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연세대에서 문정인 교수를 만났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이 정부의 대북정책 결정구조는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인 지난 18일, 문정인 교수는 지난해 하반기 활발하게 추진되던 남북정상회담이 결렬된 게 "이해가 잘 안 된다"면서 이같이 꼬집었다. 지난해 DJ 서거 시 북측 특사조문단의 방남을 이끌어낸 숨은 주역인지라, '3차 남북정상회담' 무산에 따른 아쉬움이 더 큰 듯 했다.

"대통령께서 임태희 장관을 (싱가포르에) 보냈을 때는 그만큼 관심이 있었을 것 아닌가. 더구나 금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이 대통령이 BBC하고 인터뷰할 때도 (정상회담) 말씀하셨는데, 왜 상황이 이렇게 됐는지 이해가 안된다."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세' 논의를 제안한 데 대해서도 "아닌 밤중에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고 했다. '진정성'도 의문이려니와 "한반도 통일의 미래 구상에 대한 명확한 비전도, 그에 따른 통일비용도 산정하지 않은 채 통일세를 거론하는 것은 '총론 없는 각론'의 우를 범하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난맥상의 배경에는 '비핵.개방.3000'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며, '노무현.김대중이 했던 것은 안 된다'는 "닫힌" 생각에 젖어 있는 이 정부 외교안보 관계 핵심 참모들의 폐쇄성이 있다고 짚었다.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대통령에게 누가 되고" 식으로 선을 그으며, 반사적.즉흥적 대응을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천안함 사건' 대응과정에서 현 정부가 중국의 행보를 오판한 데 대해서도, 문 교수는 "중국을 과소 평가한 결과"라고 잘라 말했다. "'미국이 뒤에 있으니까 중국도 따라 오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대중외교를 하다 "잘 안되면 '중국 나쁜 놈들, 공산주의 국가는 어떨 수 없어'하는 가치판단적 결론을 내려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으로부터 비롯된 미.중갈등이 동북아 신냉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에는 "아직 이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지난해 베이징 대학 국제관계학원 초빙교수로 재직 중 만났던 당대 중국 최고 지성 21명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중국의 내일을 묻다'는 책을 최근 출간하기도 했다.

문정인 교수와의 인터뷰는 18일 오후 서울 연세대학교 연희관 내 교수실에서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지난해 남북관계 반전은 DJ의 마지막 선물"

▲ 문 교수는 'DJ의 마지막 선물'이 결실을 맺지 못한 데 대해, 못내 아쉬워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통일뉴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다. 북 조문단 방문과 그 이후 정상회담 추진되면서 남북관계가 풀릴 것도 같았는데, 잘 안 됐다.

■ 문정인 교수 : 그 때 상황을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다. 당시 나는 김대중 대통령 국장 장례위원으로 위촉이 됐다. 특히 북측 조문 사절단 관련 실무는 임동원, 박지원, 정세현, 문정인 이 네 사람이 모든 협의를 했었다. 북측 조문단 문제는 사실 내가 제일 먼저 제의 했다. 작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시 북에서는 조문사절단 하나 보내지도 않았고 장례기간 중 2차 핵실험 해버렸다. 이에 대해 보수 측 비판이 거셌다. ‘정상회담 까지 한 대통령에 대한 북측 예우가 겨우 그 정도냐’라는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높았다. 그래서 김대중평화센터에서 북측에 최소한 부음을 알리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냈다. 모두가 찬성했다. 북측에 수요일(19일) 밤 11시 경에 중국 경유 팩스 부고를 보냈는데 답신이 다음 날 (20일) 아침 7시경에 왔다. 김정일 위원장이 특사 조문사절단 파견을 결정했고 당 비서를 포함해서 5명을 보낼 것이라고 했다. 이름을 구체적으로 명시 안 했다. 당 비서하니까 우리는 김기남 비서가 오는 것으로 알았고, 김기남 비서가 오면 자연히 김양건 부장도 올 것으로 봤다.

