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이같은 여론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25일 "금강산 관광에 대해서 북측이 현대를 통해서 의사를 밝혔으면 되지, 무슨 조건이 많으냐고 할 수도 있지만 회담의 성격이 그렇게 될 수만은 없다"고 토로했다.
이런 비판 여론 때문인지 정부도 조금씩 물러서는 모습이다. 18일 현대를 통한 금강산.개성 관광 재개를 위한 당국간 회담 제의 소식이 알려졌을 때, 정부는 '공식적인 회담 제의가 아니다'라고 잘랐었다.
며칠 후 정부는 '당국간 공식 채널이 열려 있기 때문에 북한이 진정성이 있으면 이를 통해 공식 제안할 수 있다'는 애매한 입장을 내놨다가, 25일에는 '북한이 당국간 채널을 통해 공식 제안하면 수용하겠다'는 좀 더 명확한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이같은 북한의 의사를 파악하고도 먼저 회담을 제안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공식적으로 제안하라'고 고자세를 취하는 것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다.
'신변안전 문제' 등 3대조건 "까다로운 내용"
금강산.개성 관광을 위한 당국간 회담이 열리더라도 이같은 남측 정부의 태도로 인해 실제 관광 재개까지 이어지는 데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관광객 피살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진상규명', '재발방지', '신변안전' 등 3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이중에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신변안전' 문제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제도적으로 우리 국민들이 북을 방문하고 체류하면서 문제가 없겠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그것이 신뢰를 쌓는 굉장히 중요한 뒷받침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변안전조치를 예로 들면서 "보기에 따라서 까다로운 내용도 있다"고 덧붙였다.
북측은 신변안전과 재방방지 조치를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이같은 남측의 '까다로운' 조건에 대해서는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25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지난 8월 우리 최고수뇌부의 특별지시에 따라 금강산 관광객들의 신변안전과 재발방지 문제에 대한 확고한 담보까지 해주었다"면서 "도대체 그 이상의 무슨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신변안전보장조치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라고 밝혔다.
이번 현대와의 접촉에서 북측은 '남측 당국의 현장조사도 협의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남측은 '현장조사만으로 진상규명은 불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당국자는 "무엇이면 된다, 안 된다는 형식만의 문제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면서 "전체적으로 그 정도면 우리가 판단하기에 (관광객 피격사건이) 해명됐다고 보면 된다"고 주관적인 기준을 내세웠다.
금강산 대금 지불방식도 '시비걸기' 포석
특히 MB정부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비 전용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관광 대가 지급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5.25 2차 북핵실험 이후 발효된 유엔 안보리 제재 '1874호'에 금강산 관광이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과 미국의 공식 입장이었지만, 현금 대신 현물로 대가를 지불하는 방안이 정부 내에서 거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관계자는 25일 "그 문제를 어떤 식으로 적극적으로 검토한 바는 없다"면서도 "1874호가 가고 있는 상황에 또 일부분 걸려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 문태영 대변인은 26일 "금강산 관광은 안보리 결의 1874에 제재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의 1차적 판단"이라고 기존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금강산 관광이 '1874호에 제재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입장과 '1874호가 가동되고 있는 상황에 일부분 걸려 있다'라는 상충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금강산 관광이 재개 논의가 시작된 이후에도 언제든지 대북제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에 따라 현금으로 지급되는 대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역시 북한의 핵개발 '돈줄'을 옥좨야 한다는 현 정부의 인식도 깔려 있다.
하지만 북한이 25일자 아태위의 대변인 담화에서 밝힌 "도대체 세계 그 어디에 관광객들이 관광료를 물건짝으로 지불하면서 관광하는 데가 있는가"라는 지적이 오히려 설득력이 높아 보인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주장하는 이 정부의 기조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 공식회담 제의할까?
개성관광부터 선차적으로 열릴 수도
북한이 남측 정부의 희망에 따라 당국간 채널을 통해 회담을 공식 제안할 지는 미지수다. 지난 8월부터 지속된 '대남 유화공세'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만, 몇 달 동안 변함없는 MB정부에 대한 불만도 쌓여가고 있다.
최근 북한의 매체를 비롯해 아태위가 25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남측 당국을 비난하는 것은 예전과 다른 모습이다.
MB정부가 '고자세'를 고수할 만큼 여유로워 보이지도 않는다. 12월 8일로 예정된 미국 보스워스 북한특별대표의 방북 이후 북.미관계가 진전이 가시화될 경우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사이의 불균형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북한이 먼저 공식회담을 제안하지 않더라도 남북이 서로의 이해가 상충하는 시점에서 당국간 회담이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남북간에 비공식 접촉이 진행되고 있다면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라며 "북한은 체제적 특성 때문에 남측이 먼저 공식 제안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우리가 먼저 제안하지 못할 이유도 없고, 북측도 공식적으로 제안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단 회담이 열리면 금강산 관광에 비해 풀기 쉬운 '개성관광'이 먼저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 금강산 관광은 '관광객 피격사건'이라는 큰 걸림돌이 있지만 개성관광은 12.1조치로 북한이 중단시켰던 것이고 관광대금도 비교적 크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개성관광은 '신변안전문제'만 풀리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남북간 체류에 관한 합의가 있지만, 개성관광은 그런 합의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도 개성관광을 먼저 풀자는 입장이다.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은 최근 "북한이 개성관광에 대해 금강산 관광과 별도로 협의하자는 입장을 보였다"며 "금강산 관광과 달리 개성관광을 좀 더 일찍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신변안전문제 해결을 통해 개성관광을 선차적으로 풀고 북.미관계 진전을 지켜보면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로드맵을 그려볼 수 있지만, MB정부가 개성관광과 금강산 관광을 별개로 다룰 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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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진 기자
mjjung@tongilnews.com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전망..'까다로운' 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