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미국의 역사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해 서부를 ‘개척’하고 세계 최고의 선진문명국을 건설했다고 알고 있지만 이는 과연 사실(史實)일까?

크리크족(부계)과 체로키족(모계)의 혈통을 지닌 북아메리카 토착민 워드 처칠이 쓴 『그들이 온 이후 - 토착민이 쓴 인디언 절멸사』(출판사 당대)는 이같은 통념을 산산이 깨트려준다.

『그들이 온 이후 - 토착민이 쓴 인디언 절멸사』(출판사 당대) 표지. [사진 - 통일뉴스]
1492년 10월 12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카리브의 한 해변에 표류하여 처음 상륙하던 날 북아메리카는 “적어도 5만 년 동안 줄곧 이 대륙을 차지해 온 토착 원주민들은 총인구 약 1500만에 달했고, 인구 4만의 카호키아(오늘날의 일리노이주 소재)의 도심지 같은 대도시들, 고도로 성장한 건축.토목 개념, 현대 생태과학에 맞먹는 지식에 구현된 영적 전통, 약물학과 전인의학에 관한 높은 지식 그리고 매우 정교한 정치.교역 및 외교 체제 등을 실현”하고 있었다.

북아메리카를 ‘발견’된 신대륙이라 부르는 우리의 사고가 얼마나 유럽 중심적 편견에 치우쳐있는지 이 한 문장 만으로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많던 1,500만 북아메리카 토착민, 일명 인디언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 대답은 바로 ‘그들이 온 이후’에 ‘절멸’당한 인디언들의 역사를 직시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

저자가 예로 든 에스파뇰라섬(지금의 도미니카공화국과 아이티)의 800만 명의 토착 타이노족 인디언의 경우 ‘콜럼버스의 만남’ 이후 “노예제도와 방자한 살육정책은 ‘구세계’에 병원균의 도입과 결합되어” 1496년 300만으로 감소했고, 6년 후에는 다시 10만 미만으로, 1542년에는 스페인 인구조사에서 200명으로, 그리고 그후 ‘멸종’이 ‘선포’됐다.

인디언 ‘절멸’ 과정에는 1763년 영국군 제프리 암허스트 경의 명령서에서 확인되듯 “천연두 병균에 오염된 담요 등 - 이들 형편없는 종족을 절멸시킬 온갖 수단을 동원”했으며, ‘고전적 사례’로 꼽히는 1637년 영국군에 의한 피쿼드 마을 남녀노소 800명을 도끼와 칼로 난도질한 학살, 신생 아메리카합중국에 의한 1830년대 케로키족의 1500마일 강제이주 이른바 ‘눈물의 행로(trail of tears)’로 케로키족 절반 이상의 죽음 등 상상하기 조차 힘들 정도의 잔인한 살육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필자에 따르면 미국내 아메리카 인디언은 현재 160만명 수준이며, 명목상 1인당 북아메리카의 최대 토지소유자이지만 가장 가난하고 가장 실업률이 높으며, 급여수준과 교육수준이 가장 낮다. 1980년 보호구역에 사는 토착민 남성 평균기대수명은 44.6세, 여성은 이보다 3년쯤 더 길다는 것이다.

특히 필자는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북아메리카의 토지 소유권 문제를 인디언 문제의 핵심 쟁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유럽인들은 ‘발견자 우선 원칙’을 내세우며 무력으로 토착민들의 토지를 차지했고, 미합중국 역시 여러 법률과 온갖 편법과 무력을 동원해 토지 소유권을 획득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법적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요지이다.

필자는 “행정 및 입법부의 갖가지 일방적 조치와 함께 이런 정쟁과 협정들의 결과로 20세기 초에 와서 토착 아메리카의 면적은 당초 20억 에이커의 약 2.5%로 축소”되었고, “진실은 이 나라 토지면적의 절반가량이 조약 또는 협정에 의해 에이커 당 평균 1달러 미만의 가격으로 매입되었다는 것”이라고 폭로한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토착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토지청구권 투쟁이 갈수록 빈도와 강도를 더해 가고 있다”며 이로쿼이족 등 수많은 토착민족의 오랜 기간에 걸친 복잡한 토지분쟁을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미국은 건국 후 첫 90년 남짓한 동안 현재 48개 주로 알려진 지역의 토착주민들과 370건이 넘는 개별 조약을 체결, 비준”했고, 이는 연방 정부가 토착민을 완전한 주권을 가진 민족임으로 공식 승인했음을 의미하고 토착민족의 관점에서는 미국이 조약상 자기 몫을 다하는 한, 인디언 토지의 일정 부분을 점유.사용할 권리를 준다는 것이었다. 즉 땅 매매문서가 아니라 임대차문서에 가깝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토지문제에 대한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은 인디언 땅에서 나가라, 미국은 북아메리카에서 나가라”는 기치 아래 “미국 전체 면적의 약 1/3에 해당하는 지역에 가칭 ‘북아메리카토착민족연합’이라 불리는 구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독립적 자치정부(enti쇼)는 영역 밖의 토착민족들을 지원할 수 있겠지만, 그러면서도 미국이라는 영도적 주체(territorial corpus) 안에 남아 사기와 강압으로 체결한 잉여조약에 따른 토지청구권 문제(현 48개 주 면적의 15-20%에 해당)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필자의 주장이 실현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있기 때문에 누구도 이 진실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의 예리하고 근본적인 시각은 마르크스주의 역시 생산력 발전에 근거한 ‘유럽화’를 내세우는 것으로 “세계관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는 토착민들의 세계관과 정면으로 대립”되며 실제 러시아를 비롯한 사회주의 혁명과정에서 소수 민족은 ‘거짓 약속’을 믿고 혁명에 참여했지만 나중에 ‘인종학살’의 대상이 되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외에도 미국 서부영화에서 나타나는 인디언의 모습이 어떻게 왜곡됐는지, 자칭 치페와족 출신 원초주의자 데이비드 브래들리가 주도한 ‘토착아메피카예술협회(NAAA)’와 ‘인디언예술.공예법’이 왜 문제인지, 진정한 토착민주의자가 누구인지 등 많은 현안들에 대해서도 짚고 있다.

한 권의 책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온 이후 - 토착민이 쓴 인디언 절멸사』는 적어도 미국과 인디언 간의 근본 문제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정면에서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책보다 인디언 문제의 본질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따라서 콜럼버스와 나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힘러는 동일한 '집단 학살'의 책임자라든가 미국이 인디언 문제를 덮고 있는 한 어떠한 진보도 논할 수 없다는 근원적 문제제기들은 독자에게 깊은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더구나 이 책은 토착민의 손으로 직접 씌여졌다는 점에서 여과없이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이 전달하고 있으며, 『로마제국 쇠망사』 등을 번역한 황건 선생의 수준높은 번역과 역주는 독자들에게 축복임에 틀림없다. 

나아가 필자는 “문제는 현재의 유럽 중심적 상태가 지닌 약탈적 성격에 저항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존속 가능한 사회문화적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금은 유럽인들이 침략해 올 당시에 목격했던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지적 수준이 어두운 밤의 봉홧불처럼 빛나고 있다”며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삶속에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의 대안이 담겨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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