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장.국무총리.주석 등을 역임했던 독립운동가 석오 이동녕 선생의 70주기 추모식이 12일 11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사)석오 이동녕 선생 기념사업회’(회장 이현희) 주관으로 열린다.

국가보훈처가 11일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날 추모식은 김 양 국가보훈처장, 남만우 광복회 부회장을 비롯한 광복회원, 유족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태봉 묘동교회 목사의 추모기도 △오성식 기념사업회 이사의 약사보고 △이현희 기념사업회 회장과 국가보훈처장 및 김영일 광복회장의 추모사(남만우 광복회 부회장 대독) △헌화.분향 △유족대표의 예사 순으로 진행된다.

이동녕 선생은 1869년 2월 1일 충남 천원(현 천안시 목천읍 동리)에서 출생, 1885년 17세 때 일가가 상경하여 서울 종로 봉익동에 정착하였으며, 1896년 28세 때 독립협회에 가담하여 개화민권운동에 투신하였고, 1902년에 이상재, 전덕기 목사 등 종교인과 손잡고 YMCA운동을 전개했다.

선생은 1904년 한일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전덕기, 양기탁, 신채호, 조성환 등과 함께 독립운동 단체인 청년회 조직, 1905년 을사조약이 늑약되자 결사대를 조직하여 조약의 무효와 파기를 주장하는 등 구국운동을 전개했다.

이어 1906년 만주 북간도 용정촌으로 망명, 이상설.여준 등과 최초의 해외사립학교인 서전서숙(瑞甸書塾) 설립, 신민회(新民會) 조직, 공립협회와 대한매일신보의 조직과 발행 지원, 그리고 대성학교와 오산학교 설립을 지원하는 등 민족교육에 헌신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만주 서간도 요녕성 유하현 삼원보에 망명하여 이석영(李石榮), 이철영(李哲榮), 이회영.이시영 형제, 이상룡(李相龍) 등과 함께 한국인 자치기관인 경학사(耕學社)를 설립.운영해 서간도 이주민들의 신분보장과 독립정신 고취에 앞장섰으며, 훗날 광복군의 초석이 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설립하여 초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1919년 2.1일 길림성에서 대종교 김교헌(金敎獻) 외에 조소앙(趙素昻), 조완구(趙琬九), 김좌진(金佐鎭), 여준 등 국내외 민족지도자 39인과 대한독립선언서를 내외에 선포함으로써 3.1독립만세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던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던 해인 1919년부터 임시의정원 초대의장, 내무총장, 군무총장, 국무총리, 국무령, 주석 등을 역임하며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것이다.

선생은 이렇듯 반평생을 해외에서 조국광복의 일념으로 일제에 투쟁하였으나,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 3월 13일 72세를 일기로 사천성 기강 임시정부 청사에서 영면에 들었다.

임시정부에서는 국장(國葬)으로 장례를 치렀으며, 1948년 9월 22일 김구 선생의 주선으로 유해를 봉환, 사회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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