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화의 산속 서예산문 『나의 삶은 커라』 표지. [자료사진 - 통일뉴스]

저자는 홀연히 자연(自然)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가도 가도 끝없는 눈보라 속 길을 걷다가 수렁에 빠진 듯한 기분이 들어서 불현듯 생활환경을 바꾸고 싶어져"서 스스로 그러했다.

박종화의 산속 서예산문 『나의 삶은 커라』는 여느 산속 이야기처럼, 푸근하고 정겨운 소재들로 가득하다. 전남 함평 산속에 버려진 집에 들어가, 날마다 느끼는 산중 생활의 첫 경험들이 천방지축으로 흐르고 있다. 저자의 표현처럼, 그 경험들은 천방지축으로 흐르다가 또 다른 사색을 남겼다.

책에서 저자는 산 근처 '신작로'까지 달리기를 하다가 길에서 우는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만난 일화를 소개한다. 형이 아빠네 집에 가자고 해서 안 간다고 했더니 형만 버스를 타고 가버려 혼자 서서 울고 있는 아이였다. 아이를 달래며, 저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형이 안 해준다고 말을 듣지 않으면 오늘처럼 슬퍼서 울게 되니 형이 탄 오늘의 버스도 탔어야 옳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홀로 서성이다 말려거든 거꾸로 가는 배일지라도 일단 타자"고 한다.

어쩌면 저자는 이 아이와 똑같은 모습이었지 않았을까. "가도 가도 끝없는 눈보라 속에서" 홀로 서성이다, 거꾸로 산속으로 들어온 건지도 모르겠다. 이 시선으로 바라보면, 저자의 산중 생활은 자신의 삶으로부터 도피하거나 임시적인 거점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나의 삶"인 것이다. 관망하기 위해서 도심을 떠난 것이 아니라 실천하기 위해서 산을 택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실천하는 삶 속에서 활기를 찾습니다", "당신이 외로움을 느낀다면 실천하는 삶을 돌아보십시오"라는 한 줄의 경구에는 산중 생활을 위해 산을 올랐던 저자의 첫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산중 생활은 외부의 소식을 끊고 온전한 나를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간적, 공간적인 폐쇄성을 가진다. 20년 동안의 창작생활, 숱한 노래와 시로 "함께"와 "혁명"을 부르짖었던 저자 역시 "나의 삶은 커라"고 외치고 있지만, 그의 삶은 더불어 사는 것들과 함께 한다.

▲ 책에는 산중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저자의 철학, 소회 등이 산문형식으로 짤막하게 소개돼 있고, 직접 쓴 한글서예작품 52점이 함께 실려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저자는 "넓은 하늘을 다 볼 수 없어도 눈에 어린 것만이라도 껴안을 수 있다면" "우물 안 개구리"라도 되고 싶다고 소망한다. 자신을 "상생하는 사회, 더불어 사는 공동체, 나라의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산중 생활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삶이 아니다. 더 넓은 세계로의 도전이다. 저자는 몸을 웅크려야만 더 멀리 뛸 수 있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함께"를 위한 "나의 삶"을 가꾸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들의 엔진 소리에 간만에 내린 빗소리가 묻히는 삭막한 공간에서 사색의 여유를 찾고 싶은 이들에게, 또 누군가처럼 제 갈 길을 못 찾고 홀로 서성이며 고민하고 있다면, '가난한 예술장이'의 산중 생활을 한 번 엿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전하는 산중 메시지가 담긴 서예 작품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면, 12월 열리는 전시회에 찾아가 보는 것은 또 어떨까. 거기서 책에 다 나오지 못한 산중 생활의 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전시회는 광주 원갤러리(12.9-15)과 서울 인사동 라이트갤러리(12.16-22)에서 진행될 예정이며, 9일과 16일 오후 7시에 각각 개막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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