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화, 남북대화라는 투트랙이 가동될 조짐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북미대화는 이미 거의 기정사실화되고 있으며, 남북대화 역시 그 분위기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쌀 지원을 위한 분위기를 형성하고자 하는 미국의 노력은 지난 1월 북측의 요청 이후 시작되었다. 이미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와 보즈워스 대북특사가 쌀 지원 의사를 피력한 데 이어 미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도 3월 14일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 지원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의 관료들이 공식적으로 대북 식량지원을 역설하고 있는 상황으로 진전되고 있는 것이다.
북미대화 재개에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이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3월 24일 미 국무부는 카터의 방북을 확인했다. 비록 미 국무부는 “그의 여행은 오로지 개인적 자격”이라고 평가했지만 보즈워스 대표의 평양 방문을 이끌어 내었던 2008년 빌 클린턴 전대통령의 방북 역시 ‘개인 자격’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베를린에서는 북미 전.현직 관료들이 만나 토론회를 벌이는 일정도 예정되어 있다.
이 같은 분위기에 맞춰 북측의 입장 표명 역시 북미대화에 큰 기대를 낙관하게 한다. 북 외무성은 3월 15일 “조선측은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에 나갈 수 있고, 6자회담에서 우라늄농축문제가 논의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조선이 핵시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의 임시 중지, 영변지구의 우라늄농축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 전문가들의 접근” 등의 문제에서도 “동시행동 원칙에 따라” 그리고 “9.19 공동성명의 이행과정에서” 논의될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와는 별도로 북측이 지난 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최소 2차례에 걸쳐 뉴욕채널을 통해 제네바에서 북미 양자접촉을 갖자는 제의를 미국측에 한 것으로 알려진 것 역시 주목할 대목이다. 비록 미국측이 이 제의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최근 북측의 핵문제에 대한 전향적 발언과 지미 카터의 방북 성과 등을 감안하면 북측의 이 같은 제의를 미국이 받아들이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 부분에서 한 가지만 지적하고 넘어가자. 3월 23일자 기사에서 중앙일보는 북측이 리비아를 들먹이며 ‘핵포기’를 거부했다는 이영종 기자가 작성한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북 외무성의 “(선군의) 길에서 마련된 자위적 국방력은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데 더 없이 소중한 억제력으로 되고 있다”는 입장을 리비아 침공을 비난하는 것과 오버랩시켜 ‘북한이 핵포기를 거부했다’는 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물론 북 외무성이 리비아 사태와 연관시켜 ‘핵 억제력 보유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은 맞다. 그러나 핵보유의 정당성을 강조했다는 것과 핵포기를 거부했다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중앙일보의 이영종 기자의 기사는 명백하게 비약이다.
남북관계 역시 새로운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가장 큰 이슈는 쌀 지원인데, 3월 23일 정부 소식통은 세계식량계획 등 국제기구 실사단의 북한 식량평가 보고서 결과에 따라 미국과는 별도로 인도주의 차원의 대북 식량 지원 및 의약품 지원 허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미국의 쌀 지원을 양해하는 수준이 아니라 ‘미국과 별도로’ 쌀 지원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보류시켜 왔던 대북 지원 사업”도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백두산 화산 활동과 관련한 남북 간 협력을 논의하기 위한 대화 역시 북측의 제의를 남측이 수용함으로써 당국 간 대화를 앞두고 있다. 비록 정치적인 사안은 아니지만 당국 간 대화가 재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청신호임이 분명하다.
북측은 ‘러시아·남·북을 연결하는 철도와 가스관 부설, 송전선 건설’ 등에 대한 러시아 외무차관의 제의에 대해 “조선은 러시아의 계획을 지지하고 그 실현을 위한 3자(남북러) 실무협상 제안이 나오면 긍정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까지 피력했다. 이것은 언론에 크게 주목을 받지 않았지만 파급력이 큰 발언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러 정상회담에서 ‘남북러 가스관, 송전선 건설’을 수차례 역설함으로써 이 사업을 전략적으로 추진할 의사가 있음을 강조해왔다.
따라서 북측의 이 같은 입장은 러시아 측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이었지만 남측의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남북관계가 잘 풀리면 이명박 대통령이 역설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 사업에 적극 협조할 의사를 피력한 것이다. 이 사안은 향후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중요한 의제가 될 수 있는 있는 것으로, 이명박 대통령으로 하여금 남북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될 촉매제가 될 것이다.
논의를 종합하자면 적극적인 북미대화와 남북대화가 동시에 추진되었던 2000년의 상황을 조심스럽지만 점쳐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만이 남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결단하면 북미대화와 남북대화라는 투 트랙이 건설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악화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천안함 악재는 여전히 큰 변수이다. 현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천안함에 대한 ‘정면 돌파’ 의사를 계속 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화 재개를 가로막는 악재임이 분명하다.
대북전단 살포 역시 중요한 변수이다. 북측은 23일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전달 살포 계획을 비난하며 “항시적인 직접 조준격파 사격 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임의의 시각에 실전행동에로 진입하게 되어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를 제지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북미대화, 남북대화 분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측이 극단적인 대응을 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록 남북미 사이에서 신뢰를 조성해가는 상황이지만 아직 높은 수준의 신뢰구축이 형성되지 못한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돌발 상황이라도 대결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는 불안정성을 한반도는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그와 같은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실천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할 때이다.
* 이 글은 새세상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주간통일동향 [통일돋보기 67호]에 동시 게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