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우리 역사는 분명히 거꾸로 가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조계사 4월혁명 50주년 행사장 인근에서 만난 황건 전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었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에 하루 아침에 달라졌다"면서 이같이 일갈했다.
"남북관계는 냉전시대로 되돌아가고, 언론통제와 공안탄압이 다시 강화되고, 빈부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연기가 공공연히 추진되고, 한.미연합독수리훈련과 천안함 침몰사건을 전후하여 한반도 전쟁위기로 치닫고 있다. 6자회담은 기약없이 표류하고 있다."
후퇴상을 하나하나 열거하던 황 선생은 "그러나 실망하지 않는다. 역사와 발전을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4.19 이후 50년, 그와 사월혁명 세대가 경험한 일시적인 역사의 후퇴가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한국 현대사 관련 책이나 기사를 뒤적이다 보면 황건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1960년 서울대 사회법학회 회원으로 '4.19 시위'를 주도했으며, 서울대 민족통일연맹을 결성해 1961년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구호 아래 판문점 남북학생회담을 추진했던 주역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특별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4.19 세대는 일제시대에 태어나 해방되는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어린 나이에 해방정국에서 좌우갈등과 외세에 의한 분단, 그리고 처참한 6.25전쟁을 겪은 세대이다. 이 때문에 정상적으로 성장한 4.19세대라면 누구에게나 의식구조에 외세, 동족상잔의 비극, 식민지, 해방, 자주, 민족, 통일과 같은 개념이나 이미지들이 염색체처럼 각인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을 만나 얘기하다보면 외세에 대한 생각이나 전쟁에 대한 생각, 이승만에 대한 생각은 다 있었더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3.15 부정선거'는 하나의 구실일 뿐이었지."

그는 "4.19는 비록 처음에는 3.15부정선거에 대한 항의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그 진행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외세의존의 분단정권인 이승만 정권이 안고 있던 본질적 문제를 제기하고, 나아가 자주적 민족통일운동으로 발전하도록 되어 있었다"면서 "4.19 공간의 민족통일운동은 5.16 쿠데타로 좌절되어 민족통일은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그가 몸담고 있는 사월혁명회는 "4월혁명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들에게 4월혁명은 '기념'해야 할 날이 아니라 '완성'해야 할 혁명이다. 정부 기념식과 별도로 '4월혁명 행사'를 개최하는 까닭이다.
"4.19 이후 우리의 역사는 미완의 4월혁명을 계승, 발전시켜 민족통일을 이룩하려는 세력과 이를 저지, 억압하려는 세력 간의 투쟁의 역사"라고 보는 황 선생에게 "4.19를 짓밟은 5.16 쿠데타 세력이 '4.19이념을 계승'한다면서 수유리 4.19기념탑을 세우고, 역대 군부독재 정권이 저마다 4.19세대 수백명에게 국가유공자 표창을 한 것은 4.19정신을 농락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황 선생은 4월혁명 이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독재정권이 추진했던 유공자 포상을 물리쳤다. 4.19혁명 50주년에 즈음해 현 정부가 대규모 포상계획을 세우고 황 선생 등을 목록에 올렸으나 "원치 않는다"고 잘랐다. 서정복 선생과 함께 '거부 의사'를 문서화해서 국가보훈처에 접수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에게 지난 50년은 '비분강개'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역사는 전진한다'는 금언을 실감하는 세월이기도 했다. 한일협정반대운동과 유신철폐운동, 부마항쟁,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과 2년전 촛불시위까지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청년학생들과 시민들, 노동자와 농민들은 거리로 나왔었다.
황 선생은 그래서 후배세대에게 하고픈 말이 많다.
특히, 최근 학생운동의 퇴조에 안타까움을 나타내면서 "천박한 세계주의 풍조에 현혹되지 말고, 겨레의 앞날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생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무사안일주의, 기능주의와 한건주의를 탈피하여, 젊은이답게 뜨거운 정열로 진리를 탐구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기풍을 진작시켜 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되살려야 할 사월혁명의 고갱이'는? 황건 선생의 준비된 답변이 돌아왔다.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당시 한성여중 2학년 학생 진영숙 열사의 정신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되살려야 할 4.19정신의 핵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