답신 내용 중 또 하나 특기할 만한 것은 21일 '특별기'편으로 오니까 관련된 제반 행정 편의를 해 달라는 것 이었다. 당일 귀환을 예정하고 있지만, '남측이 희망하면 1박을 더 체류할 수도 있다'는 점도 밝혀 왔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이 가능하다면 추가 체류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내 비친 것으로 파악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 해프닝이 있었다. 정세현 장관이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으로 현인택 장관을 포함한 대정부접촉 창구 역할을 했는데 당시 '모든 것을 정부 채널 통해서 하자, 팩스 온 사실도 정부에 먼저 알리고, 정부가 발표하도록 하자'는 원칙을 세웠다. 그리고 11시 반 경 현인택 장관이 문상을 오기로 했는데, 그때 정세현 장관이 진행 사항을 현 장관에게 설명을 해주고 통일부가 이를 정식 발표하도록 결정했다.

그런데 박지원 의원이 10시 경에 북쪽 특사조문사절이 온다고 (발표)해버렸다. 당시 박 의원이 너무 바빠서 사전 조율이 안 되었던 것으로 안다. 그때부터 통일부 포함해서 청와대까지 '이럴 수가 있냐. 모든 것을 우리와 협력한다고 해놓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면 어떻게 하느냐.' 그리고 이동관 홍보수석은 북측의 특사조문사절단을 아예 '사제 사절단' 으로 폄하하고 '우리가 할 게 뭐 있냐'는 식으로 나와 버렸다. 그 때부터 통일부와는 협조가 안 되었고 북측 사절단을 위한 호텔 방도 우리가 예약해야만 했다.

특사 조문단이 왔을 때 (북측과) 만찬과 조찬을 했다. 임동원, 정세현, 문정인 세 사람 만이 이 두 자리에 모두 회동했다. 그때 북측 인사들 이야기는,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때는 상당히 실용적인 노선을 표방하고, 어떤 때는 아주 경직된 강경노선을 보이고 있는데 어느 것이 진짜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대통령을 직접 만나보고 그 진정성을 확인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우여 곡절 끝에 김덕룡 민화협 상임공동의장 겸 대통령 특보 도움으로 북측 조문단의 대통령 접견이 일요일(23일) 아침 9시에 성사되었다. 만나고 와서는 북측 사절단의 표정이 밝아 졌다. 잘 풀린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웃음). 북쪽 김기남, 김양건, 원동연 등이 청와대 들어가서 이명박 대통령 30분 만나고 오더니만 '남북관계를 희망적으로 본다'고 했다. 그 후속 조치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개성에 억류되어 있던 유 씨를 풀어줬고, 이산가족 재상봉이 이루어 졌는가 하면 연안호도 풀어줬다. 또,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 방송도 중단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싱가포르에서의 임태희, 김양건 접촉이 마련된 것 아니었나. 이와 같은 남북 관계의 반전은 김대중 대통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 아니었나 하는 느낌도 든다.

□ 북 특사조문단이 다녀가면서 정상회담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나, 통일부가 중간에 끼면서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 그 부분은 잘 모르겠다. 현 정부하고 가깝지 않으니까. (틀어진 데 대해서는) 나도 이해가 잘 안 된다. 10월 말까지 잘 됐다가 결국 결렬됐고, 11월에 대청해전이 생기면서 남북관계가 또 경색이 됐고, 그러면서 천안함 사건으로 이어졌는데, 대통령께서 임태희 장관을 보냈을 때는 그만큼 관심이 있었던 것 아닌가. 더구나 금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이 대통령이 BBC하고 인터뷰할 때도 (정상회담) 말씀을 하셨는데, 왜 상황이 이렇게 됐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 정부의 대북 정책결정 구조는 참으로 불가사의 하다.

"통일세,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남북관계가 '최악'인 데, 느닷없이 이 대통령이 '통일세' 화두를 던졌다.

