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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끝이 나에게로 향하게 되더라" 서각 작품전 연 '길위의 신부' 문정현
송정미 전문기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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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4.25  00: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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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3-25일 '품' 갤러리에서 서각 전시회 '와서 보시오'를 연 문정현 신부.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창을 들고 들어갔는데 그 창끝이 나에게로 향하게 되더라.”

한 신부가 작은 서각 칼 하나를 들었다.
그리고 253일간 성경 말씀을 묵묵히 서각 작품으로 새겼다.
그 신부는 늘 길 위에 서 있었다.
쓰러질 줄 모르는 거대한 상대와 평생 지난한 싸움을 해왔던 신부는 분노의 날카로운 비수를 가슴에 품었다. 그러나 나무판에 성경 말씀을 한 획 한 획 새기면서 상대를 향했던 비수가 문득 상대가 아닌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깨달아 나갔다. 나무판에 새긴 그 글귀들은 어느새 신부의 마음에 새겨져 오롯이 빛났다.

지난 4월 23일 오후 서울 정동의 ‘품’ 갤러리에서 서각 작품으로 첫 전시를 연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를 만났다. 몇 년 만에 만난 그는 반가우면서도 조금은 쑥쓰러운 듯 맞아 주었다.
투쟁의 현장에서 만났던 투사와 같은 이미지보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더 하얗고 풍성해진 수염이 강하게 대조를 이루는 모습에서 보다 깊고 단단해진 느낌을 주었다.

 

   
▲ 23일 '품' 갤러리에서 '길 위의 신부'와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처음에는 붓글씨로 시작했다고 한다.
평택 대추리에서의 2년 반동안의 싸움을 정리하며 분을 참지 못하던 신부는 “그 분을, 마음을 삭히기 위해서 밭일도 해봤는데 농부의 자식인데도 손이 부르트고 발바닥이 부르트고 농사도 진짜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대추리 빈집에서 주워온 벼루가 눈에 띄길래 붓글씨를 한번 써보자”는 생각으로 붓을 들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붓 한번 잡아본 적이 없었던지라 붓글씨를 쓰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결국 신부는 대추리에서 서각 작품을 인상 깊게 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서각을 해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의 첫 작품은 아무 도구도 없이 커터칼로 판 <껍데기는 가라>이다.

 

   
▲ 명동성당에서 서각 작업을 할 때 오가는 이들을 위해 항상 곁에 두었던 '안내문'(?)과  커터칼 만으로 새긴 첫 작품 <껍데기는 가라>.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 전문기자]

서각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용산참사에 뛰어들어 11개월을 보낸 뒤 다시 4대강 반대 투쟁으로 명동성당에 들어간 후부터였다.

문 신부는 “‘명동에 들어갈 때는 어떻게 교회가 상업화 되고 성직자들을 가볍게 대하고 욕되게 하고 그럴 수 있냐’면서 창을 들고 들어갔는데, ‘그러면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의 입장으로서 너는 자신 있는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사실 위축이 되었다”고 했다.

결국 “그 창끝이 자기(나)한테 와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 보다 철저한 삶을 살기로 결단하게 되었다고 한다. “때론 명동성당에 있으면서 참기 어려웠던 모멸감도 있었지만 기도와 서각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는 계기”가 됐으며, 기존의 투쟁방식이 아닌 “고요한 근 1년의 삶이었지만 내 마지막 여생을 위해서는 은총의 시간”이었다고 소회했다.

특히 “한 성직자로서, 한 사제로서 저 밑바탕에 머물러있으면서 탄압받는 사람, 소외된 사람, 억압받는 사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고 피해가는 사람들과 더불어 남아 있어야 한다”며,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불의를 보고 뛰쳐나가 밑바탕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깊이에 대해 성찰하게 된 “정말 고맙고 중요한 시간”이었음을 강조했다.

서각 작업은 인내와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글귀를 붓글씨로 써서 나무에 붙여서 새기고 그 위에 아크릴을 입힌 후 마르면 다시 사포로 다듬고 기름칠 하고 마지막 고리를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진다.

문 신부는 주로 오전에는 명동성당에서 묵상하고 묵상을 통해 떠오르는 글귀나 성경 말씀을 메모한 후 주말에 집에 내려가서 붓글씨를 써서 나무에 옮긴 후 오후에 사람들을 만나며 작업을 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72점이다. 그 말씀들은 비단 나무판뿐만 아니라 노(老) 신부의 마음에도 오롯이 새겨졌다.

 

   
▲ 문 신부는 작품 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말씀으로 이 두 점을 꼽았다.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 전문기자]

작품 중에 <내가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와 <무기를 손에 들고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를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말씀으로 꼽고, “교회는 이걸 지켜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현재 사회 전반의 문제의 핵심에는 인간, 바로 자기 자신이 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각자가 그걸 인식하고 삶의 형태를 바꾸지 않”으면 “이 지구상에 물고기 한 마리 다 없어질 때까지, 나무 한그루 남지 않을 지경까지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소비를 지양하는 절제의 삶을 통해 자연 속의 일부로서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재차 당부했다.

특히 이른바 ‘운동권’에 대해서도 “아스팔트에서 싸우고 감옥에 갔다고 하지만 때가 되면 권력 언저리에 딱 가서 자리잡고 그러니까 그 정권이 다 비슷하게 나간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문 신부는 앞으로도 그동안 해왔던 사회운동을 하면서 평화유랑단 등의 활동을 통해 사람들을 만날 계획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틈나는 대로 서각 작업도 꾸준히 하고, 기회가 되면 판화 작업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밝혔다. 앞으로의 작업의 방향은 성경말씀과 함께 “내 삶의 표현이자 잊을 수 없는 체험인, 그동안 살면서 부르짖었던 구호들”을 작업해서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작가에게 작품은 자신의 다른 표상이다.
이번 전시 작품은 4박 5일이라는 짧은 기간을 배운 서툰 솜씨이지만 마음으로 새기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작품의 완성도나 작가의 개성을 논하기 어렵다.
다만 800여 년 전 풍전등화에 처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오직 지극한 마음으로 팔만대장경을 판각한 장인들의 마음을 문 신부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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