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현재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지나치게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거기에는 위협이 따른다. 중국의 부상에 대해 다른 나라는 위협으로 느낄 수 있다." (윌리엄 코언 전 미국 국방 장관)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이 서울에서 진행된 한 토론회에서 재연됐다. 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통일부가 주관한 '코리아글로벌 포럼'에서 코언 전 장관은 초청 강연자로 나섰고, 진창룽 부원장은 포럼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 두 인사의 신경전에서 최근 미국과 중국이 한.미연합훈련, 남중국해 영토분쟁 등을 둘러싸고 한 차례 갈등을 겪은 이후 여전히 남아 있는 감정의 앙금이 그대로 드러났다.
코언 전 장관이 먼저 중국측을 자극하는 발언을 쏟아 냈다. 코언 전 장관의 초청 강연에는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중국의 '북한 포용정책'에 불만을 드러내는 미국 정부의 입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중국의 경제력은 확대되고 있고, 군사력도 더욱 강해질 것이다. 여기에 따르는 책임도 있을 것이다. 중국은 세계가 볼 때 더 건설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중국이 세계 강대국이 되는 것에 대해 북한을 포용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앞으로 중국은 북한에 대해 이 정도로 많이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은 일본과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중국의 부상을 제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이상을 가진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은 국제체제에 평화적으로 유입하기 위해 이들 국가 간 불신을 완화해야 한다."
코언 전 장관의 강연과 질의응답이 끝날 무렵, 진찬롱 부원장이 손을 들어 질의권을 얻었다. 질문이라기보다 강연에 대한 논평이었다. 강연이 진행되는 동안 불편한 심기를 숨기고 있던 그는 "미국은 자신감이 없어진 것 같다"라는 말로 일침을 가했다.

진찬롱 부원장의 발언에는 미국이 초강대국이라면 북한 문제를 중국에 맡길 것이 아니라 나서서 풀든지, 초강대국의 지위를 잃었다면, 중국의 대외 정책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불만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코언 전 장관은 "미국은 러시아, 중국, 브라질 등의 국가들이 부상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다"면서도 "누군가는 컨센서스(동의)를 도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새롭게 부상하는 국가가 이런 일을 할 것이냐, 좋든 안 좋든 미국은 세계정세에서 안정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 경제위기와 아프간.이라크 정세 악화 등으로 '힘 빠진 호랑이'가 된 미국의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는 "미국 국내 상황이 쉽지 않다. 미국 국내 문제가 많아서 세계는 알아서 놔두자는 목소리도 많다"며 "미국은 이러한 리더십을 계속 제공해야할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중관계가 과거 냉전시대처럼 대립구도를 형성할 것이라는 전망은 많지 않다. 한국 정부도 한국과 미국이라는 한 축과 북한과 중국이라는 한 축으로 구분해서 정세를 보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이다.
이번 코리아글로벌포럼 의장을 맞은 한승주 전 외교부 장관도 이날 환영사에서 "미.중관계가 극단적인 갈등이나 경쟁구도로 발전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며 "양국 사이의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양측 모두 현재의 양국관계를 파국으로 이끌어 가는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게 할 만큼 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존의 강대국이었던 미국과 새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자존심 싸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싸움을 결정적으로 촉진시킨 사건이 한반도의 '천안함 사건'이었다. 동북아 정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정세가 냉전으로 회귀하느냐 다자체제를 구축하느냐의 열쇠는 한반도가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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