■ 기본적으로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이 3단계 통일론이라든가, 통일세에 대해서 얘기한 것은 상당히 긍정적인 면이 있다. 이 정부 들어와서 분단, 군사 대립만 얘기하다가 갑자기 통일과 통일세를 거론하니 그 내용에 관계없이 통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높아졌고, 통일에 비용이 든다는 인식도 하게 됐고, 그것을 위해서 통일세도 마련해야 되지 않느냐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자체가 역설적으로 상당히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2년 반 동안 실종되었던 '통일' 담론과 실천 문제가 공론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면, '아닌 밤중에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 왜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 국면에서 통일세 제안이 나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10.4 정상 선언에 따른 45개 합의 사항을 단계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에서 이 제안이 나왔다면 우리 국민도, 북도 그 진정성을 믿겠지만 그게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까 북의 조평통에서 이를 "전면적인 체제대결선언"으로 규정하고, "어리석은 망상인 '북 급변사태'를 염두에 둔 불순하기 짝이 없는 제안"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 뿐만 아니라 현안에 대한 좀 체계적인 연구를 하고 이런 제안이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통일세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규모와 성격은 기본적으로 통일 비용에 의해 결정이 된다. 통일 비용은 또한 통일의 형태에 의해 좌우된다. 이번 대통령 통일세 제안의 근거로 지목되는 대통령 자문 미래기획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이 점이 분명해 진다. 이 보고서는 2개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있다. 그 하나는, 급변사태가 북한 붕괴, 그리고 흡수통일로 이어지는 경우 통일 비용이 30년에 걸쳐서 2조 1400억 불(2,550조원) 정도 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점진적 개방.개혁을 통해 합의 통일을 이룰 경우 통일 비용은 약 350조원으로 흡수 통일의 1/7 수준이면 충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흡수 통일 노력이 잘 안 풀리고 한반도에 전쟁이라도 발생하고 그 결과에 따른 통일, 소위 무력 통일이 발생 할 경우, 통일 비용은 막대한 인명 손실은 물론 8,000 조원 이상의 전후 복구 및 통일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만일 남쪽이 북에 대해서 계속 경제적 고립, 봉쇄를 꾀하면 북한이 중국하고의 경제협력을 더 강화되고 북한 경제가 사실상 중국 의 경제적 신탁 통치하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통일 비용은 더 줄어든다. 중국이 많이 감당하니까. 그러나 통일은 지연되고 추후 북한에 대한 우리의 진입비용은 높아질 것이다. 이렇듯 통일 비용은 통일의 형태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통일의 미래 구상에 대한 명확 비전도, 그리고 그에 따른 통일 비용도 산정하지 않은 채 통일세를 거론하는 것은 ‘총론 없는 각론’의 우를 범하는 것과 같다.

더구나 통일 비용이 추산 된다 하더라도 통일세 비중은 아주 작을 수 있다. 왜냐 하면 시장을 통한 대북 민간 투자, 대일 청구권 자금, 미국, 일본 등의 양자 원조, 그리고 국제기구를 통한 공여 등 통일 비용은 여러 경로를 통해 조달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재원 조달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통일세’를 불쑥 제안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 북한의 급변 사태와 내부 붕괴가 점차 가시화 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통일 비용을 지금부터 준비하자는 주장인 것 같은데 이에 동의 할 수 없다. 북의 체제 붕괴 가능성이 아주 적을 뿐 만 아니라 합의형 통일이 아주 경제적인데 우리가 고비용의 흡수 통일을 추구할 필요가 있는가? 이 점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가장 바람직 한 것은 10.4 남북정상선언의 이행이다. 그 선언에 따른 45개 합의 사항을 실천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4~5년 사이에 100조 정도 든다고 한다. 그것만 잘 되어도 북한 경제가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갈 것이고, 그러면서 남북한 간에 화해협력이 되고,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면 국제자본도 들어가면서 나아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다양한 가능성 많은데, 그 중에 딱 하나 '급변사태'로 북한이 붕괴되는 것만 전제로 하여 통일 비용을 산출하고 통일세 부과를 이행 한다면 국민적 조세 저항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통일세 문제 포함해서 제일 큰 문제는 북한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이다. 북한이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붕괴가 되고 바로 투항해서 우리한테 와서 흡수통일 된다는 가정인데, 그것은 잘못돼도 너무나 잘못된 가정이다.

