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지난 12일 방북 언론사 사장단과의 대화에서 미국과의 수교에 대해서는 전향적이었으나 대일수교에 대해서는 신중한 자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당시 대화에서 `내 말이 떨어지면 내일이라도 미국과 수교합니다`라고 전제하고 `미국이 테러국가 고깔을 우리에게 덮어 씌우고 있는데 이것만 벗겨주면 그냥 수교합니다`고 밝혔다.

반면 김 위원장은 `그런데 일본과의 수교문제는 복잡합니다`라며 `일본은 일제 36년을 우리에게 보상해야 합니다...나는 자존심 꺾이면서 일본과 수교는 절대로 안합니다`고 못박았다.

대미.일 수교에 관한 김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그동안 북한이 미국.일본과의 협상과정에서 취해온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게 외교가의 평가다. 즉 미국과의 협상에서는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를, 일본과의 협상에서는 과거보상 문제가 핵심임을 다시한번 입증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가 양국 관계의 초점이라고 볼때 앞으로의 관건은 미사일보다는 테러회담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같은 맥락에서 지난 9-10일 평양에서 열린 테러회담이 정례화될 가능성도 한층 높아졌다.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은 그동안 미국이 북한에 대해 ▲주요물자 교역 금지 ▲일반특혜관세(GSP) 부여 금지 ▲대외원조와 수출입은행의 보증 금지 등 경제제재를 가하는 근거가 돼왔다.

만일 북한이 국무부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지게 되면 그동안 금지돼온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다.

따라서 현재 평양과 워싱턴에의 연락사무소 개설 등의 문제는 이미 실무절차가 완료된 상태이고 김 위원장의 `결단`만 있으면 가능하므로 결국 김 위원장 표현대로 미국과의 수교는 의외로 쉽게 가능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이 아직 대량파괴무기(WMD) 개발 문제 등에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판단때문에 현재 급격한 대북수교는 검토중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져 북.미 수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한편 일본과의 수교에 있어 김 위원장은 자존심을 걸고라도 과거에 대한 보상을 받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작게는 60억달러에서 많게는 150억달러로 추산되는 보상을 받은뒤에서 일본과의 수교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이다.

결국 일본과의 수교에서는 관할권으로 대표되는 기본문제, 미사일.핵으로 상징되는 국제문제 등 보다 과거보상이라는 경제적 문제가 핵심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는 21일 도쿄(東京)에서 재개되는 북.일 수교 10차 본회담은 과거보상을 둘러싼 양국의 입장이 활발하게 개진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200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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