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관심의 초점이 되었던 오바마 행정부의 핵태세검토보고서(NPR)가 발표되었다. 지난 해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 구상을 발표하고 미러 간에 핵감축협상을 진행하는 등 적극적인 ‘핵군축 행보’를 보였던 오바마 대통령이었기에 NPR에 대한 국제적 관심은 클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였지만 ‘역시나’ NPR
혹시 오바마 행정부의 NPR에 상당한 기대를 가졌던 사람들은 실망이 클 것이다. 과거 미 행정부의 핵정책과 크게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이전 정권과 다른 점이라곤 추가적인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 생화학무기에 대한 적대국의 공격에 핵무기로 대응하지 않겠다(그것도 이란과 북한은 제외함)는 입장 표명정도이다. CTBT 비준 역시 적극적인 의사를 밝혔지만 아직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았으며 최근 추세가 CTBT가 금지하고 있는 물리적 핵실험보다는 CTBT가 명문화하고 있지 않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핵실험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오히려 미 행정부의 핵 옵션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대표적인 예가 핵선제공격 옵션이다. 그동안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 핵선제공격 옵션을 포기할 것인가 하는 논란이 일었지만 미 국방부의 강력한 반대에 의해 핵선제공격 옵션은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설령 오바마 대통령 본인은 핵선제공격 옵션을 포기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NPR이 ‘오바마’의 정책이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이라는 점에서 오바마 개인의 의사는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따라서 이번 NPR은 오바마의 ‘핵무기 없는 세계’ 구상에 여전히 물음표를 남기고 있다. 이전 정권의 핵정책과 갖는 차별성은 오바마 행정부의 적극적인 핵군축 의사라기보다는 방대한 양의 핵무기 관리 비용에 대한 부담 및 국제적 핵군축 압력이 작용한 결과일 뿐 적극적 핵군축 의사가 없음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전혀 의미가 없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이전 정권과의 차별적인 접근은 미러의 핵감축 협상에 탄력을 줄 것이 분명하고 - NPR 발표 직후 미러 핵군축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졌다 - 핵군축 운동을 보다 활발하게 전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에 발표된 NPR이 북미 핵협상 혹은 한반도 비핵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전망 논의가 벌써부터 활발하게 일고 있다. 그만큼 오바마 행정부의 핵정책과 북미 핵협상 혹은 한반도 비핵화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인식의 반영일 것이다.
부정적 전망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현실
대체적으로 부정적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즉 이번 NPR이 북한을 핵공격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이 이에 반발할 것이며 다시 북미 간에 핵협상이 교착되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 근거로 제기되는 것이 9.19 공동성명이다. 9.19 공동성명은 “(미국은)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적고 있다. 북한을 핵공격 대상으로 남겨놓은 이번 NPR은 9.19 공동성명과 배치되는 것이다. 게다가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북한에 대해)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고 강조했다. ‘모든 옵션’은 핵선제공격까지 포함한 개념으로 이해된다.
북한이 즉각 반발하여 4월 8일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정책이) 우리나라를 ‘핵선제공격 대상’으로 지명하고 핵위협을 일삼아온 부시 행정부 초기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핵무기를 늘리고 현대화할 것”이라고 천명한 점이나, 다음날 조선신보가 미국이 ‘전략적 인내심’을 내걸고 평화회담과 비핵화협상을 미루는 동안 북한은 핵무기의 원료가 될 수 있는 경수로 농축우라늄 기술을 개발해 3차 핵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한 점은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미 핵협상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진전해왔던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북미 간 핵타결(94년 제네바기본합의서, 9.19 공동성명 등)이 미국의 전면적 핵정책의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곧 미국의 핵정책 변화와는 별도의 북미 핵협상 모멘텀이 작용해왔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이번 NPR 발표 자체가 북미 핵협상 혹은 한반도 비핵화에 결정적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
NPR이 북미 핵협상에 극적 반전이 될 가능성 진단
지난 시기 핵협상은 핵시설과 핵무기를 구분해왔다. 제네바기본합의서도 그렇고 9.19 공동성명도 그렇듯이 핵시설에 대한 접근과 핵무기에 대한 접근이 분리되어 진행되었다. 그 합의들이 나올 당시 상황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명시적인 평가가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 핵협상은 그 성격이 변화했다. 우선 북한은 2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 보유를 공식화했다. IAEA 사무총장 역시 여러 차례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으며,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정보국장 등도 비슷한 언급을 했다. 최근에도 이 기류는 유지되고 있다.
힐러리 미 국무장관은 4월 11일 한 방송에 출연해 북한에 대해서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로 분류했다. 이틀 전인 9일에도, 한 연설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 현황을 1~6개로 언급한 바 있다. 지난 달 말 G8 외무장관 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핵무기 보유국으로부터 오는 위협을 언급하며 그 예로 “북한과 같은 불량정권”을 언급했다.
미 행정부의 외교수장이 연이어 이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미국의 대북 핵정책 기조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전제로 하여 변화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물론 미 행정부는 여전히 북한을 ‘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최근 미 외교수장의 잇따른 북한 핵보유 발언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향후 북미 핵협상이 진행될 수 있음을 전망케 한다.
이는 북한의 입장과 동일하다. 북한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북미 사이의 핵협상의 전제가 북미 양측 사이에서 합의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한편 NPR 내용을 달리 접근해 볼 수도 있다. 이번 NPR은 NPT 체제 밖에 있는 ‘국외자’로 북한을 규정했다. 만약 국외자 신분이 바뀐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만약 북한이 북미 핵협상의 결과 NPT에 복귀를 하고 - 이는 9.19 공동성명에 명시되어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 미국이 그에 부응하여 북한에 대한 핵공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입장을 표명한다면 북미 핵협상은 생각보다 큰 진전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의 핵공격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큰 변화를 의미한다. 북한으로서는 매력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NPT 체제에 복귀한다는 것은 오바마 행정부에게 있어서 큰 외교적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북미 간 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 접점이 생길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시나리오대로 전개될 것이라는 명확한 단서가 현재로선 포착되지 않는다. 여전히 북미 양측은 상대방의 정책과 입장에 상당한 불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나리오가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NPR이 비록 일시적으로는 북미 사이의 핵공방을 가속화하는 효과를 낳을 수는 있겠지만 향후 핵타결을 위한 전환적 국면에서는 아주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은 반드시 지적되어야 한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오히려 이번 조치가 적극적으로 해석될 경우 새로운 반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이 글은 새세상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주간통일동향 [통일돋보기 25호]와 동시 게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