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2일 조선민항 특별기편으로 김포공항을 떠나 평양 순안공항에서 가족들 품에 안긴다. 감옥에서 생을 마칠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사상전향제도 폐지와 함께 옥에서 풀려난 것만도 꿈같은 일이었는데,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으니 이들의 감개가 얼마나 무량할 지 짐작이 간다.

2854년. 생존중인 비전향 장기수 77명의 감옥살이 기간을 합친 숫자다. 이들이 옥중에서 겪은 고초를 어찌 필설로 형언할 수 있을 것인가. 72년 7·4남북공동성명 이후 80년대까지 전국 교도소에서 박 대통령 특별지시에 따라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전향공작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야만적인 것이었다. 잔인한 고문과 가혹한 처우로 많은 이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 사상 전향서를 쓸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응하지 않은 이들 가운데 고문휴유증으로 목숨을 잃은 이도 적지 않고, 불구가 된 사람도 많다.

일선 교도관과 교회사들은 마구잡이로 패고 짓밟고 고문을 하며 전향을 요구했다. 가죽으로 만든 혁수정을 채워 상반신을 못움직이기해 그릇에 담긴 밥을 혀로 핥아 먹으며 연명하게 하기도 했다. 그래도 굴복하지 않으면 일단 회유에 들어가 일가친척과 지인 등을 동원해가며 `교화`를 시도했다. 2단계 작전도 효과가 없으면 옥중의 깡패들을 사주해 잔인한 대리 폭력을 행사했다. 끝내 전향공작에 굴복하지 않은 보안수에 대해 교정당국은 행형상의 온갖 불이익을 통해 압박을 가하면서 지구전을 폈다.

공작원으로 남파됐다 70년 체포돼 대전교도소에서 전향공작을 당한 김진계씨는 지난 90년에 펴낸 수기 <조국>에서 당시의 참상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전향을 안한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은 뒤 그 후유증으로 손톱 끝으로 철문의 녹슨 부분만 긁으면서 알지 못하는 소리를 중얼거리거나, 감방마루를 발로 구르고 철창을 뒤흔들며 발작적인 고함을 질러대거나, 푸른 수의를 갈갈이 찢어버리고 아무데나 오줌을 갈겨대는 정신을 잃어버린 동료들을 보면 가슴이 찢어질듯이 아팠다.”

초인적인 인내력과 의지로 자신의 양심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낸 비전향 장기수들이야말로 이념의 차이를 넘어 역사에 오래 기록될 것이다. 또 북한으로 돌아간 후 어떤 비난과 저주를 퍼부을 지 모르는 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자유의사를 존중해 용단을 내린 남한정부의 태도 또한 박수를 받을만 하다.

햇빛도 들지않고 바람도 통하지 않는 0.75평의 독방에서 30년 이상씩을 갇혀 지내다 이번에 꿈에나 그리던 북으로 돌아가는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진심으로 축북을 드린다. 그리고 그동안 장기수들의 귀환을 빌어온 사람 중의 한사람으로, 북한에 돌아간 후 남한에 대해 절제된 발언을 해주기를 당부드리고 싶다. 남한에 대한 지나친 험담은 화해협력 움직임에 눈을 흘기며 사태 반전의 기회를 노리는 북과 남의 호전적 강경세력만이 좋아할 일이기 때문이다.

귀환이 발표된 후 자신의 33년간의 감옥 생활과 출소 후의 생활을 담은 <새는 앉는 곳마다 깃을 남긴다>는 책을 펴낸 김동기 씨는 이 책 서문에서 남녘 동포들에게 이렇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나는 이곳 사람들이 내게 베풀어준 따뜻한 정을 간직하고 갈 생각이다. 그래서 내 가족과 친지와 이웃, 고향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나의 도덕적 의무라고 믿는다.…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모든 분들에게 가슴깊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남과 북이 먼저 마음으로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늙은 `통일전사`의 넉넉한 풍모가 아름답다. 조국 분단과 냉전시대 최대의 피해자인 비전향 장기수들. 남북 무력대결 시대에 옥중에서 30년 이상씩을 갇혀 지내며 온몸으로 민족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던 그들이 북녘 하늘 아래서 대립과 반목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남북화해의 전령사가 될 것임을 굳게믿는다.(한겨레신문 이상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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