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대북수해지원 결정으로 물꼬를 텄던 남북관계 개선 움직임이 속도 조절되는 모습이다.
통일부는 북측이 제의한 금강산 관광 재개 관련 회담에 대한 검토를 계속해서 미루고 있으며, 지자체의 대북 쌀지원을 막으면서 활발해지고 있는 대북인도지원에 제동을 걸었다.
특히 북한의 금강산 관광 회담 제의에 대해 통일부는 '지연 전술'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 2일, 북한이 15일 개성에서 금강산 관광 회담을 갖자고 제의한 이후, 현인택 통일부 장관의 첫 일성은 "당장 검토하지 않을 것"이었다.
'금강산 관광 회담은 시급하게 검토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통일부의 입장은 북한이 회담을 제의한 지 10일이 지난 현재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통일부는 12일 대북통지문을 보내 "북측이 제의한 남북 당국 간 실무 회담에 대해서 남북적십자 회담(10.26-27)과 이산가족 상봉행사(10.30-11.5) 일정 등을 감안하여 추후 우리 입장을 통보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회담 일정뿐만 아니라 회담 제안에 대한 입장도 추후에 통보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회담을 수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북한에 대해 고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금강산 관광 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북한이 이에 반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합의된 적십자회담과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예정대로 치러질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정부도 금강산 관광 회담 자체를 거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정부는 일단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우선 하고 보자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산가족상봉 직후 쯤 금강산관광재개를 개최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자치단체의 대북 쌀지원을 보류시킨 것도 남북관계 개선 움직임을 더디게 하려는 조치로 읽힌다. 통일부는 12일 반출 예정이었던 경남도 기금으로 마련한 600여톤의 대북지원용 쌀 반출을 보류시켰다.
통일부는 보류 이유에 대해 "북한 수해지역의 규모 등을 고려하여 국가 차원에서 긴급 구호를 위해 이미 5천 톤의 쌀을 지원키로 하였으며, 정부 차원(지방자치단체 포함)에서 추가 지원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로 지자체 대북 쌀 지원 승인을 보류했다"고 밝혔다
이는 대한적십자사의 수해지원 이후 대북 쌀지원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자 민간단체 수준으로 대북 쌀지원을 묶어놓으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남북관계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산가족상봉 및 소규모 인도지원 수준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마무리 지으려는 분위기다. 이같은 판단에는 이후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지더라도 큰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깔려 있다.
그러나 미국이 11월 중간 선거 이후 대북정책을 전환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 외교안보 소식통은 "미국 내 외국 전문가 그룹들 중심으로 현재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기류가 강해 오바마 정부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 내에서도 이에 대한 판단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통은 "미국의 정책 변화에 대한 전망을 놓고 정부 내에서도 혼선이 있는 것 같다"며 "한쪽에서는 우리가 강하게 반대한다고 해서 미국이 우리를 팽개치고 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고, 다른 한쪽은 통미봉남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칫 우리가 주도하지 못하는 국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 외곽에서는 이번 하반기부터 상반기가 남북관계 및 한반도 정세를 풀 수 있는 적기라며 이명박 정부의 유연한 대북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국내 안정화를 위해 11월부터 2차 대남 평화공세를 취할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도 임기 2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마냥 대립할 수 없다. 앞으로도 소극적인 태도를 위하면 남북 경색 국면에 대한 정권이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