 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길이 3년 넘게 막힌데다 금강산관광지구 내의 재산마저 북측에 몰수된 터라 기념식 분위기가 어떠할지는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금강산 관광이 막힌 지 1년을 넘겨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2009년 8월 16일 어렵사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해 “앞으로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구두약속을 받았고, 현대는 북측 아태위와 금강산 관광객 편의와 안전보장 등 5개항의 공동보도문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은 “관광객 피살사건의 진상규명과 신변안전 보장조치 마련, 재발방지 등의 조건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2년여가 지난 지금 전혀 엉뚱한 곳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국회를 방문해 “한미FTA 발효 3개월내 ISD 재협상”을 약속했고,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거쳐 ‘한미간 문서합의’를 요구하며 거부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한나라당은 마치 2년 전 자신들의 언행을 잊은 듯 “대통령 약속을 못 믿느냐”며 발끈하면서 국회 강행처리 수순을 예고하고 나섰다.

절대권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임기도 걱정없는 김정일 위원장의 금강산 관광객에 대한 신변안전 구두약속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듯이 내팽개친 그들이 이제는 임기라곤 1년 몇 개월 밖에 남지 않은 힘빠진 대통령이 구두로 한 약속은 왜 믿지 않느냐고 따지고 드는 꼴이다. 도둑이 매를 드는 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연인지 11월 17일(엄밀하게는 18일 새벽)은 우리 국권을 고스란히 일본에 넘긴 을사늑약 체결 106주년이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18일 “11월 18일 2시에 고종이 이토 히로부미에게 항복했던 날이었다”며 “한나라당이 다수의 힘을 믿고 밀어붙인다면 이근택, 권준형, 이지용, 박제순, 이완용 을사오적에 이어서 한나라당 내에 이 정부의 신묘오적이 탄생할 것”이라고 한미FTA 강행처리에 대해 경고했다.

또한 80여개의 민족단체들로 구성된 ‘민족자주역사대회 준비위원회’는 17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을사늑약 106주년을 맞아 일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통일부의 불허로 남북 공동호소문 채택.발표는 무산됐고, 개성에서 가지려는 남북 학술회의 역시 통일부의 불허 방침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 13주년을 맞아 고 정몽헌 회장의 추모비 앞에서 기념식을 가진 현대아산 임직원들과, 한미FTA 강행처리를 몸으로 막아나서야 하는 야당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들, 그리고 을사늑약 106주년을 맞아 일본대사관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가진 민족단체 관계자들은 혹시 우리 대통령이 ‘뼛속까지 친미.친일’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기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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