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초 한국을 찾았던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기자들을 만나 “(한미관계가) 요즘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발언한 바 있다. 2006년 2월 한미 관계에 대해 “이혼 직전의 왕과 왕비”라고 묘사한 바 있으며, 지난 해 이명박 정부의 ‘그랜드 바겐’ 구상에 대해 “솔직히 말해 잘 모르겠다”고 발언하여 논란을 제공했던 커트 캠벨의 발언이었기에 한미 관계에 대한 그의 평가는 언론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커트 캠벨이 방문했던 당시에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북정책에서 한미 양국은 엇박자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발언의 배경에 관심이 쏠렸지만 특별히 밝혀진 바가 없었다. 향후 대북정책에서 한미 간의 조율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이해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 발언이 나온 후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커트 캠벨이 ‘더 없이 좋은 한미관계’를 극찬한 이유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당시 커트 캠벨의 발언은 ‘대북 정책’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한미 군사동맹’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오키나와의 후텐마 기지 이전과 관련해 미일 양국이 극도의 균열 상황을 보였던 점에 비춰 보았을 때 한미 군사동맹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던 때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미추종 정책
우선 이명박 정부는 미국이 요청했던 아프간 파병 문제를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월 19일 국방위위원회를 통과한 아프간 파병 동의안이 결국 2월 25일 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본회의를 통과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국방부는 2년 6개월 동안(2010년 7월 1일 ~ 2012년 12월 31일)까지 350명 내외의 군군부대를 아프간에 파병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이명박 정부는 절반 이상이 불량인 ‘전쟁예비탄약’을 2008년 미국으로부터 구입했다. 2700억 상당의 탄약과 물자, 장비 등 25만 9천톤을 구매했고 이중 90%가 탄약이었다. 그런데 한국군이 시험발사한 결과 발사 자체가 아예 안되거나 성능이 떨어지는 탄약이 50%가 넘었던 것이다.
셋째, 이명박 정부는 주한미군을 해외로 차출하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올해 안에 합의하는 방안을 추진중에 있다. 국방부 관계자의 2월 21일 발언에 따르면 “오는 10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 때까지 (주한미군을 해외로 차출하는 절차와 방식을) 합의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의 21세기 국방전략 중에서도 핵심적인 과제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으로, 이명박 정부는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 5029로 격상시켰다. 노무현 정부 시절 주권 침해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개념계획으로 유지했던 것은 이명박 정부는 취임하자마자 작전계획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2월 8일 정부 관계자가 “작계 5029는 사실상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정부 내에서는 작계가 아닌 개념계획으로 불린다”고 발언함으로써 작계 5029의 격상 사실을 인정했다. 작계5029에 따른 도상훈련까지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공개하였다.
작전계획 5029는 ▴북한에서의 정권교체와 쿠데타 등에 의한 내전 ▴북한이 보유한 대량살상무기의 반군 탈취 또는 해외 유출 ▴북한 주민의 대규모 탈북 사태 ▴대규모 자연재해 발생 ▴북한에 체류하는 한국인의 대한 인질사태 등 유형의 시나리오를 포함하고 있다. 유엔 회원국으로 엄연한 주권국가인 북측에 대해 전평시를 가리지 않고 군사적 개입을 할 수 있는 작전계획으로, 미국이 2004년부터 정력적으로추진하던 것을 이명박 정부가 수용한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 전도사로 나선 김태영 국방장관
김태영 국방장관만큼 현 정부 관료 중 이슈메이커가 없을 것이다. 2008년 3월 합참의장 인사 청문회에서 ‘대북 선제공격’ 발언으로 남북 관계를 경색시켰던 전력이 있는 그는 국방장관 신분으로도 최근 ‘대북 선제공격’ 발언을 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1월 28일 이명박 대통령이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김태영 장관의 대북 선제공격 발언은) 원론적인 이야기다. 특정 사항을 거론한 것이 아니고 저 쪽이 공격할 자세를 취하면 이쪽에서도 공격할 수 있다는 군사상 일반론을 말한 것이다”라고 해명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최근 전략적 유연성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2월 9일 “주한미군이 3년간 복무하는 경우 해당 부대의 예하 소규모 부대를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운영할 가능성에 대해 한미 간에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언급했으며, 2월 11일엔 “2017년 미군의 ‘유연성’ 요청 가능성이 있다”면서 여론 조성에 나서고 있다. 