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신인영, 우용각, 최하종 (비전향 장기수)
사회 : 이계환 (통일뉴스 편집국장)
정리 : 김치관 (통일뉴스 기획부장)
사진 : 조성현 (통일뉴스 사진부 기자)
일시 : 2000. 8. 24. 11∼14시


과거를 묻고 6·15남북공동선언 관철을 위해 모든 힘을 집중하자

■이 : 6·15 남북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남쪽에서는 아직 통일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고, 반통일 세력도 목소리가 높습니다. 또 일부에서는 비전향 장기수 송환과 국군포로 문제를 상호주의에 입각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신인영(72세) 선생님


■신 : 역시 보수의 벽은 높아요. 얼마전 국회에서 재향군인회 등 보수적인 인사들과 함께 할 자리가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어떤 사람들은 당신들이 비전향 장기수라면 우리는 비전향 반공주의자다라고 공공연히 말해요. 그리고 납북자문제 등 되지도 않은 소리를 꺼내요. 굉장히 벽이 높은 거죠.

하지만 나는 마지막에 이렇게 주장했어요. 55년 동안 반목해 왔는데 50만 군인이 죽었다고 하지만 마찬가지로 인민군이 죽었고 나만해도 35년 청춘을 감옥에서 보냈는데 증오만 계속할 것인가 말이죠.

지금 미국은 세계화요 하고 떠들지만 이것은 그들을 위한 지배 논리예요. 세계는 본질적으로 민족간의 생존경쟁이고, 패배하면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민족의 지도자로서 이런 점을 절감하고 우리 민족을 구출하기 위해서 평행선을 그어오던 데서 접점을 찾은 것 아니냐 말예요. 과거에 매달리고 증오에 차서 반목을 계속하면 우리 민족은 멸망으로 가는 길 밖에 없어요. 역사에 흔치 않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분단의 역사를 묻고 화해해서 통일한다면 어느 나라 어느 민족보다 우수한 우리 민족의 앞길은 밝아요.

그날 참석한 참전용사 대표도 화해하자고 꽃다발도 주고 했지만 아직도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벽이 높다는 걸 알아요. 과거를 묻고 6·15남북공동선언 관철을 위해 모든 힘을 집중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 사는 길이고, 통일의 길이죠.

■최 : 보수파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올해 이쪽에 오면 군 의장대 사열은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그들의 주장은 북쪽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적 개념을 변화시킬 의사가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논의는 적절치 않아요. 북쪽이 먼저 인민군대 열병을 했잖아요. 열병했는데 왜 안변했어요. 북은 이쪽 군대를 주적이라고 생각지도 않고 있어요. 미군을 주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북은 변했어요. 보수파들이 생떼를 쓰고 있어요.
대통령 평양갈 때 공항영접을 나오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도 예상 못했다 이래요. 아니 정보부가 그런 판단 못하면 무슨 정보붑니까. 다 알면서 아직도 백성을 우롱하는 짓이지요.

■신 : 국군포로 없다는 것 다 알아요. 실제로 국군에 있다가 인민군에도 가고 인민군에 있다가 제대해서 국군으로도 가고 그랬어요. 문제된 조창호 이런 자들이 그쪽 체제 지지하고 아들딸 낳고 살다가 동구권과 소련이 무너지고 자연재해로 어려움을 겪자, 안기부가 돈 확확 주고 데려와 마치 국국포로라는 듯이 행세하니 인간으로서도 안된 사람이죠.

납북자라는 것도 가난한 어부들 여기서 인간이하의 대접받다가 북에 가보니까 그쪽은 일하는 사람들의 천당입니다.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쪽 가족은 참 안타깝고 잘모릅니다. 그 심정은 이해합니다. 내가 북송된다니까 편지를 가져온 납북가족들이 많아요. 최선을 다할 터입니다.

본질은 이런 문제도 풀어야 하고 또 산적된 문제들이 많지만 일시에 풀 수는 없어요. 이산가족문제도 상봉, 장기수 송환, 면회소 설치, 직접 내왕으로 나가야지요. 그런 문제도 자꾸 풀어나가야 하고 그 첫발로 6·15선언 관철을 위해 힘써야지요.

여야건 민족적인 관점에서 나서야하고, 이 기회 놓치면 역사에 후회가 될 겁니다. 이런 기회에 민족화합 통일로 가야 하는 거죠. 우선 군사비만 줄여도 우리 민족 참 잘 살 수 있습니다. 군사 무기라는 게 5년 되면 낡아 못써요. 깨진 독에 물 붓기고 미국 군산복합체들 무기 팔아먹는 것 밖에 없어요.

