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화 김정은'이란 책이 출간됐다. 대북방송매체 <열린북한방송>의 하태경 대표가 글을 쓰고, 한국만화가협회 이사 최병선이 그림을 그렸다. 펴낸 이는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이며, 펴낸 곳은 도서출판 '시대정신'이다.

 

한 인물을 중심으로 다른 사회를 쉽게 알게끔 접근하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또 만화 형식을 통해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려는 의도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총 175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적지 않은 당혹감과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가장 먼저 '팩트(fact, 사실)'는 없고 '오피니언(opinion, 견해)'만 있다. 일반적으로 오피니언은 사실에 기초한다. 정확한 사실을 전제하지 않은 오피니언은 설득력을 잃는다.

일단 책 내용 가운데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부분이 눈에 띈다. 책에서는 천안함 사건을 "김정은의 두 번째 도발"이라고 소개한다.

천안함 사건은 '어뢰 공격에 의한 폭발'에 대한 의혹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1번' 어뢰 추진체, 변형된 스크루, 흡착물질 등 군이 제시한 명백한 물증은 각종 의혹과 문제 제기 속에서 물음표로 수그러들었지만, '북한이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는 정황상 의견과 심증만이 '만신창이'로 남았다.

책에서는 천안함 사건을 북한이 일으켰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팩트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결정적 증거로 제시된 '1번'이라는 글씨가 강한 폭발의 충격에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고, 북한이 이 사실을 통해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열역학 전문가인 송태호 카이스트 교수가 '30년간 열전달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엉터리 주장에 나라가 들썩이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문제의 '1번'글씨가 폭발할 때 고온, 고압의 화염에도 타지 않은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였다"고만 적었다.

당시 송 교수의 설명에 대한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의 반론이 설득력이 있었고, 송 교수가 또한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 내용을 부인하는 주장을 하는 등 적지 않은 논란이 일었다는 부분은 책에서는 찾을 수 없다.

책은 그러면서 "그 후 연평도 포격에 사용된 포탄의 잔해에서도 '1'이라는 글씨가 나왔다"며 "북한의 주장이 또 한 번 거짓으로 밝혀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천안함 사건을 치밀하게 사전 계획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면서 이와 관련된 북한 내부 진행 상황에 대해선 4페이지 분량에 걸쳐 매우 자세하게 설명한다.

"북한 해군사령관은 1월 8일, 김정은의 생일에 맞춰 1차 작전 기획안을 국방위에 제출했"고, "국방위에서는 군사부문을 총괄하는 김영춘과 대남비밀사업을 총괄하는 오극렬이 이 작전 기획안을 검토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작전집행권한이 해군사령부가 아닌 비밀사업을 관장하는 정찰총국으로 변경되었"으며, "김정일은 자신의 생일인 2월 16일경 이 계획을 최종 승인했다"며, "김정은도 이 계획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책은 "김정일이 천안함 사건을 승인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며, △"2009년 11월 대청해전 패배에 대한 보복" △"북한의 스텔스 기능이 보완된 개량 잠수함과 잠수정 어뢰를 바탕으로 해군의 군사전략전환을 테스트하는 것" △"천안함 사건을 일으켜 외부 상황을 긴박하게 만드는 것이 내부적으로 후계 승계를 공고히 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사건을 기획할 당시 김정일에게는 이 작전이 증거조차 남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가 올라갔다"며 "북한은 폭발 후 파편이 남아도 어느 나라 것인지 알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 물증이 나오자 김정일은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라고 지시한다"고 적었다.

이처럼, 책은 팩트를 중심으로 한 사건 파악보다는 오피니언과 심증에 따른 사건 개연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밖에도 북한과 관련된 정보 출처 역시 대부분 대북 매체에서 나온 것으로,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북한 정보 특성상, 공식 확인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왜곡된 정보가 팩트로 둔갑해서는 안 될 일이다.

2009년 5월 남한 언론들이 '대남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고 처형됐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한 북한 최승철 전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조선직업총동맹(직총)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얼마 전 <통일뉴스>가 보도했다. '죽었다고 믿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이 상황은 북한 정보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오피니언'은 '이념'과 다르지 않다.

 

두 번째로 책에서는 '같음'이 없고 '다름'만 있다. 북한 지도부는 물론 북한 주민들 역시 '우리와 다르다'는 인식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책에서 나오는 북한 주민들의 얼굴색은 흙빛이다. 대부분이 노동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데다, 배고픔과 고된 노역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또한, 불안한 기색과 불만 표정을 가진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남한 국민들이 대체로 여유 있으며, 밝은 표정을 띠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70~80년대 반공만화가 북한에 대해 '머리에 뿔 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편견을 가져다줬다면, 이 책은 '불안과 불만으로 가득한 무기력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차이점을 부각시키면서, 또 다른 '북한'을 만들려 한다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 번째로 책에서는 "종북"만 있고, '반북'은 없다.

책은 "한국에는 김정일을 추종하고 따르는 종북세력들이 있다"며 낡은 '색깔론'을 또다시 등장시켰다. 심지어 "종북세력들"이라고 보는 이들이 구체적으로 언급됐다.

"정00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과 "민주노동당 울산지부 김00 대표", "민주노동당 산하 새세상 연구소의 박00 부소장", "재미학자로 행사하는 한00",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북한의 3대 세습을 두둔했다"며 한순간에 '종북인사'가 됐고, "한국진보연대", "민주노동당", "참여연대"는 "진보좌파" 정당 또는 단체로 낙인찍혔다.

<미디어오늘>, <자주민보>, <민족21>, <통일뉴스>는 "종북 단체들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3대 세습을 옹호"하는 매체로 둔갑했다. 북한의 '3대 세습'과 관련해 다른 목소리를 냈던 이들을 "종북세력들"로 인식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특정 부류로 구분하면서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

책은 "북한의 3대 세습이 민주적 정당성이 없"고, "정당성 없는 권력 대물림은 인민들에게 차별과 불이익을 안겨주"며 "남북 화해 협력에도 장애와 혼선을 초래한다"고 밝혀, 앞선 분류들이 이런 보편적 인식에서 벗어난 비상식적인 집단임을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또한 "3대 세습을 두둔하는 종북세력들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침묵한다"며 "심지어 UN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을 반대하기도 했다"고 비난한다.

 

마지막으로 책에는 북한의 '미래'는 없다. 오직 "붕괴"만이 있다.

'북한의 3대 세습과 왕자의 난'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책의 내용은 주로 북한 '3대 세습'과 관련된 일련의 흐름이 주가 됐다.

그러나 이런 자세한 내용에 비해 북한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턱없이 부족하며, 현실성과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책은 "김정일이 죽고 난 뒤, 억눌리고 짓눌렸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할 경우! 김정은은 시체도 못 찾을 수 있다"며 "아무리 견고한 독재정권 일지라도 아주 작은 실수로 무너진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며 "김정은 3대 세습 정권은 북한 주민의 거대한 저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끝을 맺는다.

책은 결국 북한 당국에 대해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무너질 것이라는 비난으로 마무리한다. "북한 사회를 해부하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해, 종착점에 도착해서는 "북한 주민들의 거대한 저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들의 '희망사항'으로 마무리한다.

'진실'은 누가 있다고 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없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만화 김정은'은 진실에 접근하기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훨씬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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