"이 정부 대북정책에는 역지사지 안목이 없다"

□ 이 대통령은 '선평화론', '선비핵화론'을 말하면서 '핵을 가진 북한과는 교류.협력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번 논의를 진지하게 끌어가기 위해서도 '핵을 가진 북한과 절대로 교류협력 할 수 없느냐, 민족문제는 절대 논할 수 없느냐'는 화두를 던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이 정부의 대북정책은) 모순 천지다. 북한을 강력하게 선제타격 하겠다고 하면서 정작 전작권 환수는 지연시킨다.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 교류. 협력해서 신뢰가 구축되기 전에 어떻게 평화공동체가 가능한가. 순서가 맞지 않는 것이다.

잘못된 발상 중 대표적인 게 힘의 우위에서 북한에 대해서 압박을 가하면 북한이 고개 숙이고 나올 것이고 안 그럴 경우, 북한 체제는 멸망의 길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평화가 오겠냐. 그럴수록 북한은 더 강력하게 저항을 할 텐데. 사람 관계나 남북 관계가 다를 바 없다고 본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서로 신뢰가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강조 해 오셨다. 신뢰는 어디에서 오는가? 신뢰는 기본적으로 교류와 협력, 자주 만나야 생기는 것 아닌가? 교류와 협력을 계속 하려면 뭐가 필요 한가? 북의 입장을 이해하고 북의 정체성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역지사지의 심정을 가지고 봐야 한다 그러면 역지사지의 심정을 가지고 북하고 교류하는데 어려운 것부터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결국엔 쉬운 것부터 먼저 하고, 어려운 것은 나중에 하고, 정치적인 문제는 복잡한 문제들이 많으니까 선경후정(先經後政)해야 한다.

지금은 완전히 거꾸로 됐다. 선난후이(先難後易)다. 어려운 것부터 먼저 풀려고 하고 있다. '일괄타결' 방식이라고 자기네들은 생각하는데, 지금 정부의 대북 정책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역지사지의 안목이 없는 것이다. 소위 대한민국은 강한 국가고, 강한 국가가 강자의 시각에서 약자인 북한을 보는, 강자가 약자를 볼 때는 결국 역지사지가 필요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 친구들은 독일 철학자 헤겔을 다시 읽어야 한다. 헤겔이 얘기했던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보면 아무리 주인이라 해도, 노예가 주인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그 주인은 주인으로서 정체성을 찾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과 노예는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된다는 것이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도 그러할 진대, 대등한 소위 주권을 가진 남과 북이 한쪽이 강하다고 저쪽에서 (굴복하겠나),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 이 정부에 체계적인 대북.대외 정책이 없다는 비판이 많은 데.

■ 지금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닫힌 생각에 있다. 지난 대선 때 공약이었던 '비핵.개방.3000' 이나 'ABR(Anything But Roh) 노무현이 했던 것은 안 된다'는, 또는 'ABDJ (Anything But DJ) 모두 얼마나 반사적이고 경직된 정책들 인가. MB 정부의 외교안보 관계 핵심 인사들은 이러한 폐쇄적 인식의 사회화를 공유하고 거기서 못 벗어나고 있다.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대통령에게 누가 되고, 자기 원칙에 손상이 오고, 이런 식으로 상당히 폐쇄된 집단사유를 하는 것이다. 거기서 '이거 아닌데, 바꿔야 하는데' 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이다. 참으로 걱정된다.

대북.대외정책에서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 그는 자신을 '리버럴'이라고 규정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지난 6.29 사회통합위원회 등에서 발표한 '진보적 시각에서 대북정책 대외정책' 봤다. 이 기회에 골자를 들려주신다면?

■ 그 논문에서 나는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국제 정치를 보는 인식 차에서 온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현실적 제약을 인식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와 구성주의를 표방했다. 자유주의에선 국제관계가 무정부주의인 것은 아니고 조화와 협력의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서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그것을 제도화해서 공동 평화와 번영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남북관계든 지역관계든 그렇게 하고, 다자주의적 협력을 통해서 인류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생각이 상당히 강하다.

