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 (세새상연구소 연구위원)
지난 9월 21일 2차 남북비핵화회담이 열렸다. 남측 정부는 회담의 목표를 “북한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의 중단”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발리에서 열린 1차 남북비핵화회담 직후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북미 대화를 공언(公言)하고, 북미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밟고 있는 이유 그리고 남측 역시 남북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나름의 행보’를 하고 있는 이유가 이 한마디에 오롯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측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의 중단은 지난 20년에 걸친 북미회담 그리고 6자회담의 성패 여부를 결정짓는 바로미터가 아닐 수 없다. 북측이 이미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함으로써 ‘북한 비핵화’의 1차 목표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모든 핵프로그램의 중단과 북한의 NPT 복귀’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미국은 체면을 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해 북측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가동시키고 있음을 공표함으로써 9.19 공동성명을 매개로 그나마 체면을 유지하고 있던 미국의 비핵화·비확산 정책은 파산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게다가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오바마 행정부가 정력적으로 추진해왔던 ‘전략적 관리론’은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미국으로서는 북측의 핵개발·핵확산 정책을 막아내지도 못하고, 한반도 군사관계를 관리하지도 못했다는 사실상 ‘이중의 실패’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바마 정부가 발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미국은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남북 대화와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미중 협력을 다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소극적 행보에 ‘인내력’을 발휘하며 끈질긴 설득과 압박을 통해 결국 이명박 정부로 하여금 남북 비핵화 회담에 나서게 했으며, 남북 비핵화회담이 끝나자마자 북미 양자대화를 추진함으로써 도산위기에 처한 ‘한반도 관리 정책’을 부활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비핵화회담을 “북한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의 중단”이라고 공표한 것은 남북 비핵화 회담이 미국 측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그리고 남북 비핵화 회담은 북미 대화와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로드맵으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음을 이명박 정부 스스로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 대화가 개최되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체면을 살리기 위한 북미 양측의 ‘선의’일 뿐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3년 넘게 지속시켜 왔던 ‘딴지 걸기’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음을 시인하고 6자회담 재개 프로세스에 동의하게 되었음을 2차 남북비핵회담은 보여준 것이다.
북측은 이미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에 나설 수 있음을 공약했다. 이는 북측이 그동안 6자회담 재개 조건으로 강조해왔던 미국의 제재 해제와 선 평화협정 논의 여부와 무관하게 6자회담에 나서겠다는 의사표현이다. 북측이 전제조건을 철회했다는 것은 북미 협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미국과 6자회담 재개와 6자회담에서 다루어져야 할 논의 주제가 합의되었음을 의미한다.
북미 사이에 6자회담 재개는 이미 합의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명박 정부 변수 외에 6자회담의 재개를 가로막을 장애물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 2차 남북비핵화회담을 통해 이명박 정부 역시 6자회담 재개에 동의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2차 남북비핵화회담은 6자회담이 재개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보여준 결정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 이 글은 새세상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주간통일동향 [통일돋보기 82호]에 동시 게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