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 (세새상연구소 연구위원)

세 개의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첫째 북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1월 하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에게 북미 직접대화를 제의했다는 사실이다. 둘째, 이 사실이 정부 측 인사들에 의해 언론에 공개되었다. 2월 19일자 중앙일보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하여 그 사실을 보도했다. 공개적으로는 현인택 통일부장관의 입으로 전해졌다. 그는 재외공관장회의에서 그 같은 사실을 언급하며 북한이 “이대로 놔두면 한반도에 핵참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북측의 경고 발언까지 공개했다. 셋째, 2월 23일 동아일보는 현인택 장관의 ‘핵 참화 언급’ 공개에 미국 측이 ‘비밀누설’이라며 외교채널을 통해 한국 정부에 항의했다고 한다.

이 세 개의 상황 전개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한다.

첫째, 북한이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투 트랙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월 하순이라면 북한이 남북군사회담을 제의했던 시기(1월 20일)가 대체로 일치한다. 북한은 남측과 미국에 동시에 대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둘째, 남북군사회담이 먼저 진행된 것은 남북대화 우선이라는 일반적 순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가 인용한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미 국방부장관은 북측의 제의에 퇴짜를 놓았다고 한다. ‘남북관계 우선론’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셋째,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다. 2월 21일 조선신보는 최근 북미 사이에 대화국면이 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신보는 평양에 특파원을 두고 있으며 평양의 소식과 기류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보도하는 매체이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라는 수식어가 조선신보 앞에 따라 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조선신보가 내비친 평양의 기류와 중앙일보의 ‘정부소식통’이 전하는 미국의 기류가 다르다.

미 국방부가 퇴짜를 놓았다는 ‘정부 소식통’의 정보가 잘못됐을 가능성, 조선신보가 잘못된 기사를 내보냈을 가능성 그것도 아니면 미 국방부는 대화제의를 거부했지만 또 다른 북미 대화 통로가 모색되고 있을 가능성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아마도 세 번째 가능성이 제일 높아 보이기는 하지만 어느 것이 진실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북군사회담이 결렬되었고 북미군사회담도 재개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한미연합군사연습인 ‘키 리졸브 훈련’이 시작된다. 훈련 도중에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며, 예기치 않은 사건이 생겼을 때 그 확산을 방지할 수 있는 통로가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연평도 사건과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반도의 상황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외교통상부 장관도 아니고 국방부 장관도 아닌 명색이 ‘통일부 장관’이 직접 나서 ‘북한의 핵참화 협박’을 공개하면서 미국 측에게까지 항의를 받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남측 사회에서 ‘반북 여론’을 고조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공개’였다고 볼 수 있다. 지난 미중 정상회담 이후 남북 대화 재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노골적으로 북한의 ‘전쟁 위협’ 이미지를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발언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북미 대화가 재개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북미대화 딴지걸기의 속셈도 있다고 판단된다.

어느 경우이건 간에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한반도의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껀수만 찾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남북관계를 개선해보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진전을 가로막고 한반도의 상황을 악화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남북대화와 북미대화가 가로막힌다면 결국 한반도에는 전쟁 위기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 지난 해 11월 연평도 사건의 교훈이다. 현인택 통일부장관의 ‘부적절한 발언’은 따라서 한반도에서 전쟁을 획책하는 발언이라고까지 해석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이 글은 새세상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주간통일동향 [통일돋보기 64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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