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이후 획기적으로 발전해온 남북경제협력사업은 2009년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2차 핵실험 정국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제재 정책이 맞물리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남북교역액은 약 14억 6,200만달러로 전년 동기 약 13.9%가 감소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증가세를 유지하던 남북교역액이 올해 들어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은 이같은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분야는 개성공단 입주업체 뿐이다. 금강산.개성관광은 16개월째 중단되면서 현대아산과 협력업체는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고, 평양 등 내륙지역에 진출한 기업들은 방북 자체가 막혀 올 한해 아예 일손을 놓았다.

지난 8월 현정은 현대회장의 방북 이후 북한이 개성공단, 금강산.개성 관광 등 경제협력 사업을 정상화하기 위해 수차례 제안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를 뿌리쳤다.
개성공단은 현 수준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관리하고, 금강산.개성관광 재개를 비롯해 내륙 진출 기업들의 경제협력은 가시적인 북핵 문제 진전이 없는 한 봉쇄하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입장으로 보인다.
특히 그동안 진행됐던 경제협력 자금이 북한 개발자금으로 전용됐다는 시각과 함께 북한 정부의 돈줄을 옥죄겠다는 정부의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업체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는 지적이다.
◎ 평양 등 북한 내륙 지역 진출기업
핵실험 이후 방북 전면 통제... 투자시설 녹슬어가
제3국 합작 방식으로 새 활로 찾기도
#사례1
A업체는 유독 이번 겨울이 춥다. 북한 내륙에 진출한 지 10년이 넘게 남북을 오가며 수산물가공업 등 굵직굵직한 사업들을 따내 승승장구해 왔지만, 정부의 방북 불허방침으로 1년째 자신의 공장을 가보지 못했다. 투자금 500만 달러 가운데 공장 확장에 필요한 시설비용으로 50만 달러가 1차로 투입됐지만, 이 자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시설이 운영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 업체 대표는 "지금 투자한 것도 완전 방치됐고, 녹슬어있는 상태인데다 현장에 가보지도 못하게 하니 애만 탄다"며 애먼 가슴만 쳐댔다. 게다가 투자 금액을 은행에서 대출한 탓에,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10억 상당의 대지건물이 경매로 넘어갔다. 한창 때 수십여 명의 직원들도 모두 떠나고, 이제는 혼자 남다시피 했다. 그는 "재산을 모두 날리기 직전이다. 고사 직전"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사례2
평양에 북측과 합영회사를 차린 B업체. 의료 완제품을 생산하는 모든 공정이 가능한 공장을 건설했다. 공장을 세울 때만해도 매출 계획은 1차년도 200억, 2차년도 400억, 3차년도 600억이었다. 하지만 올해 평양 방북이 막혀 매출이 전혀 없다. 경비까지 포함해 200억을 투자했지만 지난해 공장 준공 이후 시운전밖에 하지 못했다. 한 번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설비는 녹이 슬어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이 업체 대표는 "팩스로도 작업지시가 가능하지만, 첨단 설비는 북측 근로자들이 기술지도를 받기 전에 운용을 할 수가 없다"면서 "우리 기술자들이 못 들어가더라도 나 혼자만이라도 공장을 보기 위해 평양에 가겠다고 해도 통일부에서 안 된다고 한다"고 한탄했다.

올해 가장 큰 피해를 받고 있는 업체는 개성공단 외 평양 등 북한 내륙지역에 진출한 기업들이다. 정부는 이들 기업을 거의 방치하고 있다.
90년대 중반 북한 내륙진출 기업들은 스스로 사업을 개척해온 경험이 풍부해 그동안 정부의 지원 없이도 자생력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지난 4월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5월 2차 핵실험 이후 이명박 정부는 이들 기업인들의 방북을 전면 통제했다.
5.25 2차 핵실험 이후 평양을 방문한 기업은 상주인력을 운용하고 있는 평화자동차와 중국-한국기업 컨소시엄을 추진하고 있는 ‘유니코텍코리아’ 두 곳뿐이다. 대부분 자신이 투자한 공장을 가보지도 못하고 있다. 중국 등 제3국을 통해 실무협의하려 나온 북측 관계자로부터 공장의 사정을 전해 들으며 애를 태우고 있다.
상황이 악화되자 몇몇 내륙진출 기업들이 모여 지난 6월 '(가)남북경협경제인총연합회(남북경총)' 발기인 대회를 갖고 조직적으로 정부에 대응할 체계를 꾸리기도 했다. 통일부에 남북협력사업 승인을 받은 55개 업체를 비롯해 일반교역, 위탁가공업체까지 600여개 단체를 아우르는 큰 조직이었다.
8월께 창립총회를 가질 예정이었던 '남북경총'은 결국 정부의 외압으로 공식 출범하지 못했다. 남북경총을 추진했던 한 업체 대표는 "정부의 방해가 심해 지금의 거의 포기 상태"라면서 "정부 입장에서 우리를 압력단체로 보기도 하고 난처해했다"고 전했다.
