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의 학자들이 평양의 모란봉 청류벽 일대에서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고주몽)의 기린굴(麒麟窟)을 발견했다고 재일 <조선신보> 11일자 평양발 기사에서 보도했다.

▲ 모란봉의 청류벽 일대에서 발견된 동명왕의 기린굴과 조천석. [사진-조선신보]
신문은 “고구려가 427년 수도를 고조선의 옛 수도였던 평양에 옮겨온 이후 평양의 중심인 모란봉(금수산이라고도 불렀음)에 동명왕과 관계된 여러 가지 전설들이 생겨나게 되었다”면서 “특히 동명왕이 타고 다녔다는 기린(麒麟)과 기린이 살던 굴에 대해 조선의 여러 역사책들에 기록되어있다”며 다음과 같이 기린굴 발굴의 신빙성을 더했다.

신문에 따르면, 고려의 역사서 ‘고려사’(지리지)의 서경(평양)항목에는 “을밀대는 금수산 꼭대기에 있다. 을밀대 아래에 층층으로 된 벼랑이 있는데 그 옆에 평양8경의 하나인 영명사가 있다. 그곳은 곧 동명왕의 구제궁으로서 그 안에는 기린굴이 있다. 남쪽에는 백은탄이 있는데 바위에서 조수가 오르내리는데 따라서 조천석(朝天石)이라고 한다”고 했다.

또한, 16세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평양조에도 ‘영명사’라는 항목에서 “금수산 부벽루 서쪽에 기린굴이 있다”고 했다.

나아가, 고려 말의 학자 이색도 자기 시에서 영명사 가까이에 있던 기린굴에 대하여 노래하면서 “기린마는 한번 갔다가 돌아오지 않으니 천손(동명왕)은 어디 가니 노니렀을고”라고 읊었다.

▲ 기린굴의 웃벼랑에 있는 ‘청류벽’이라고 새긴 글. [사진-조선신보]
신문은 “이번에 새로 발견된 동명왕의 기린굴은 모란봉의 영명사로부터 200m 거리에 위치한 모란봉 바위 쪽에 있다”면서 “거기에는 ‘기린굴’이라는 돋우새긴 글자가 있는 장방형의 바위가 놓여있고 그 뒤에 굴이 있었다. 굴은 무너져 형체가 약간 보일 뿐”이라고 소개했다.

아울러 신문은 “‘기린굴’ 바위는 잘 다듬은 장방형의 돌을 쪼아 만들었는데 글자의 마모상태가 오랜 것으로 보아 고려시기쯤에 만든 것으로 보아진다”고 추정했다.

이와 관련,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조희승 소장(교수, 박사)은 “동명왕전설이 깃든 기린굴의 발견은 평양이 고조선, 고구려에 이어진 역사적인 도시, 수도였다는 또 하나의 증시물로 된다”고 밝혔다.

한편, 신문은 “기린(麒麟)은 동양에서 말하는 상상적인 동물로서 성인을 태우고 다니는 말로 전해오고 있다”면서 “흔히 기린마(麒麟馬)라고 부른다”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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