그리고 구성주의는 외교에 있어서 정체성과 역지사지를 강조한다. 외교에는 상대가 있고 상대를 헤아리는 마음이 없으면, 협력의 외교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상대방의 정체성을 인정해주고, 그 안에서 대화를 해서 신뢰의 공간을 확대해 나간다는 것이다.

대북정책에서 진보와 보수의 시각차가 확연히 드러난다. '진보 10년'의 대북 정책 핵심은 남북기본합의서 1조에 따라 북의 체제. 이념 존중해주고 내정간섭하지 않고, 이 바탕 위에서 서로 대화, 교류, 협력을 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아무리 북한이 독재체재라 해도 북한체제를 인정하고 대화를 해야 신뢰가 생길 것 아니냐는 것이 진보의 시각이다. 그런데 지금 MB정부에서는, 북한 체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급변사태 운운 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강압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이는 커다란 오산이다.

두 번째, '진보 10년'에서 강조한 것은 교류.협력이다. 교류. 협력해야 만이 이를 통해 만날 수 있고, 만나야만이 신뢰를 쌓을 수 있고, 신뢰가 있어야만 평화공존이 가능하고, 평화공존이 가능해야 평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교류.협력의 활성화를 강조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MB정부는 북한이 비핵화 하기 전에는 교류.협력 할 수 없고 지난 정부의 ‘퍼주기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상호주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면서 교류, 협력을 회피하고, 그 책임을 북에 전가, 북의 국제적 고립과 봉쇄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교류, 협력에 따른 북의 현금 확보는 북의 핵무장을 더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과거의 관성대로 북한과 교류, 협력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 차이점은 '진보 10년'에서는 북한이 그렇게 쉽게 망할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적했듯이, 북한의 어떠한 무력도발도 용납하지 않겠지만 우리도 흡수통일하지 않겠다 그 조건에서 교류.협력 강화해나가자, 그리고 사람과 물자가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사실상의 통일’을 만들어 나가자 그것이 '진보 10년'의 기본적인 원칙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북한 경제의 화폐개혁 실패 등 이런 것을 보면서 '조금만 국제공조를 통해서 북한을 고립시키고, 봉쇄하면 북한이 곧 망할 텐데, 그러면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흡수 통일이 가능 할 터인데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지금 북한을 도와준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염원하는 흡수 통일의 꿈을 실현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국민들이 비난하더라도 전략적 인내심을 가지고 북한을 옥죄면 항복해서 나오거나 아니면 스스로 붕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 (wishful thinking) 하에 대북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해괴한 현실인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네 번째 차이는 지난 10년 '진보 정부'에서는 북한하고도 신뢰 구축이 가능하다고 보는 반면, 지금 이명박 정부는 북한은 본질적으로 거짓말쟁이고 그렇기 때문에 신뢰 구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김정일 체제가 망하고 없어져야만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통일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과거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과 똑같은 생각이다.

다섯 번째로 북핵 문제만 하더라도 진보와 보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진보 정부' 10년 동안은 교류.협력을 해서 신뢰가 쌓이고 북한이 체제나 국가안보에 위협이 없다고 느끼면,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 MB 정부는 '아니다, 결국 핵 무기라는 것은 체제 안보용이기 때문에 체제가 없어져야 만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난 '진보 10년' 시기에서는 남북관계하고 북한 핵 문제를 연결 안 시켰다. 오히려 남북관계를 잘 해서 북한에 대해서 우리가 레버리지(leverage, 영향력)를 가졌을 때 6자회담에서 북한을 설득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4강 외교의 경우도 한.미동맹에 대해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둘 다 부인 안 한다. 그런데 그것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미동맹 기조 하에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우리의 국익이 증대 될 수 있지, 한.미동맹에 모든 것을 올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맹이라는 것은 항상 공동의 적과 위협을 상정하는 것이다. 공동의 적과 위협을 상정하지 않으면 동맹 존재 이유가 없어져 버리는데, 한.미동맹을 위해서 없는 적을 만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동맹은 국가안보와 국가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도구이거나 수단인데, 지금은 동맹자체가 목적이 돼 버린 것 아닌가. 이건 바람직하지 않다. 노무현, 김대중 정부에서는 그런 식의 동맹정책을 펴지는 않았다. 미국과의 동맹을 소중히 여기지만, 동맹에 바탕을 둬서 유럽과 같은 다자안보협력구도를 동북아에서 만들자는 것이 김대중.노무현 구상이었다. 동맹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 이명박 정부와는 다르다.