남북경협이 위기에 처한 가운데 새로운 방식으로 탈출구를 모색하는 업체도 있다. 자체 경협사업 및 대북투자 컨설팅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주)유니코텍코리아는 상주인력이 없는 업체로는 유일하게 지난 11월 3일-7일 평양을 방문했다.
이 회사는 중국 기업과 한국 기업 컨소시엄으로 평양에 6만평 규모의 식품단지 개발사업을 추진 중이다. 유완영 (주)유니코텍코리아 회장은 이번 사업에 대해 "평양의 새로운 미니 경제 특구개념"이라며 "북한은 중국 기업의 투자금에 대해서는 100% 보장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실용주의 방식 때문에 방북이 허가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개성, 금강산 지역에 진출한 기업들은 최근 들어 방북이 허용되고 있다. '금강산 샘물'을 생산하는 식수업체 (주)일경은 10월 23일부터 실무진 및 기술진 방북이 허용돼 매주 금강산을 현지를 방문하고 있다. 현재 공장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지난 5개월 동안 방북이 막혀 사업 중단으로 인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 금강산.개성관광 관련 기업
현대아산 및 협력업체 유동성 위기...파산 직전
북.미대화 재개 이후 관광 재개 기대 다시 살아나
#사례1(현대아산)
금강산 관광 중단 16개월 째. 그동안 현대아산은 매출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개성관광 마저 지난해 12월부터 중단돼 총 관광 매출손실은 올해 11월까지 2,395억에 달한다. 관광 중단 전 1084명이었던 직원도 12월 현재 397명(조선족 44명 포함)으로 감축했다. 임금삭감 대기발령, 재택근무 등 구조조정 이후에도 매월 20억씩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 금강산 예약판매, PLZ(평화생명지대) 관광, 건설사업 수주 등으로 근근이 사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지난 4월 현대로 유상증자를 받은 200억원이 바닥이 나는 내년도 2월쯤에는 경영난이 우려된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1, 2월이 마지노선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때가 되면 힘들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례2
협력업체 가운데서도 제법 규모가 나가는 C업체는 금강산관광 지구에서 숙박업에 투자했다. 65~70억 원 정도의 연 매출액을 기록했던 이 업체는 "장기간 관광 중단으로 전혀 수익이 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직원 수도 90%나 줄어든 상황이다. 이 업체 사장은 "관광 재개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매출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유동성 위기가 생기고 있다"며 "금융권 대출 받아서 투자하기 때문에 금융비용이나 이자비용이 상당히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도산한 업체들도 꽤 있다"며 현 상황을 우려했다.

지역사회 경제도 관광 중단 이후 바닥을 기고 있다. 강원도 고성군의 피해액은 금강산 관광 이후 월 평균 25억 7천만원 씩 총 411억원으로 집계됐다.
금강상 관광 협력업체의 매출 손실액은 857억원. 지난해 연말 정부로부터 남북협력기금 대출 승인 후 3차례에 걸쳐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이 이뤄졌지만 60억원에 불과했다. 이후 정부의 추가 지원 계획은 없다.
대출금이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늘어나는 이자비용을 충당하지 못한 업체들이 파산 직전으로 몰리고 있다. 이미 몇몇 업체는 도산했다. 협력업체 한 관계자는 "매출이 전혀 없어 남아 있는 업체들도 대부분 유동성 위기에 놓여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30여개의 협력업체들이 '금강산지구기업협의회'를 구성하고 통일부에 관광재개와 법적, 제도적 지원을 촉구하고 있지만 묵묵부답이다.
지난 8월 현정은 현대회장이 평양을 다녀온 직후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당시 현정은 회장은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아태)와 금강산, 개성관광 재개와 비로봉 추가 개방, 백두산 관광 시작 등 굵직한 사업을 합의했다.
이후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로 금강산이 1년 2개월 만에 열리면서 더욱 높아졌던 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는 이명박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 무너지고 말았다. 북측의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당국간 회담도 무시했으며, 현대아산과 아태간 실무접촉까지 막았다.
현 정부는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피격사건 '진상규명', '재발방지', '신변안전보장' 등 3대 전제조건을 달고 있다. 북한이 지난 12월 스스로 막았던 개성관광을 다시 열겠다고 밝혔지만 '신변안전보장'을 이유로 미루고 있다.
정부의 속내는 금강산.개성 관광으로 북한에 지불한 현금이 핵개발 비용 등으로 전용될 수 있기 때문에 북핵 문제가 풀리기 전에는 힘들다는 것이다. 이같은 입장은 정부 고위당국자의 입을 통해 공식 확인되고 있다.
현금이 아닌 현물지원 방식도 검토하고 있지만, 기존 수준의 관광 규모는 문제없다는 정도로 입장이 정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관광재개 시기를 두고 여전히 저울질 이다.
