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정인 교수의 신간 『중국의 내일을 묻다』(삼성경제연구소) 표지. [자료사진 - 통일뉴스]
“중국은 주변국가에 내정간섭을 안 한다는 것이 기본원칙이고, 북한 역시 주체사상을 강조하는 나라인데 후계자 문제를 ‘책봉’ 식으로는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론이 북한이나 중국을 너무 모른다.”

8월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에 대해 국내 언론은 물론 전문가들도 대부분 ‘중국, 북한 후계 승인’을 언급하며 소설 수준의 관측들을 내놓을 때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처음도 경제, 두 번째도 경제, 마지막도 경제”라며 이같은 판단을 내놓았다.

그가 이처럼 확고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면 그의 신간 『중국의 내일을 묻다』(삼성경제연구소)를 펼쳐보면 자연스레 답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20명 가까운 중국 최고의 전문가들과 인터뷰나 대담 형식으로 중국 대내외 정책의 속살을 헤집어 드러낸 중국에 대한 일종의 최신 보고서다. ‘우리가 알던 중국은 없다’, ‘중국 최고 지성들과의 격정토론’, ‘중국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 인터뷰’라는 소제목이 전혀 손색이 없다.

문정인 교수는 2009년 말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의 ‘리셴(禮賢) 스콜라’로 초청받아 연구하면서 중국의 미래 비전과 중국의 대외전략, 중국과 한반도, 중국의 과제 등 주요한 주제들에 관해 중국 최고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결과물로 이 책을 펴냈다.

사실 중국은 우리나라와 제1 교역국이자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냉전시대 때 다른 진영에 속했던 탓인지 1992년 수교 이후에도 경제분야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심리적 간극이 존재하고 내막을 알기 힘든 나라로 남아있다. 어느 때는 무섭게 부상하는 위협적인 강국으로, 어느 때는 내부 문제도 해결 못해 쩔쩔매는 개발도상국으로 막연한 인상들만 떠오를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을 펼쳐 보면, 중국이 스스로 생각하는 미래만 보더라도 정답처럼 제시돼 있는 “대외적 평화, 대내적 조화라는 기조 아래 중국의 발전을 중장기적으로 모색하겠다는 국가전략”이라는 정비셴의 ‘화평굴기론(和平崛起論)’은 물론, “경제 부문 못지않게 정치, 군사 부문에도 정책적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옌쉐퉁의 ‘대국굴기론(大國崛起論)’, “모든 사람과 국가가 동등하며 중심이나 중앙정부가 없는 세계”를 추구하는 자오팅양의 ‘천하세계론(天下世界論)’ 등 중국 내부의 다양한 논의들을 제대로 알 수 있다.

또한 미국 일극체제에서 새로이 부상하는 중국을 포함해 세계질서를 재편해야 한다는 함의를 담은 이른바 ‘G2’라는 신개념에 대해 중국 전문가들이 대부분 거부감을 갖고 있으며, 친야칭과 장위옌 등 주류 전문가들 다수가 G20을 유용한 틀로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의 관심사인 중국의 대북, 대한 정책 즉 한반도 정책에 관한 중국 전문가들의 견해가 흥미롭다. 대북 강경책을 주장해 ‘중국의 네오콘’으로 불리는 장렌구이는 “김정일이 살아 있는 한 북핵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며 “정치.경제.무력 제재를 동시 또는 점진적으로 가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지만,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 김경일은 “2009년 5월 북한 2차 핵실험을 3차 핵위기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데, 그 책임은 한국과 일본에 있다고 본다”며 “중국이 한반도에 개입해서 이득을 본 적이 없다”고 반론을 편다.

이처럼 다양한 시각을 가진 중국 전문가들이지만 대다수는 북한 붕괴론에 동의하지 않고 있으며, 6자회담을 한반도 문제 해결과 동북아 평화 수립을 위한 유용한 틀로 간주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자국의 굴기를 위해 미국과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한반도의 안정 역시 긴요하다는 인식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음도 알 수 있다. ‘동북공정’을 비롯한 한중간 미묘한 국민의식의 기류에 대한 그들의 답변도 흥미롭다.

활발한 학술활동은 물론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가하는 등 ‘마당발’을 과시하고 있는 문정인 교수의 신간 『중국의 내일을 묻다』는 학자가 사실상 전문기자가 되어 발로 뛴 성과물이라는 점에서 시사성과 전문성이 잘 결합된 특별한 수작이다.

저자의 오랜 학술활동과 정치활동 과정에서 다져진 중국 전문가들과의 깊은 인간관계는 ‘꽌시(關係)’를 중시하는 그들에게 속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게 했고, 국제정치학에 관한 높은 식견은 그들의 논리를 객관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반도의 미래에 관심을 갖는 이라면 누구나 일독을 통해 저자의 지적재산을 훔쳐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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