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모토 오사카부 지사는 오사카 조선고등학교에 대한 연간 지원액 1억 엔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도주의 차원에서 재일동포들이 민단, 총련 할 것 없이 일본 사람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나서고 있는데, 이런 판국에 그런 결정이 버젓이 통용되는 사회라는 게 이상하다."

▲23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정년퇴임을 맞은 서승 일본 리츠메이칸대 교수와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서승(67) 일본 리츠메이칸대 교수는 2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가진 <통일뉴스>와 인터뷰에서 일본 대지진에 대해 한국이 거족적인 지원운동을 하고 있다는 점을 놀라워하면서도, 일본 현지의 조선동포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8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오사카부(大阪府)는 2011년도에 오사카 조선고급학교(고등학교)에 대한 2010 회계연도 보조금 예산 1억 9,600만 엔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교실에 걸린 故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초상화를 떼라는 요구를 학교 측에서 거부했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서 교수는 "일본 대지진은 상당히 비극적인 사건이고 희생자들이 상당히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한국은 아주 거족적인 지원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과거 아프리카나 다른 아시아 나라에 대해서도 이렇게 거족적인 지원운동이 일어났던 적이 있나"라며 "이번 한국에 와서 상당히 놀란 것이 '한국이 이렇게 인도주의적인 나라였는가. 한국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에서 주변에서 얘기하기에는 수십만 명이 죽어간다고 할 때 이렇게 거족적인 지원운동이 일어났었나"라고 반문하고 "상당히 아이러니컬하다"고 지적했다.

'재일동포학원침투간첩단 사건' 주모자로 19년 옥고..『옥중 19년』펴내

서 교수는 박정희 군사정권 당시 빈번했던 '간첩단 사건'의 희생자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학교 유학 중이던 1971년, 그해 대선을 앞두고 터진 '재일동포학원침투간첩단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동생 서준식 씨와 함께 체포됐다. 1990년 출소할 때까지 19년 동안 옥살이를 한 그는 이후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한국의 '정치범'의 실태를 알리는 활동을 펼치다 1998년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가 출소 후에 쓴 『옥중 19년』이라는 책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1999년)에야 한국에서 출판됐다.

▲서승 일본 리츠메이칸대 교수는 일본의 재일동포 차별에 대해 한국 사람들의 관심과 성찰을 호소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당시 가혹한 고문에 못 이겨 난로에 있는 기름을 끼얹고 분신을 시도했던 그의 몸 곳곳에는 지워지지 않는 아픈 기억만큼이나 많은 화상 자국이 남아있다.

1945년 일본 교토에서 나고 자란 서 교수는 스무 살 때 고국 땅을 처음 밟았다. 당시 한일회담 반대 운동을 하고 있던 한국 대학생들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말도 몰랐던 그는 재일동포의 정체성과 당시 남북 현실에 대한 모순 등을 고민하게 됐고, 우리 문화와 역사를 배우려고 서울대에서 공부하던 차에 '간첩단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조선학교 차별과 탄압, 아직도 계속 진행 중"
"조선인 차별은 한국 사람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오는 26일 정년퇴임식 겸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기행-한국, 대만, 오키나와를 돌아서』 출판 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고국을 찾은 서 교수는 일본의 재일동포 차별에 대해 한국인들의 관심과 성찰을 호소했다.

서 교수는 "(일본은) 그동안 한류 붐도 있었고, 이른바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용적인 면을 보이면서, '조선'이라고 이름 붙는, 반드시 총련 지지자만은 아닌데, 혹은 민족교육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조선학교'에 대해서는 아주 가혹하게 대하고 있다"며 "분단.반공시대가 지나고 민족화해의 시대에 접어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일본의 태도는 "사실 식민지 지배의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현상"이라며 "조선인 차별이라는 것은 한국 사람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 전체에 대한 소위 멸시와 차별의식이 나타나는 것인데, 우리 동포의 다른 부분에 대한 억압과 차별은 우리 민족 전체에 대한 문제라고 인식해야 마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동포이기 때문에 불쌍하다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통일과 민족화해를 지향하려고 한다면 일본의 반민족적인 행위는 방치해서는 안 될 문제다. 또 일본은 이제 한국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사회라고 하는데, 그것도 잘못된 것이다. 여전히 입주차별 등 여러 차별이 있다"며 "일본의 무도함, 인권침해는 정말로 우리가 허용해서는 안 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동아시아 개념, 일본이 헤게모니 개념으로 악용"

서 교수는 정년퇴임 이후에도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특임교수로 5년간 더 재직한다. 그러나 '코리아연구센터' 등 일선 활동에서 한 발짝 물러나 집필작업에 몰두하겠다는 계획이다.

우선 서 교수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재일동포의 근현대사를 담아낸 책을 펴내겠다는 구상과 함께 담론적 차원의 '동아시아'라는 개념에 대한 연구를 책으로 정리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그는 "아시아라는 개념 자체가 아시아에서 만든 개념이 아니다. 타자화된 개념"이라면서 "서구 세력이 팽창하면서 한반도, 일본까지 왔고 다양한 지역을 아시아로 한데 묶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아시아' 개념은 일본이 자신들의 헤게모니(주도권) 개념으로 차용, 악용했다. 일본 중심의 지역질서라는 것을 '아시아'라는 이름으로 썼다. 그래서 아시아주의, 대아시아주의,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얘기가 나왔다"며 "동아시아라는 것은 대동아공영권처럼 일본의 헤게모니가 관철돼 있는 지역이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일본 정도로 회자되고 보급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폭력을 배제하면 남북 간 대화밖에 없어.. 분단, 정신적.물질적 피해 상당해"

▲서 교수는 최근 남북관계 상황에 대해 "절대 군사개입은 있을수 없는 일"이라며, "대화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서 교수는 최근 남북관계 상황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천안함 문제를 놓고 어떤 사람은 이런 문제에 있어서 ‘리비아에서 하는 행동처럼 군사개입을 해서라도 원인을 찾아야 될 것이 아니냐’고 하는데, 원인은 무엇인지 현재도 알 수 없지만 절대 군사개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폭력을 배제하면 대화밖에 없다"면서 "대화라는 것은 지금의 잘잘못을 우선 가리고 난 다음에 문제를 시작하자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하면서 문제를 풀어가자는 얘기다. 이런 방법으로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분단의 문제라는 것은 한국은 번영하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엄청난 물질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정신적 피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대화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우리나라의 화해와 통일이라는 것은 앞으로 큰 흐름 속에서 그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승 교수의 정년퇴임식 겸 출판기념회는 오는 26일 오후 4시 남산 서울유스호스텔 강당에서 개최되며, 4월 23일에는 일본 도쿄에서 동아시아 각국의 학자, 활동가들이 함께하는 퇴임기념 행사도 준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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