또 지역주의 정책만 하더라도, 김대중 대통령은 '아세안+3' 컨셉을 통한 동아시아 공동체,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동북아 공동체 구상을 제시했다. 왜냐하면 남북문제도 동북아 역내의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질서가 만들어졌을 때 더 (진전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해서 지역협력체 구축 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MB정부에서는 지역협력체, 다자주의 이런 것들은 사전에 아예 없다. MB정부 와서는 '평화' 주제로 한 연구 제안서들이 연구비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 돌고 있다.

"북한 문제 어설프게 풀다 '동맹의 덫'에 걸렸다"

▲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천안함 사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하는 과정에서 미.중 갈등으로 비화됐다. '신냉전'을 얘기하는 이들까지 나오고 있다.

■ 대한민국 국민 어느 누구도 냉전 구도가 되살아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없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렇게 애쓰고 노력했던 것이 냉전구조의 해체였다.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가져오려면 결국은 냉전구조가 해체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 4강과 현명한 외교, 신중한 외교를 해야 된다'는 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기본적 철학이었다. 반면, 지금 정부는 다 해체되어 가는 냉전구조를 다시 되살려 놓는데 앞장 서는 인상이다. 만일 '신냉전구조'가 부활한다고 가정 해 보자. 우리가 얻을 이익은 무엇 인가? 참으로 역사 인식이 없는 것 같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해법으로 북한에 무력시위 하려고 미국을 끌어들였다가, 완전히 동맹의 덫에 걸려버린 형국이다. 역사의 흐름, 지정학적 구도, 전략적 구도에 대한 큰 흐름을 이명박 정부가 제대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우려된다. 모든 것이 반사적이고, 즉흥적이다. 어떻게 대통령이 모든 것을 하나. 대통령에게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참모들이 그것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아줘야 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지 않나. 그러니까 지금 대한민국호가 어디로 가는지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국가안보에는 '설마'가 있을 수 없다. 국가 안보의 궤적을 조금 잘못 잡으면, 그것은 2~3년 후에 엄청난 파괴적 귀결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 이 정부의 외교안보 참모들은 북한 옥죄기나 서해 한.미연합군사훈련 등에 대해 중국이 이렇게까지 반발하리라고 예상 못했던 것 같다.

■ 중국을 과소 평가한 결과라 하겠다. 현 정부의 대북 인식, 대중인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선 첫째 전문가가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가 없으니까 제너럴리스트들이 판을 친다. 둘째, '미국이 뒤에 있으니까 중국도 따라 오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 또한 문제가 된다. 세 번째로는 잘 안 되면 '중국, 나쁜 놈들, 공산주의 국가는 어쩔 수 없어’하는 가치판단적 결론을 내려 버린다. 이게 지금 계속 반복되고 있다. 미국하고만 관계가 좋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한미동맹 만병통치약’ 론이 대통령과 참모들의 인식 구조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대통령이 서양 동화에 나오는 '벌거벗은 임금'이 되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특히 대중관계를 볼 때면 그렇다. 한.중 관계가 분명히 악화되고 있는데 대통령이 자꾸 잘 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아는 것 같다. '아, 정부 관계는 좋은데, 민간 부문이 인터넷 이런 것 때문에 안 된다'는 대통령의 발상이 이를 반영해 준다고 본다. 정말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고 있는지 의문이 간다.

□ '미.중간의 대결 구도하에서 동북아 질서가 변화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는데?

