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과 대북 정책 사이에서 미국 정책의 모순이 한 두 가지 아니었다지만, 이쯤 되면 가히 ‘모스 부호’라 할 만 하다. 3월 10일 스티븐슨 주한미대사가 “북한 체제를 힘으로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지도부로부터 나오는 언어가 최근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며 “미국은 6자회담 틀 안에서 북한과 양자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으로 보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대북 메시지임이 틀림 없다.

즉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적대의사가 없으니 북한은 하루빨리 6자회담에 나와 비핵화 논의에 착수하라는 것이다. 사실 북한에 적대의사가 없다는 말은 스티븐슨 대사 외에도 힐러리 클린턴 등 오바마 행정부의 주요 당국자들이 여러 차례 내뱉었던 말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미국 관료들의 그같은 말을 빌어 북한의 ‘대미 강경 노선’이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에 시작된 키 리졸브 훈련의 양상을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키 리졸브 훈련의 내용을 보면 북한에 대한 침략적 의사가 없는 ‘순수한 방어적 훈련’이라는 한미 양국의 말을 100%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의 ‘북한 WMD 제거 전담부대’의 키 리졸브 훈련 참가이다.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부가 3월 11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에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제거는 미군이 맡게 될 것이며 그 부대가 이번 키 리졸브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전쟁에도 참가할 것”이라고까지 밝혔다.

이번 키 리졸브 훈련의 대표적인 목적 중의 하나가 ‘신연합작전 5012’의 숙달에 있다. ‘신연합작전 5012’는 그 전까지 한미 양국이 보유하고 있던 ‘작전계획 5027’을 전작권 환수 후 즉 한미연합사의 해체 이후를 대비하는 새로운 작전계획이다. 미국은 ‘신연합작전 5012’를 설명하면서 “결정의 주도권은 한국 측에, 미국은 가급적 적게 개입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연합작전 5012’ 하에서도 개전 초기 최단시간 안에 파괴해야 할 핵무기 저장소와 미사일 발사시설 등 대량살상무기제거작업은 주한미군 사령관이 결정권한을 갖는다. 평양 수뇌부에 대한 정밀타격을 통해 전쟁수행의지를 조기에 무력화시키는 작업 역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권한을 행사한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신연합작전 5012’가 작전계획 5027 뿐 아니라 작전계획 5026까지 포괄하는 전평시를 아우르는 전쟁계획이라는 점이다. 즉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대비’, ‘개전 초기 평양수뇌부 정밀타격’, ‘전면전 발발 시 미군 증원 및 육해공 투입’이라는 통합적인 전쟁계획이 완성된 것이다.

그 통합적인 전쟁계획의 첫 번째 조치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제거’이다. 이 작전은 ‘북한의 급변사태’와 ‘전쟁 초기’라는 두 상황에 대처하는 작전으로써 그같은 작전을 미국이 수행한다는 것은 북한에 대한 적대적 군사정책을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대량살상무기로 통칭되는 장거리 미사일과 핵무기는 북미 대화 혹은 6자회담 안에서 여전히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주제이다. 북미 대화 혹은 6자회담에서 미사일과 핵무기를 폐기할 수 없다는 최종 판단이 서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물밑 접촉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키 리졸브 훈련에 ‘WMD 제거 전담부대’를 투입하여 훈련을 한다는 발상은 “북한 체제를 힘으로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미 고위 관료들의 발언을 무색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한 6자회담 당사국들의 회동 내용을 보면 6자회담 재개에 대한 합의는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김계관 북한 6자회담 수석대표의 입에서 6자회담이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북한 역시 이 점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다만 6자회담과 평화회담을 병행하자는 북한의 입장과 6자회담의 진전 후 평화회담이 가능하다는 한미양국의 입장이 아직 팽팽히 맞서고 있어 6자회담 재개가 현실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신뢰와 진정성’ 문제가 여전히 북미 사이의 해결책 모색에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 키 리졸브 한미연합군사연습 특히 WMD 제거 부대의 훈련 참가는 북미 양국의 ‘신뢰와 진정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은 최근 “우리가 필요한 것은 행동이고, 북한이 회담에 복귀해 대화하는 것이 행동이다”라며 북한의 행동을 촉구하고 있지만 미국의 모순된 행동이야말로 6자회담 재개와 나아가 한반도 평화 실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이번 키 리졸브 훈련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새세상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주간통일동향 [통일돋보기 23호]와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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