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문서들을 통해 한국 외교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 문제 처리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소외되고 있음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30일 일본 <교도통신>이 전한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 국무부 외교전문에는 중국이 지난해 4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중미 3자대화를 미국에 비밀리에 제안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개최를 한사코 반대하며 미국의 발목까지 잡고 나선 상황이었고, 한미동맹만 튼튼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중국 정부로서는 한국 정부와는 북핵 문제를 논의해봐야 아무 소득이 없을 것이고, 어차피 미국의 입장만 돌려놓으면 한국은 따라갈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었을 것이다.

물론 중국의 비밀 제안은 미국의 불응으로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한반도 문제에 한국이 당사자로 취급받지 못한 구체적 사례로서 참으로 우려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더해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외교안보 비서관을 지낸 박선원 미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은 30일(현지시간)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10월 중순 워싱턴에서 만난 고위관계자의 충격적인 발언을 전했다.

미국 고위 관계자가 “김정일 정권이 곧 망할텐데 한국이 북한을 다 접수하면 중국이 싫어할 테니 좀 떼줘야 한다”고 말했고 박 연구원이 “무슨 말이냐 북한 땅 일부를 떼주자는 거냐?”라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다시 “어디? 신의주나 나선지방?”이라고 되묻자 고위 관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

통일된 한반도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영토 일부를 떼어주네 마네 하는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이를 두고 “카스라-태프트 밀약이 떠오르는 군요” 등 개탄스런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박선원 연구원은 “신라가 삼국 통일한다며 고구려 절반이상 당나라에 떼준 게 떠오른다”면서 심지어 “한국관리들이 미국과 비밀대화에서 파란불을 켜줬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국 정부의 사전 양해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혹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외교부 차관 시절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이 스티븐스 주한미대사에게 “김정일 사후 2~3년 내에 북한이 붕괴될 것”이고 “중국의 젊은 세대 지도자들은 한국이 통치하고 미국과 우호적인 동맹으로 연결된 통일한국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자신하는가 하면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김정일은 현재 정권을 확고히 장악하고 있지만 2015년 이후까지 살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하는 등 근거 없는 북한 붕괴론과 한국 주도 통일론의 달콤한 환상을 키워가는 사이 미국과 중국은 한국 정부도 모르는 비밀 제안들을 주고받으며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하려드는 셈이다.

한국 정부의 고위 통일.외교.안보 관리들이 근거없는 허장성세를 내세우며 말잔치만 늘어놓는 사이, 미국과 중국은 실질적인 한반도의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에 한국을 슬쩍 제쳐두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현 정부의 부끄러운 외교성적표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한창이던 2003년 리영희 선생이 한 토론회에서 “미국과 중국이 북한을 놓고 주고받기(Give and Take)를 해 중국이 대만을 수용하는 댓가로 북한을 미국의 지배하에 넘겨주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고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한반도 민족은 예의주시하며 국제적 통찰력과 지혜를 갖고 대처해야 한다”고 촉구하던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2005년 6자회담에서 9.19공동선언이 채택되자 처음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우리 손으로 썼다고 벅차게 보고하던 송민순 당시 6자회담 수석대표의 자부심을 현 정부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것일까?

(추가,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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