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가 3월 천안함 사건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추석 명절이 지난 현재 한반도 정세는 올해 초 상황과 상당히 닮아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난해 6-7개월에 걸쳐 진행됐던 과정을 1-2개월 사이에 복구하는 등 상당히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다.
회복이 가시화된 시점은 지난 8월 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이었다. 방중 이후 북한은 남북간 대화를 잇따라 제안했으며 6자회담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시간상으로 남북관계가 6자회담에 선행하면서도, 6자회담 정국이 남북관계를 끌고 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산가족. 인도지원 ->군사회담, 금강산 회담... 수순 밟기
지난해 남북관계는 9월말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이어 12월 신종플루 치료제 등 100억원 대 대북인도적 지원, 올해 1월 남북 군사실무회담 제안, 2월 금강산 관광 문제 협의를 위한 남북 당국간 실무접촉까지 이어졌다가, 천안함 사건으로 모든 대화와 접촉이 중단됐다.
현재 남북관계도 천안함 사건 이전 수순을 그대로 밟고 있는 모습이다. 9월 남측은 100억원 규모의 대북 인도적 수해 지원을 결정했으며, 북측은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다. 지난 17일 개성에서 열린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10월 21일부터 27일까지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갖기로 구두 합의된 가운데 구체적인 행사 장소 문제 협의만 남아 있다.
북측이 오는 27일 2차 적십자 실무접촉에 지난 2월 금강산 실무접촉에 나섰던 관계자를 보내 금강산 관광 지구내 시설 사용 문제를 별도로 협의하겠다고 제안하면서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도 7개월 만에 불씨가 살아나는 모습이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계기로 금강산 관광 문제 협의를 위한 당국간 실무접촉이 재개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오는 30일에는 판문점에서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이번 군사실무회담에서 남측이 '천안함 피격사건'에 대한 북측의 책임있는 조치 등을 논의하자고 제안하면서 남북이 천안함 문제를 놓고 처음으로 대면한다는 측면에서 관심이 높다.
이같은 북측의 잇단 대화 제의는 6자회담으로 가는 길목에서 남북관계를 지난 3월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6자회담 전망, 11월 美 중간선거와 맞물려 호전
6자회담 재개 문제는 아직까지 가시화되고 있지 않지만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다는 평이다. 이 역시 3단계 방안(북.미대화 -> 6자 예비회담 -> 6자 본회담)이 실현되기 직전까지 논의가 진행된 지난 3월 상황까지 서서히 회복하는 모습이다.
특히,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미국이 11월 중간선거를 계기로 입장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점은 지난 3월 보다 더 좋은 여건이라는 분석이다.
이달 초 우다웨이 특별대표는 워싱턴 방문 계기에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 보즈워스 특별대표 등에게 '북한이 진전된 비핵화 조치를 준비 중이니 미국이 한국을 설득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미국측은 우다웨이 대표에 뒤 이어 워싱턴을 방문한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에게 '미국은 한국의 동의없이 북한과 대화하지 않겠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가 필요하다'며 우회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진행된 남북관계 개선 움직임도 이같은 미국측의 설득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6자회담 재개가 가시화되는 시기는 한국의 G20개최와 미국 중간선거가 예정된 11월 즈음이 될 것으로 보인다. 10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등으로 남북관계 개선이 어느 정도 궤도 위에 올랐을 때 6자회담 재개가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천안함 분리대응이 관건"... 한국 고민 중
이같은 북한의 적극적인 행보와 주변국의 태도변화에 대해 한국은 '천안함 문제'를 어느 수준으로 매듭지어야 할 지 고민에 빠졌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지난 17일 한 학술회의에 참석해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제쳐두고 6자회담으로 가려한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남북관계 여타 현안과 6자회담을 천안함 사건과 분리 대응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천안함 사건 해결을 6자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다만 대규모 식량지원,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어느 정도 수준의 남북관계 개선은 천안함 사건 해결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현 정세에 천안함 이전으로 복귀할 수 있는 요소는 만들어 졌는데, 천안함을 완전히 넘어선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방점이 천안함에서 다른 이슈로 옮겨간 것은 명확하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천안함을 6자회담이나 대규모 식량지원을 포함한 대북 인도적 지원과 분리시켜야 한다"며 "인도적 지원과 6자회담 재개를 통해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천안함 문제를 용해시켜 풀어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