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목숨을 잃은 용산참사 문제에 대해 철거민 유가족 측과 정부.재개발조합 측이 사건 발생 12개월만인 30일, 해를 넘기기 직전 가까스로 일부 해결점을 찾았다.

정부는 정운찬 국무총리가 용산참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유감의 뜻을 표명하기로 했고, 유가족 위로금과 용산철거민 피해보상금, 장례비용 등은 용산4구역 재개발조합에서 부담키로 했다.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용산범대위)와 서울시, 재개발조합 등은 29일부터 이날 오전까지 진행된 마라톤 협상 끝에 이같은 내용에 합의했다. 

합의에 따라 장례식은 사건 발생 355일째가 되는 내년 1월 9일 서울 시내에서 엄수된다. 유족과 용산범대위는 25일까지 용산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에서 완전 철수해야 한다. 서울시 및 용산구청과 종교계에서 각각 3명, 용산범대위에서 1명으로 이행위원회를 구성해 이번 합의의 이행을 담보한다.

▲ 용산참사 협상 타결이 이뤄진 30일 오후, 사건 현장인 서울 용산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 앞에서 열린 '용산 살인진압 희생자 장례 및 향후 진상규명에 대한 범대위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유가족들이 고인의 영정을 안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용산범대위 측은 이번 합의가 정부 사과 등 장례를 위한 '최소 요구사항'이 "대부분 수용" 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용산참사로 가족을 잃고 난 후 길바닥에서 1년 가까이 '힘겨운 싸움'을 벌여온 유가족들이 비로소 장례를 치르게 된 점이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

그러나 검찰 수사기록 3000쪽 미공개와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히고 1심에서 중형을 선고 받은 용산철거민 재판 등 사건의 본질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미완의 타결"이란 평이다.

용산범대위는 30일 오후 이번 합의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2009년이 다 저물어가는 연말이 되어서야 정부가 비로소 용산참사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며 "어떠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과 정의를 위해 노력했던 범대위, 아니 우리 국민 모두의 성과이다"고 평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른다고 해서 용산참사가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니다"며 "검찰은 아직도 수사기록 3000쪽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용산참사의 진실은 은폐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학살자들은 거리를 활보하고 있지만, 철거민들은 차가운 감방에 구속되어 있다. 또한 가진 자들의 탐욕을 위해 서민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뉴타운.재개발은 전국 방방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 이성수 씨의 부인 권명숙(47) 씨는 "공식적으로 타결이라고 말씀드릴 수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쳤지만, 타결되지 않은 채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냉동고에 365일 긴 시간 열사분들을 두고 있을 수 없어 유가족이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며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구속자가 석방되는 날까지 장례를 치른 이후 다시 내일을 위해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고 이상림 씨의 부인 전재숙(69) 씨는 "정말 우리를 위해 애써주신 우리 상황실 식구, 사제단, 기독교... 이 분들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왔을 수도 없을 것"이라고 소회를 전했지만, "오늘 이날을 기다렸는데, 이런 반쪽짜리 장례를 모신다는 게 너무 허무하고 가슴이 아프다"며 눈물을 떨궜다.

▲ "반쪽짜리 장례를..." 해를 넘기기 직전 가까스로 용산참사 문제에 대한 일부 해결점을 찾았지만, 유가족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구속자 석방 등을 요구하며 '새로운 싸움'을 해나가야 한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야당들도 일제히 이번 합의를 시작으로 수사기록 3000쪽 공개, 철거민 석방 등 '본질적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민주노동.창조한국.진보신당 등으로 구성된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야4당 공동위원회'(야4당 공동위)는 이번 합의에 대해 "환영의 입장을 밝히면서도 참사의 본질을 개선하고 극복하기 위한 내용이 빠져 있는 것에 대해서 유감"이라고 밝혔다.

야4당 공동위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건설재벌과 부동산 투기꾼들의 배만 불리면서 서민들에게는 삶의 터전마저 빼앗는 정부와 서울시의 뉴타운 재개발정책은 필연적으로 제2, 제3의 용산을 예고하고 있다"며 "아울러 가공할 물리력으로 철거민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경찰의 강제진압 방식을 뿌리 뽑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와 서울시의 근본적인 정책변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고 지적했다.

이어 "용산참사의 진정한 문제 해결은 완전한 진상규명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검찰은 법원의 증거개시의무 이행 명령을 받아들여 비공개 수사기록 3천여쪽을 즉시 공개해야 한다"며 "정부는 구속된 용산참사 피해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고, 용산참사 문제 해결에 나섰던 인권단체 관계자들에 대한 수배 조치도 즉각 해제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용산참사는 지난 1월20일 새벽 경찰이 용산 4구역 철거민과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들의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 점거농성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옥상 망루에 불이 나 농성자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법원은 건조물 방화죄,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사상죄, 건조물 침입죄, 업무방해 등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해 이충연 용산 제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에게 징역 6년 등 농성을 벌였던 철거민들에 중형을 선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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