■우 : 국회에서 있었던 그 포럼에 국방부 전략가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래 내가 말했지. 몸에 칼을 품고서 어떻게 대화가 되느냐. 국민들은 남북공동선언을 지지하는데 을지포커스 훈련한다면 되느냐. 다시는 동족상잔이 있어선 안돼요. 여기 사람들의 사고와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하고 민족사적 요구에 부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통일 없이는 계급문제 해결 안돼

■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이 나왔고 통일분위기도 높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흐름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 지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우 : 우리 역사는 친일 세력을 청산 못한데 열쇠가 있어요. 그 잔당들이 전부 지금까지 설치고 있어요. 대체적으로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친일파 후예들이예요. 지금 통일운동은 20세기에 청산해야할 민족적 문제를 청산하는 운동이기도 해요.
또한 우리 역사는 일제 식민지 이후에도 외세를 청산하지 못하는 게 문제예요. 미국의 극동전략에 따라 여기도 신식민지, 피식민지 상태예요. 김대중 대통령도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없어요. 햇볕정책도 미국의 극동전략의 일환이라고 보아야해요. 그러나 미군 몰아내는 것은 남에서는 못해요, 북이 해야지. 조미평화협정으로만 가능한 거죠. 연방제로 이행하는 기초적인 문제는 평화를 정착하고 연북화해 정책을 펴서 사회 정치적 통합을 이뤄 연합제로 가야죠. 두 국가 공존은 통일하지 말고 영구공존하자는 것이죠. 언론들이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럴려면 국가보안법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민주노총이 통일운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어요. 감옥에 자꾸 가고 그래서 김대중 손들어주면 되느냐 그런데 민족문제 해결 없이 계급문제 해결 안돼요.

▶최하종(74세) 선생님


■최 : 울산이나 그런데 가면 질문을 받는데 6·15 이후 롯데호텔 같이 무자비하게 노동운동 탄압하고, 학생들 잡아들이는데 어떻게 현정권을 지지하느냐 하고 묻죠.
김대중 정권은 긍정적, 부정적 측면이 있어요. 부정적 측면은 계속 싸우고, 긍정적 측면은 인정해야죠. 통일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투쟁의 성과는 미국 신식민지하에서는 언제든지 무너집니다. 노동자들의 궁극적인 경제이익은 통일 됐을 때 확보될 수 있어요. 모두가 통일을 위해서, 근시안적으로 보면 안되고 거족적 장기적 안목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극동전략이 한반도에 큰 힘을 미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의 작용이 전혀 무시되어서는 안되겠죠. 미국은 남북관계 개선을 원치 않습니다. 남과 북이 이런 문제를 슬기롭게 넘겨야 합니다. 미국이 장난치면 남북은 일시에 긴장관계에 빠질 수 있습니다. 동해같은 곳에서 사소한 문제만 발생시켜도 바로 전쟁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미군철수 문제도 잘 접근해야 합니다. 이번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은 분단에도 책임이 있는 만큼 통일에도 미국의 책임 있다고 했습니다. 미국은 일방적 `남 우방, 북 압살` 정책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제 미군은 평화유지군으로 중립군으로 남았다가 점차 떠나야 합니다. 당장 나가라 해도 극동 이해관계 때문에 안나가거든요. 미군주둔 문제는 근본문제니까 반미투쟁은 끊임없이 강화해야 하죠.

연방제 통일 2∼3년 내에 할 수 있어

■ 이번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에서 통일방안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통일과정에 대한 기대가 더욱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신 : 국가연합 그 자체는 영원한 분단을 뜻합니다. 국가연합과 낮은 단계 연방제의 접점을 찾고 방향은 연방제를 전제로 해야지요. 연방제를 전제로 하지 않은 순수한 국가연합은 영구분단으로 경계해야 합니다.

■최 : 장관급 회담, 국회간 대화, 국방과 경제위원회 등을 열어놓고 점차 역할을 높여나가는 과정이 연방제 과정으로 봐야합니다.

