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고 싶은 친구, 미술

사람들에게 `미술감상법`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이때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미술에 대해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저러하게 주워 들은 이야기는 많은데, 마치 꿰어지지 않은 서말의 구슬 같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사람들은 조금 어려운 미술작품 앞에서는 주눅이 들거나 모범생 같은 자세를 취한다. 형태가 살아있거나 만만하게 알고 있는 사물이 그려진 그림 앞에서는 지나치게 `오버`를 하는 경향도 있다.

미술은 환상이자 허구인데 진짜 현실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고, 감성이 가야할 부분에 이성이나 지식을 들이대고, 이성이 가야할 부분에 감정으로 치우치는 현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모습이다. 사람들의 `미술향유` 능력이 낮을 수도 있고, 미술이 `나홀로 고고한 세계`를 추구한 책임도 있다.

어렵고 난해한 그림이라고 반드시 특별한 내용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어떤 대가는 쉽고 편한 그림이 더욱 그리기 어렵다는 말을 한다. 형상이 있고 눈에 익숙한 사물을 그렸다고 내용을 만만하게 생각해서도 안된다.

미술작품은 `현실`이 아니라 `환상, 허구`이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미술이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현실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그 존재자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너무나 웃기는 이야기지만 `홍길동`을 그려놓고 `길동아`라고 부르면 `예`하고 대답하지 않듯이 말이다.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사람이 왜 저렇게 생겼어?` 혹은 `실제로는 저 색이 아닌데...`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과 허구를 착각하는 것이다. 그림은 허구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형태와 색조를 변형시킬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무엇을 의도하고 표현하고 있느냐이다.

물론 내용과 형식은 이론적으로 통일되어야 한다. 단순한 꽃 그림을 그려놓고 인간의 내면을 심도 있게 표현했다고 말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또한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고작 벽면을 장식하는 정도의 내용만 담는 것도 쓸데없는 짓거리로 보일 수 있다.

미술감상의 포인트는 색조나 구도, 묘사정도가 아니라 어떤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표현했는가이다.  

나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사랑한다. 미술의 다양한 사조와 표현방식은 결국 인류의 정신문화유산이다. 여기에 사회와 개인의 취향과 가치가 보태져서 미술의 존재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남을 인정하지 않고는 함께 할 수 없다. 내 밑으로 들어오던지 아니면 내가 고개를 숙이고 복종해야 하는 관계는 봉건시대의 발상이다.

또한 다양함에는 큰 것과 작은 것, 가치가 높은 것과 낮은 것도 포함한다. 자신이 맺어야 할 관계를 반드시 높일 필요도 없다. 만만하고 적절한 관계를 찾으면 된다.

미술이 어렵다고 관계 맺는 것을 포기할 일은 아니다. 마음에 드는 작품하나를 곁에 두고 오래 사귀어 볼만한 일이다.

봄비 내리는 마음

김성호/봄비/조선화/66*46/1998

이번 작품은 얼마 전에 열렸던 <6.15 공동선언 1주년 기념 북한미술특별전>에 전시된 북한화가 김성호의 <봄비>라는 조선화 작품이다. 창작연도는 1998년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비교적 최근의 작품이다. 작품의 크기는 4절 정도로 소품이다.

이 작품은 한적한 시골마을에 봄비가 내리는 모습을 그렸다. 길에는 트랙터가 서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 날고 있다. 마치 수묵화처럼 농담 처리된 나무와 밭 위로 비가 내린다. 이 작품은 상당히 감상적으로 표현되었다.

나무랄 데 없는 구도, 부담스럽지 않은 색조 표현, 붓질도 매우 기교적이다. 자유로우면서 절제된 나무와 숲의 표현, 한지의 특성을 잘 살리면서 과감함이 엿보이는 빗줄기의 표현은 세련미가 넘친다. 수채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런 착각은 이 작품의 미덕이다. 그렇게 느끼도록 세심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의 내용은 별로 분석할 것이 없다. 그냥 보이는 그대로가 작품의 내용이다. 굳이 찾자면 가뭄으로 고생한 북한현실을 감안하면 된다. 농사짓기에 적절한 봄비가 제 시기에 줄기차게 내리는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북한의 화가들이 조선화로 그린 풍경화는 기량 면에서는 거의 최고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상당히 다루기 까다로운 재료를 가지고 이런 정도의 느낌을 낸다는 것은 미술을 전공한 나로서도 부럽기만 하다.

마냥 비를 맞으면서 걷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무는 빗물을 먹어 흐느적거리고, 멀리 보이는 숲은 안개에 몸을 감아 꿈틀거린다. 발끝에 전해오는 질퍽한 느낌도 체온에 녹아든다. 빗소리에 모든 것이 정지된 기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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