그 결과 국방부 관계자가 2월 21일 전략적 유연성을 연내에 합의하겠다는 목표까지 제시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은 기존 한미 동맹의 틀을 벗어난 개념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하면 주한미군은 한반도 방위를 목적으로 주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략적 유연성을 공론화하기 위해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 문제까지 검토되어야 한다. 비록 2006년 노무현 정부 당시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합의를 봤다고 하더라도 그 합의에 의하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이 발표한 QDR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전세계 분쟁지역 어느 곳으로라도 차출되게 되어 있다. 동북아시아를 제외한다는 어떤 조항도 없다. 오직 “주한미군은 지구적 비상사태에 대처하는 유용한 수단으로써 한국에서 차출되어 다른 지역으로 배치될 수 있다"고만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이와 같은 문제점에 대한 명확한 구분 없이 마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식의 게다가 올해 안으로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세부사항을 합의하겠다는 식으로 일방적인 여론 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키 리졸브 훈련 그리고 MD
현재 키 리졸브 훈련이 진행중이다. 한미 양국의 관계자들은 통상적인 방어훈련이라고 해명하지만 작전계획 5029를 숙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진행되는 전쟁연습이다. 게다가 작계5027을 대체하는 ‘신 작전계획 5012’를 숙달하는 목적도 함께 갖는다. ‘신 작전계획 5012’에 대해 한미 양국은 “결정의 주도권은 한국 측에, 미국은 가급적 적게 개입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하지만 개전 초기 최단시간 안에 파괴해야 할 핵무기 저장소와 미사일 발사시설 등 대량살상무기제거작업은 주한미군 사령관이 결정권한을 갖는다. 평양 수뇌부에 대한 정밀타격을 통해 전쟁수행의지를 조기에 무력화시키는 작업도 주한미군 사령관이 권한을 행사한다. ‘가급적 적게 개입’하지만 작전계획의 핵심적 역할은 여전히 주한미군이 행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작전계획의 핵심은 여전히 주한미군이 쥐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반발이 거세다. 3월 7일 북한은 판문점 대표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고 "총부리를 겨누고 핵전쟁 구름을 몰아오는 상대와 마주앉아 평화와 협력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우리를 겨냥한 전쟁연습이 계속되는 한 조미(북미), 북남 사이의 모든 군부 대화는 단절될 것"이라고 밝혔다. 3월 8일엔 최고사령부 ‘보도’를 통해 전군에 ‘군사동원태세 명령’을 하달했다. 3월 9일에는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우리는 대화에도 전쟁에도 다 준비되어 있다"면서 "미국의 군사적 위협과 도발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핵억제력은 계속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미연합군사훈련 키 리졸브는 그 자체로 북한을 침공하기 위한 군사훈련일 뿐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에도 심대한 장애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더 없이 좋은 한미동맹’에 자신감을 가진 것일까. 미국은 한반도에 맞는 ‘맞춤형 지역 MD’를 추진하겠다며 한국 정부로 하여금 참여를 종용하고 있다. 3월 5일 국내 언론인 동아일보 기고문에서 마이클 시퍼 미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담당 부차관보는 한국을 겨냥한 핵과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지역 미사일 방어’에 새로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지역 MD'에 대해 “좀 더 유연하고, 쉽게 배치할 수 있으며, 아시아의 독특한 필요에 따른 맞춤형”이라고 선전까지 해댔다.
‘지역 MD' 구상은 이미 지난해부터 논의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 소식통은 “지난해 12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간 정치군사 대화체인 ’2+2 국장회의‘에서 미국측이 ’지역 MD‘ 투자계획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시퍼 부차관보다 한국 언론에 버젓이 지역 MB를 홍보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명박 정부의 ’지역 MD' 참여도 시간 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관료들이 한미 관계에 대해 “요즘보다 더 좋을 순 없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 이 글은 새세상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주간통일동향 [통일돋보기 22호]와 동시 게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