■우 : 국가연합제와 연방제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죠. 단계적으로 점진적으로 통일을 이루자는 것과 지역정부가 각각 외교권과 군사권을 보유한다는 공통점이죠. 사실 국가연합은 낮은 연방제와 겹치는 대목이 많습니다. 공통성을 인정하고, 점차 높여 나가야죠. 만일 남북 단일 국회를 소집하면 그것이 바로 높은 단계의 연방제로 나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전에 평화정착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신 :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아요. 외무장관 회담도 했고, 양쪽 대사관들도 협의하고. 그쪽의 민족대표와, 이쪽의 국회에서 간접선거를 해서든지 뽑은 대표들이 민족의회를 만들고 연방정부를 만들어 외교, 국방 문제 협력하고, 경제교류하면 그게 바로 연방제죠.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울 오시고, 북과 미국의 외교 관계가 풀리면 상황은 급격히 풀릴 것입니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주의 체제를 단일체계로 만드는 통일은 민족공멸입니다. 제도통일은 우리 후대들에게 맡기면 됩니다. 철학, 경제방식도 후대들이 서로 좋은 점을 따서 단일 체계로 만들면 됩니다. 필요하면 후대들이 할 문제입니다. 현재는 민족이익에서 살아남으려면 통일방도의 유일하고 합리적인 방안이 연방제 밖에 없는 거죠. 그 첫걸음이 이번 6·15 남북공동선언입니다. 이제 우리 민족의 앞길이 훤히 보이고 있습니다.
연방제에 대한 거부감은 연방제 콤플렉스일 뿐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미국도 스위스도 연방제를 하고 있고 지방자치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느슨한 연방 외교와 국방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통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연방제 통일은 2∼3년내 할 수 있습니다.
언론이 국가연합과 연방제 문제 이런 걸 다뤄야 하는데 이산가족, 국군포로 문제 등으로 들떠있어요.

■최 : 문익환 목사님은 벌써 이전에 `이제 통일은 됐어`라고 했죠. 통일의 경계선이란 모호한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통일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

■우 : 정치학상 이념과 정치제도가 다른 것을 인정하고, 한 민족 두 체제 두 제도에 의한 연방제 하자는 것이죠. 이것은 세계 어느 다른 연방제에서도 유래가 없습니다. 이념과 체제가 다른 연방제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특수성을 연구해야 합니다.

차이를 인정하고 통일운동 저변 확대해야

■ 송환을 앞두고 심경이나 말씀하시고 싶은 것도 많으실텐데요. 편하게 말씀들 나눠주시죠.

■신 : 일부에서는 뭐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에 가면 대단할 것이다고들 하는데 영웅대접 받을 것도 아니고... 그 사회제도가 신념을 갖고 있고 그에 비추어 환영은 당연한 거죠.

■최 : 자기네들은 조창호도 그러면서, 조창호에 비하면 국가와 지도자에 충성을 다한 사람들인데. 이번에 조선국립교향악단 연주를 봤는데 음악도 모르지만 가슴이 울렁하더군요. 3000명 모두 초대받은 사람이지만 다 박수치더라구요. 전통악기 그거 가지고 섞어하는데 아리랑 편곡 한 것이 있는데 아주 좋아요. 민족적 정서 살리는 것 이거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내가 여기서 아는 무형문화재 수련하는 어떤 이는 우리 것을 그대로 보존하자고 하지만 북은 우리 것을 발전시켜 나간 것이죠.

■신 : 한마디 꼭하고 싶은 말은 통일운동도 서로 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서로가 처해 있는 환경, 보는 시각, 단체 성격이 다 다릅니다. 이런 차이를 인정해야 하고 다른 사람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해서는 안됩니다. 틀린 것은 그대로 놓아두거나 진지한 토론을 갖고 오랫동안 점차 해결해야죠. 조금만 틀려도 배척하니 큰 문제입니다. 통일은 이념과 사상 계급을 초월한 모든 사람이 단합해야 가능합니다.

■최 : 통일운동에서 중요한 문제점이 발견되는데, 재야통일운동권의 저변이 확대 안되는 점이죠. 모임이 있어 가보면 자주 보이는 사람만 보여요. 그 사람들은 이미 다 통일운동을 잘 알고 관심도 많은 사람들이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모이도록 해야 하는데. 그게 제일 문제라고 봐요.

■우 : 저는 이쪽 교육문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우리 민족은 일제시대부터 외세의 정치적 지배에 있었다는 게 특성입니다. 원래 외세는 민족적 단합을 해체시키고 그 민족을 분열시켜야 합니다. 따라서 교육방향이 늘 그래왔습니다. 해방 후 교육정책도 새 조국 건설을 위한 민족교육이 되어야 하는데 이쪽은 미군정이 일제 총독부 이상의 교활한 방법으로 반공이데올로기를 침투시켰죠. 미대사관의 공보관이 이런 것을 침투시키는데 앞장서 왔고, 대학교육이 상용화된 것도 엄밀히 보면 신식민지 정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죠. 1세기 반의 역사가 그러했습니다. 이제 교육정책이 민족교육으로 바뀌고, 미국식 교육 체계도 일단 들어와서 그 사회에 적용시켜 재정리되고 적응해야 합니다. 민족의 자주성문제와 계급문제는 교육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남기신 말씀들을 잘 정리하여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들의 건강하신 모습과 강한 신념을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 정말 마음이 좋습니다. 다시 한번 송환을 축하드리며 자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대담을 마치고 아쉬운 인사를 나눈 뒤 비전향 장기수 세분은 서둘러 자리를 일어서 목요집회가 열리는 탑골공원으로 향했다. 마지막 악수의 따스함을 남긴 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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