한편, 12월 들어 북.미대화가 재개되면서 금강산.개성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은 지난 3일 "미국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결과 여하에 따라 예상치 못한 북미, 남북관계 급진전도 가능하다"며 "관광재개, 사업정상화를 위해 결정적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를 내비친 바 있다.
◎ 개성공단
출입.체류 정상화 이후에도 자금난 심각...인력난 발전 막아
#사례1
의료봉제를 하는 D업체는 자금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9월 이후 통행 제한 조치가 풀리면서 조업을 정상화 궤도를 올리는 과정에서 자금난에 허덕였다. 바이어들이 대부분 떠나간 상황에서 공장 운영 및 임금 등 고정 비용은 투입됐지만, 이에 비해 수익은 정상 수준을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 한해 매출 목표액은 계획했던 목표치의 50%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11월부터 조업이 정상운영되고 작업량이 늘어나면서 피해액이 줄어들었다고.
#사례2
또 다른 의류업체 E는 최근, 중견 업체로부터 내년부터 거래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불명확한 남북관계의 현실에서 위험 부담이 많은 개성공단 보다는 안정성이 있는 중국과 거래를 하겠단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E업체 대표는 중견 업체를 직접 찾아갔지만 "개성공단에서 물류가 제대로 유통되지 않기 때문에 투자하기에 부담스럽다"는 말만 돌아왔다. E업체는 하는 수 없이 중견 업체보다 물량이 불안정한 2선, 3선 업체들과 계속 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 이 업체 대표는 "불안정한 부분이 계속 반복되고 악순환이 되는 것"이라며 "개성공단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이 부분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최악의 위기였던 상반기보다 주문량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남북관계 리스크'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관련 업체들은 입을 모았다. 한 업체 관계자는 "제한조치가 해제되어도 잠복된 것이 많고 다시 불거질 수도 있다는 것이 거래처의 기본적인 인식"이라고 전했다.
안정적인 주문량을 확보하기 힘들고, 주문이 들어오더라도 은행에서 '대북리스크'를 이유로 대출을 꺼려 주문을 소화할 자금이 부족한 실정이다. 최근 정부가 교역보험제도(8월)를 도입하고, 후발 진출기업 20개사 대상으로 남북협력기금 60억원 대출지원(11월) 등을 시행했지만 역부족이다.
올해 들어 불거지고 있는 '인력난'은 개성공단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개성공단 가동기업수는 2008년 93개에서 올해 116개로 25% 증가했지만, 북측 근로자는 10월 현재 42,242명으로 전년대비 증가율은 5%에 불과하다.
특히 후발입주기업의 인력난이 심하다. 한 업체 대표는 "당초 920명을 신청했지만 약 60%인 550명의 인원만 확보됐다"면서 "작년에 입주해서 그나마 공장을 가동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 올해 입주한 업체의 상황은 공장 가동이 안 될 정도로 심각하다"고 전했다.
현재 개성지역에서 충당할 수 있는 근로자는 거의 바닥이 난 상황이다. 개성공단이 계속 확대되기 위해서는 개성 인근 지역으로부터 인력을 보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측이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북측 근로자 기숙사 건설과 출퇴근 도로 건설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개성공단의 전망은 다소 밝은 편이다. 6,7월 3차례 남북간 실무접촉이 성과 없이 끝났지만 하반기 들어 남측 정부가 개성공단에 대해 상대적으로 적극적으로 나오는 편이다.
이에 따라 북측 여성 근로자를 위한 탁아소와 연말 내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지하 1층, 지상 15층 연면적 9,350만평 규모의 종합지원센터도 곧 준공되며, 소방서도 내년 하반기 완공될 계획이다.
◎ 경협 지원 대책 시급... 북핵진전 속도가 관건
이같이 이명박 정부 집권 2년 동안 20여년간 역사를 이어온 남북경협이 고사 직전 상황까지 내몰리면서 회생을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그동안 법적 보장도 없이 기업의 자생력에 의존해온 북한 내륙지역 진출 기업들에 대한 지원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업들은 여론의 관심에서도 벗어나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여타 남북경협에 비해 정부로 부터 차별을 받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한 내륙진출기업 대표는 "우리는 20년이 됐는데, 5년 된 개성공단은 유지하고 우리만 제재를 가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형평성의 문제"라고 말했다.
개성공단 지원 및 발전과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문제도 이명박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하지만 북핵문제 해결을 최우선시 하고 있는 정부가 이와 별개로 남북경협을 정상화하는 조치를 내놓을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홍익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인 출신이라 경제협력에 부정적이지는 않다"면서도 "핵문제가 걸려 있다 보니까 현금이 간다든지, 북한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제한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봤다. 이어 "6자회담이나 비핵화 프로세스가 시작된다면 정부가 비핵화를 전제로 경협기업에 대한 조치를 완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시점이 언제가 될 지는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