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북한군의 서해안 해안포 탄착지점이 NLL(북방한계선)을 넘었는지를 두고 합참이 하룻만에 말을 바꿔 구설수에 올랐다.

천안함 사건 처리 과정에서 보인 군의 혼선과 무능, 말바꾸기의 기억이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북한 해안포 탄착지점을 두고 뭔가를 숨기는 듯한 인상을 줘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12일 이명박 대통령까지 ‘군의 공보 개선책 마련’을 지시하고 나섬으로써 합참은 사면초가 신세가 됐다.

그러나 군사적 움직임이라면 손금 살피듯 할 수 있는 합참이 유독 ‘공보’를 잘못해서 문제를 키우고 있는 것처럼 비쳐지는 상황을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청와대와 국방부 고위층의 지시를 충실히 받들어 수행하다 보면 스스로 ‘희생양’이 되고 마는 합참의 구조적 딜레마 때문이라는 지적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천안함 사건 발생 당시에도 군은 북한 어뢰설을 강하게 제기할 수 없었다. 김태영 국방장관에게 전달된 ‘VIP 메모’ 건에서 잘 드러났듯이 사건 초기 대통령과 청와대의 기류가 북한 공격설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기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북한 공격설이 기정사실화 되고, ‘결정적 증거물’까지 나오자 그동안 북한 어뢰공격설을 배제했다는 이유로 군, 주로 합참 관계자들은 비난의 표적이 돼야 했다. 한마디로 합참을 희생양 삼아 청와대의 말빠꾸기가 완성된 셈이다.

천안함 사건 보복 차원에서 지난 5일부터 실시한 서해상에서의 육해공 합동 군사훈련이 끝난 9일 오후, 북한의 해안포가 불을 뿜었고 합참은 관련 사항을 실시간으로 상부에 보고했을 것이다. 군 관계자는 이미 언론에 “일부 해안포는 NLL 남쪽 백령도 인근 해상에 떨어졌다”고 사실대로 전했다.

그런데 얼마 뒤 합참은 “NLL을 넘지는 않아 북한 해상에 떨어졌다”고 정정했다. 상부의 지휘 없이 합참이 자의적으로 이같은 ‘공보’를 시행했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북한의 해안포가 NLL 이남에 떨어졌다면 우리는 ‘비례 원칙’에 따라 대응사격에 나서야 하고 북한이 다시 보복 조치로 나설 경우 서해는 그야말로 국지전에 준하는 ‘불바다’가 됐을 것이다.

이같은 사정을 잘 아는 군이나 청와대에서 확전을 원치 않아 NLL을 넘지 않았다는 ‘공보’가 진행됐을 것이라는 추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13일자 <동아일보>가 군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까지 북한발 위험요소가 불거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분위기를 전하고 있는 점도 이같은 기류를 방증한다.

그러나 이미 NLL을 넘었다는 사실 보도가 있었던 터라 보수언론들의 집요한 취재가 이어졌고, 결국 합참은 하룻만에 말을 바꿔 NLL 이남에 떨어졌음을 시인해야 했다.

이번에도 결국 말바꾸기를 한 합참은 청와대의 신중기류를 곡해한 책임을 떠안고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천안함 사건에도 불구하고 연명에 성공한 국방장관은 이번에도 아무런 책임을 분담하지 않고 있다.

군은 지휘부의 명령에 따라 일산분란하게 움직이는 비교적 단순한 집단이다. 지휘부가 복잡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명백하게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면,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군은 애매한 명령을 수행하다 스스로 덫에 빠지는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군의 ‘공보’ 능력을 탓하기 전에 대통령과 청와대, 군지휘부는 북을 응징하고 싶지만 군사적 충돌은 피하고 싶은 스스로의 위선을 먼저 벗어던져야 할 것이다. 극우 보수세력의 주장대로 전쟁을 결심하든지 그렇지 않다면 평화를 위한 대화의 장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합참을 비롯한 군 역시 정치적 기류를 살피다가 스스로의 덫에 빠지는 오류를 반복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탈출하는 참군인으로서의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것만이 실추된 군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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