■ 아직 이르다고 본다. 아직도 미국의 패권 질서가 주효하고 중국이 그러한 질서에 명시적으로 도전 하려는 의도나 능력은 없어 보인다. 사실 중국은 기존 질서의 수혜자이기 때문에 미곡과의 전략적 협력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 두 강대국이 대결해서 얻을 것이 뭐 있나. 그러나 중국 PLA(People's Liberation Army, 인민해방군)도 그렇고, 미국 군부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적당한 수준의 군사적 긴장은 이들의 예산 확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오바마나 후진타오, 그 후임에 시진핑이 올 경우에도 그들은 미국과 중국 간에 갈등이 생겼을 때는 둘 다 자멸한다는 것을, 그리고 세계가 자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중) 협력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 밑에서 관료적 수준에서는 이런 호기를 항상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 마침, 이번에 문 교수께서 '중국의 내일을 묻다'라는 책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내셨던데, 소개해달라.

■ 작년 가을 베이징대학 국제관계연구원 초빙교수로 머무는 동안 중국 외교안보의 흐름을 주도해왔고 또 앞으로 이끌어갈 중국 학계의 대표적 인사 21명과 나눈 대담을 책으로 펴 낸 것이다. 당대 중국 최고 지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대국의 길’을 걷고 있는 중국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구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시각에서 중국을 봄(以中國 觀中國)"으로써 중국에 대한 편견을 뒤집고 새로운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한․미 합동군사훈련까지 최근의 외교안보 이슈를 둘러싸고 한․중 관계는 1992년 수교 이후 가히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책임을 묻고자 했던 우리의 외교적 노력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중국이라는 장벽에 의해 막혀버렸다. 2004년 동북공정 문제가 제기된 이후 한국에서는 '반중 감정'이, 중국에서는 '반한 감정'이 기세를 떨쳤는데, 여기에 이번 사태는 기름을 부은 것과 같아서 한국과 중국 모두에서 격앙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사태 진전을 감안 할 때, 내가 낸 책이 중국의 속내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중국을 바로 알고(知中)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잘 활용(用中)하자는 데 방점을 두는 책이다.

□ 앞서 언급하신 '동맹의 덫'과 관련하여, 미국으로부터 '이란제재 강하게 하라'는 청구서가 날아왔다.

■ 우려하던 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미국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기능 전문가들과 친 이스라엘 세력들은 과거 한국의 소위 ‘기회주의’ 행태에 대해 불만을 가져왔다.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란, 리비아, 미얀마 등의 불량국가들과 경제 관계를 지속해 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빠져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천안함 관련 북한을 응징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신세를 너무 많이 졌다. 한국 정부 요구에 대한 화답으로 미국은 유엔안보리 의장 성명을 넘어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 했을 뿐 아니라 독자적인 대북 제재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로버트 아인혼 특별 보좌관을 한국에 보내 이란에 대한 제재 동참을 요구했던 것이다. 한국 정부가 미국과 이란 사이에 샌드위치가 돼 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이란 역시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를 어설프게 풀다가 호된 ‘동맹의 덫’에 빠져 버린 것 같다.

□ 정부 내 동맹 지상주의자나 비확산전문가들의 경우 이란제재 동참 불가피론의 명분으로, 사석에서 '북-이란 핵협력설' 얘기를 많이 하는데.

■ 글쎄다. 현 정부는 미국말이라면 다 수용하지 않는가. 미국과 이스라엘 쪽에서 '북-이란 핵 협력설' 이 나오고 있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그러나 미사일 분야에 있어서 그러한 연계를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은 북한을 이스라엘 안보를 해하는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 이란이나 시리아에 수출한 미사일이 헤즈볼라 수중으로 들어가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스라엘이 북한을 표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향후 북핵문제 해결에서도)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 끝으로, 6자회담 전망?

■ 지금처럼 미.중관계가 저러면 상당히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을 설득하여 6자 회담 재개에 물코를 트면 미국이 '노(NO)'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난감하게 될 것이다. '선 천안함, 후 6자회담' 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푸는데 6자회담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본다. 조속히 재개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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