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 시내 한복판 고급호텔에서 한 편의 첩보 코미디가 벌어졌습니다.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이른바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3인조 잠입사건’입니다. 사건 개요는 이렇습니다. 지난 16일 이들 특사단이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하러 청와대로 간 사이 국정원 직원 3명이 이들이 머물고 있던 롯데호텔 19층 객실에 침입해 노트북에 손을 댔다가 들킨 사건입니다. 이 노트북에는 우리 정부와 인도네시아 정부가 추진 중인 무기 수출입과 군사 협력방안 등이 담겨 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문제는 정보기관의 실패한 작전 내용이 속속들이 알려지면서 국정원이 ‘흥신소’, ‘이삿짐센터’, ‘저질 절도단’, ‘좀도둑’, ‘걱정원’으로 조롱되는 상황까지 몰렸다는 것입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국정원 직원 3명이 모두 CCTV에 얼굴을 찍힌 점, 망보는 이 없이 한꺼번에 호텔 방에 몰래 들어갔다가 방주인(특사단)에게 들킨 점, 들고 나오던 노트북을 특사단에 되돌려준 점, 노트북에 지문을 남긴 점, 특사단에게 발각된 후 호텔 비상계단에 숨어 있다 호텔직원에게 들킨 점 등등 수준 이하입니다. 마치 모든 행동을 일부러 들키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이번 ‘3인조 잠입사건’이 외부에 알려진 것을 두고 국정원 내부갈등설, 국정원에 대한 권력기관 간 견제설 등이 난무합니다. 국정원장의 성과주의와 과욕이 화를 불렀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국정원 직원들은 지난 해 5월 유엔 관리 일행을 캠코더로 촬영하다 망신을 당했고, 6월에는 리비아의 군사정보를 수집하다가 적발돼 강제 추방됐으며, 시민사회단체들을 불법 사찰하다가 들킨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고도한 훈련, 빛나는 눈, 민첩한 행동, 흔적없는 활동 그리고 신속한 퇴각 등으로 알고 있는 정보요원들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정보원은 음지(陰地)에서 일하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얼굴은 물론 말과 행동도 외부에 드러나선 안 됩니다. 그런데 이번 ‘3인조 잠입사건’에선 모든 게 드러났습니다. 설사 들통이 났더라도 이를 신속하게 막을 수 있는 후속조처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건 다음날인 17일 새벽 국정원이 남대문경찰서에 찾아가 수사 상황을 물어본 뒤 보안을 당부한 사실조차 드러났습니다. 정보활동의 ABC조차 지키지 못했습니다. 모든 게 엉망진창입니다. 지금 국정원의 수준을 통해 해당 권력의 수준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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