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법정 스님이 입적하던 지난 11일,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총무원장 자승)이 종단 안팎의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강남구 소재 봉은사를 특별분담금사찰에서 직영사찰로 전환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으로 지금 불교계와 사회가 소란스럽다. 특별분담금사찰이란 문자 그대로 종단에 올리는 재정분담금을 일반 사찰에 비해 더 많이 내는 대형·유명 사찰로서, 4년의 주지 임기가 보장된다. 반면 직영사찰은 조계종 총무원장이 당연직 주지를 맡고, 기존 주지는 ‘재산관리인’이 되면서 총무원장이 임면권(任免權)을 가진다. 봉은사 주지인 명진 스님은 종법상 오는 11월까지 임기가 보장되어있다. 하지만 직영사찰이 되는 순간, 임기를 보장 받을 수 없게 된 셈이다. 이 결정이 사회의 이목을 끄는 이유는 명진 스님이 갖는 불교계의 위상과 봉은사가 갖는 특성 때문이다.

천년사찰 봉은사는 강남 한복판에서 인터컨티넨탈호텔, 코엑스 등과 함께 묘하게 공존하고 있다. 이 도심 속의 고찰은 신도 수와 재정에서 으뜸을 자랑한다. 한마디로 노른자 중에 노른자인 셈이다. 그러기에 이 사찰은 종단 정권교체기마다 이권다툼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 봉은사에 2006년 명진 스님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명진 스님이 취임 초부터 산문(山門)을 나서지 않은 채 1000일 기도를 시작으로, 사찰 예산·재정 투명화 등 개혁을 주도한 것이다. 이 같은 개혁은 신도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실제 2006년 당시 86억 원이던 봉은사의 연 예산이 올해는 130여억 원으로 증가했다. 등록신도도 급증해 20여만 명에 이른다. 무엇보다 젊은 층이 늘었다. 사찰이 젊어진 것이다. 법회 참가자가 150명이었던 것이 지금은 800-1300명에 이른다.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 도심 사찰의 모범 사례가 된 것이다

그러기에 직영사찰 결정이 있고 난 첫 일요법회가 열릴 예정인 14일 오전 봉은사 경내 분위기는 긴장됐다. 법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법왕루엔 몸을 부대낄 정도로 1000여명의 신도들이 운집했다. 명진 스님은 법회 모두(冒頭)에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면서 법정 스님이 번역한 불경의 한 대목을 읊조리고는 “요즘 제가 ‘가사 입은 도둑’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최근의 복잡한 심중을 내비친 것이다. 이윽고 그는 직영사찰 결정에 대해 “총무원장이 취임하면서 ‘소통과 화합을 통해서 종단을 운영하겠다’고 했다”면서, 그런데 “봉은사 신도와 소통되지 않은 결정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선언했다. 이어 직영사찰 전환 이유로 “강남과 강북을 잇는 포교벨트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게 어떤 벨트인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특히 그는 다음 주까지 총무원에서 자신의 질문에 대해 납득할 만한 답변을 내놓지 않을 경우, 전국 사찰과 신도를 대상으로 한 ‘봉은사 직영 폐지를 위한 1000만인 불자 서명운동’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신도들은 큰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명진 스님은 불교계에서 대표적인 현 정부 비판론자이자 특히 통일운동 실천자이다. 그가 4대강 사업과 용산참사 등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날카롭게 비판한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그는 조계종의 통일기구인 민족공동체추진본부의 본부장이자 대표적인 통일전문지 월간 <민족 21>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6.15시대에 남북을 오가며 민간통일운동에 큰 역할을 해 왔다. 최근 정부당국이 불교계의 금강산 신계사 성지순례를 불허한 것에 대해 ‘잘못된 처사’라고 비판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 정도라면 명진 스님이 현 정부 비판의 주요 고리임에 틀림없다. 그러기에 현 정부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임에도 틀림없다. 봉은사의 직영사찰 전환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고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지금 강남 한복판 봉은사의 불심(佛心)이 흉흉하다. ‘무소유’를 가르치고 입적한 법정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삶이 아직 허공에 남아 있다. 그런데도 무엇인가 봉은사를 ‘소유’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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