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태(북한법연구회 간사)


1988년 학생운동가들의 과감한 문제제기 이후 본격화된 재야의 통일운동은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주장했다. 공안 당국과 일부 언론은 재야의 연방제 주장이 북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매도했으나 진정한 문제의식은 남과 북이 공존하는 통일의 방식을 모색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익환 목사가 1989년 방북해 연방제와 관련해 김일성의 양보를 이끌어냈고 그것이 이른바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의 통일방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는 합의문으로 연결된다.

이후 남쪽에서는 통일방안을 둘러싼 민과 관의 대립은 잦아들었으나, 언제부턴가 북의 붕괴를 예상하거나 기대하는 목소리가 비상식적인 수준으로 높아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이른바 ‘급변사태’에 대한 대책이 다시 난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방제 방식의 통일뿐만 아니라 점진적 변화를 통한 통일을 추구하는 우리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마저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되었다.

▲ 최양근의 『단계적 연방통일헌법 연구』(선인)  표지. [사진제공 - 권영태]
이러한 시점에서 최양근의 『단계적 연방통일헌법 연구 : 한민족의 미래와 비전』(선인)는 남과 북이 공존하는 통일방안이 무엇인가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하다고 하겠다. 통일헌법의 연구에서 연방제 방식을 전제로 하고 진행된 연구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이 책의 의의는 크다.

저자가 ‘단계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연방제 방식의 통일헌법이라는 구상은 남쪽의 대다수 법률가들에게 일반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법적인 ‘콘센서스’와는 별로 부합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저자의 시도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것으로 그 자체 만으로도 높이 평가를 받을 필요가 있다.

저자는 남쪽의 통일방안도 결국은 ‘1국가 1체제’라는 단일국가를 상정하고 있고 북쪽의 통일방안도 제도통일을 후대에 맡기자고 하고 있어 모두 비현실적이라 주장한다. 저자는 통일국가의 형태는 제1단계 연합형 연방제, 제2단계 연방제, 제3단계 세부화된 연방제가 바람직하다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단계적 연방통일헌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계하고 있다.

저자는 비무장지대, 개성 및 금강산 지구, 평화유지군, 한반도횡단철도, 우주항공 분야와 같은 최신의 이슈까지 연방정부와 지역정부의 권한 배분 문제에서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이 저자의 의욕만큼 ‘남과 북이 서로 승리할 수 있는 평화통일의 로드맵’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학술적 성취가 만족스러운가 하는 점은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통일헌법의 원리와 원칙은 남쪽의 헌법이 담고 있는 기본원리를 표현만 바꾸어 제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3대 원리로 연방국가주의, 권력분립주의, 법치주의를, 5대 원칙으로 단계적 통일의 원칙, 중도적 통일의 원칙, 실용주의적 통일의 원칙, 다양성 수용의 원칙, 통합의 원칙을 들고 있다. 안타깝게도 후자는 단순히 ‘좋은 개념’의 나열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우며, 전자에서 ‘연방국가주의’를 제외한 두 가지는 북쪽의 수용이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남북이 지금까지 체결한 합의서의 내용을 통일헌법의 설계에 반영하려고 시도했으나 용두사미에 그친 것도 안타깝다.

그렇지만, ‘남북합의이행위원회’라는 구체적인 기구를 고안하고 이를 통해 남북이 합의한 사항을 연방헌법과 연결시키려고 한 시도는 다른 후속 연구자들의 문제의식에서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 간의 합의는 향후 북도 거부하기 힘들 것이며, 그 동안 이러한 관점의 접근 또한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선구자의 자리는 늘 외롭고 힘들다고 했던가? 현재의 연구에 부족한 점이 다소 발견된다 하더라도 남과 북이 ‘연방’으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고자 다년간 노력해온 저자의 노력은 큰 박수를 보내도 부족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각계에서 저자의 문제의식을 더 자세히 청취하고 남과 북이 진정으로 ‘공존’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고 보완하는 노력이 진행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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