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장기수, 2045년 동안 왜곡된 역사 바로잡기
송환대상자 63명 투옥기간 합하면 2045년

최장 45년 적어도 30년 가까이 투옥생활을 겪어내면서도 신념과 지조를 꺾지 않고 자신들이 지닌 양심의 자유를 지켜내 인간이 가진 최고의 보편적 권리를 세계사, 인류사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63명의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을 축하하는 공식행사가 26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렸다.

9월2일 송환을 정확히 일주일을 앞둔 시점에서 이들의 석방탄원, 송환촉구에 관심을 가진 인사와 단체들이 구성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비전향 장기수 송환추진위원회(공동대표 권오헌)` 주관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전국적인 차원에서는 공식적으로 마지막 환송행사여서 송환 대상자 63명 중 55명이 참석하고 며칠째 퍼붓는 장대비에 장소가 여의도 금성공원에서 연세대 대강당으로 급히 바뀌어 진행되었음에도 30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통일되면 다시 만나요"
"절대로 더는 늙지 마십시오"
"평양으로 초대해 옥류관 냉면을 내 돈으로 한 그릇씩 사주마"
"저희도 결혼식에 초대하겠습니다"
"---"
"백두에서 한라로 우린 하나의 겨레 안녕히, 통일의 날 다시 만나요" 라고 쓰여진 흰 천위에 자신의 오른손 손도장을 찍는 것으로 행사는 시작되었다.

1부 환송 기념식에 이어 기념 공연은 초등학생부터, 청소년,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참가해 송환 환영의 분위기를 돋웠으며 송환 비전향 장기수 한 분 한 분이 슬라이드와 북쪽노래 `안녕히 다시 만나자` 합창을 배경으로 소개되는 동안 장내는 숙연한 분위기에 휩싸여 절정의 감동을 연출하였다.

이날 기념식에 참가한 박용길 장로(고 문익환목사 미망인)는 송사에서 "빛나는 청춘, 열정을 바치고 조국과 민족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역사를 조국은 알 것"이라고 경의를 표하고 "평화의 사도로 통일을 앞당기는데 한 몫을 할 것을 믿는다"고 송환의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우리들이 휴전선을 녹이지 못하고 보내는 것이 가슴 아프다"며 제한적으로 송환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아쉬워했다.

최하종(74세, 36년 복역, 98년 3월 석방)씨는 "자신들에게 보여준 남쪽의 여러분들의 따뜻한 사랑과 정성을 북쪽에 있는 가족들 특히 손주들에게 낱낱이 이야기할 것" 이라고 답사해 이날 행사에 참가한 환송객들의 마음을 뿌듯하게 하였다.

한편 우용각(72세, 42년 복역, 98년 3월 석방)씨는 송환 이후의 계획에 대해 "생명이 다하는 날 까지 조국의 통일을 위해 주어지는 역할을 다할 것"이라며 의지를 보이면서도 함께 가지 못하는 분들에 대해서도 "함께 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전향하신 분들 중에서도 송환을 원하는 분들의 송환은 이루어져야 하고 더 나아가 자유왕래가 보장되어야"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93세 된 어머니 고봉희여사와 함께 송환 신청을 했으나 홀로 가시게 된 신인영(72세, 32년 복역, 98년 3월 석방)씨는 노모와 함께 행사에 참석해 "통일의 문을 여는 상황에서 또 다른 이산가족을 만들게 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인도주의적 견지에서도 함께 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촉구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에 대해 권오헌(비전향 장기수 송환 추진위원회 공동대표)씨는 "전향, 비전향을 막론하고 북송을 원하는 경우라면 누구든 송환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사회안전법 시행 이전의 실태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하고 "이제는 2차, 3차 송환추진과 실태파악을 위해 계속 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이후의 계획을 밝혔다.

이날 행사는 과거 독재정권시절에 의해 왜곡되어 인식되었던 비전향 장기수에 대해 올바른 이해가 남쪽사회에서 상당히 진전되었음을 보여주었고, 이들의 송환은 6.15공동선언 이후 확산되기 시작한 북에 대한 친숙감이나 일체감을 강화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간첩, 빨갱이`에서 `애국자, 인류 양심의 화신`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전환인 것처럼 `남쪽에서 북쪽으로` 송환 역시 예측불허의 반전이 아닐 수 없다는 점에서 이날 행사 의미는 각별해 보인다.

"한낮 쓸모 없는 늙은이를 통일의 마당으로 이끌어내 43년 세월을 고스란히 값진 것으로 만든 것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삶의 가장 큰 덕목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 - - -, 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도 모른 채 감옥에서 죽어갔을 것이다" - 0.75평 지상에서 가장 작은 내 방 하나(창 출판사), 이종환씨 수기 중에서

행사장을 나서는 참석자들의 눈자위가 빗물인지 눈물인지 벌겋다. (통일뉴스 김익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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