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상에서 충돌이 발생했다. 올 1월초부터 충돌의 위기는 감지되었다. 최대의 위기 시기라 할 수 있었던 6~7월을 넘겨 안심하고 있었으나 11월 불의의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더 큰 충돌로 비화되지는 않았다. 북도 남도 위기의 심화를 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풀리지 않는 의문 네 가지
그러나 몇 가지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있다. 첫 번째 의문은 북한의 의도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경비정 한 척이 내려왔다는 점에서 ‘도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충돌 후에도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날선 주장은 제기되지만 군사적 특이 동향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북한은 남측 함정의 다섯 차례에 걸친 경고 방송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지 않았을까. 두 번째 의문이다. 무언가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경고방송을 무시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세 번째 의문은 ‘50 대 5000’의 격차이다. 남측 군당국에 따르면 남측의 경고사격에 50발의 조준사격을 가했다고 한다. 이에 남측 함정은 5,000발로 응사사격을 했다. 2분동안 5,000발이다. 쉬지 않고 발사했다는 것이다. 확전을 방지하고자 했던 의사가 남측 함대에 있었는지 의구심이 드는 이유이다.
네 번째 의문은 남측 군당국이 당시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브리핑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건 당일 오후 함참 정보작전처장 이기식 해군준장이 서해 충돌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다. 그러나 이 처장은 ‘우리 고속정이 몇 척이나 동원됐나’는 질문에 “보안사항”을 이유로 정확한 답변을 피했다. ‘우리가 몇 발을 쏘았느냐’는 질문에도 “작전에 관한 것”이라며 ‘소상히 밝히지’ 않았다.
언론은 혼란 그 자체였다. 일부 언론은 남측이 200발을 쏘았다고 보도했고 또 일부 언론은 2000발을 쏘았다고 보도했다. 북측의 사격은 50발로 변함이 없는데 남측의 사격은 200~2000을 왔다갔다한 것이다. 결국 국방부 관계자는 12일 4,950발을 발사했다고 털어놓았다. 무언가 숨기고 싶은 것이 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일부 언론에서는 북한의 의도를 연일 강조하고 있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뭐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남북 정세의 불안정성을 고조시켜 미국으로 하여금 하루빨리 북미대화에 나서라는 압박 의도라는 분석도 있고, 그동안 북미 양자회담을 위해 대남 유화책을 사용했는데 북미 대화가 결정된 마당에 더 이상 대남 유화책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 남측 군당국의 주장대로 북측이 경고방송을 무시하고 계속 침범을 했는지도 확실하지 않으며 북측 군당국의 주장대로 불명목표를 확인하기 위해 긴급기동시켰다가 돌아가는 길에 남측이 선제 사격을 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확실한 것 다섯 가지
그러나 확실한 것은 몇 가지 있다. 첫째, 합참은 인근에 북측 어선이 몇 척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북측이 말하는 ‘불명목표’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둘째, 3,500야드(3km가 조금 넘는 거리)의 ‘교전 거리’에서 경고사격과 조준사격의 차이를 식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남측의 경고사격을 북측은 조준사격 즉 선제공격으로 오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셋째, 남측 함대의 과잉대응이 있었다는 점이다. 2분 동안 5,000발의 함포와 기관포를 발사했다는 것은 단순히 차단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격침을 위한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서해 NLL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남측 군당국의 수뇌부의 의지가 작용되어 있다. 올 1월 남측 국방장관은 서해 일대의 현장 지휘관들에게 작전권을 대폭 위임했다. 더 나아가 지난 6월 당시 이상희 국방장관은 “전투가 벌어졌다는 보고를 하지 말고 승리했다는 보고를 하라”고 주문했다. 강력히 대응하라는 지침을 이미 내려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넷째, 남북 당국은 확전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던 대로 북측은 특이한 동향은 보이지 않고 있다. 충돌 당일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명의의 ‘보도’와 그 후 <로동신문>, <민주조선> 등에서 ‘남측의 불순한 기도’, ‘값비싼 대가’, ‘서해무장 도발’ 등 험악한 말이 나오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남측 군부’를 겨냥하고 있다. 청와대 역시 “이번 사태로 남북관계가 악화되길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즉각 발표했다. 국방부와 합참 등 군당국의 ‘무리한 대응’을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다섯째, NLL이 여전히 남북관계의 화약고라는 사실과 MB의 대북정책이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 관계를 잘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해 왔다. 최근 남북 관계의 일정한 개선이 MB 지지율의 요소가 되기도 했다. MB가 강조했던 ‘원칙있는 대북정책’이 성공하고 있다는 환상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번 서해충돌은 ‘환상은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MB가 진정 원하는 것
서해 충돌 이후 발언으로 보면 남북관계의 극단적인 파국은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 접촉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남북관계 개선을 원하고 있다는 인상도 준다. MB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MB가 남북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북측과 비밀 접촉을 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었다. 그동안 MB의 친형인 이상득, MB 측근 목사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남측의 임태희 노동부장관과 북측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회동했다는 NHK 보도가 나오고, 그 외에도 복수의 소식통이 임태희 장관을 지명한 것으로 보아 비밀 회동의 주인공은 임태희 장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회동에서 남측은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강력히 요구했고 북측은 ‘신변상의 이유’로 난색을 표하면서 성과없이 끝났다고 알려지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조문특사단으로 서울을 방문한 김기남 조선노동당 비서가 처음 제의했고, 원자바오 중국 총리 역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이같은 입장을 전해듣고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의 입장은 분명해 보인다. 북미 관계 개선과 남북 관계 개선을 병행추진하는 것은 북한의 오래된 전략이었으며 이는 미국의 요구이기도 했다. 1차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던 2000년 말 북미 정상회담이 추진되었다가 중단되었으며, 2007년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인 10.4 선언에서는 ‘3자 혹은 4자 정상회담’이 명시되기도 했다. 지난 8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그 후 북한은 남북관계에서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남측 당국의 셈법은 조금 달라 보인다.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 접촉에 나선 것이라기 보다는 ‘상황 관리’ 차원에서 대북 제의에 응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즉 북측에서 정상회담을 제의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그를 위해 남북 접촉을 제의하자 그럼 한번 만나보자는 식으로 비밀 접촉에 응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회담 장소 문제는 정상회담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논의해야 할 사항인데 첫 번째 만남으로 그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서울 답방 아니면 정상회담 안된다’는 식의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 비밀 접촉에서 북측은 쌀 10만톤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남측 당국은 옥수수 1만톤으로 화답했다. 쌀은 군부한테 갈 수가 있으니 ‘인민’들에게 돌아갈 옥수수나 1만톤 주라고 이명박 대통령이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그것도 싱가포르 비밀 접촉 후 극소수의 관계자들만이 모인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옥수수 1만톤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MB가 이같은 고자세로 나가는 이유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효과를 보고 있다는 잘못된 상황 판단에 기인한다. 따라서 조금만 더 압박을 가하면 북측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혹은 굴복)를 끌어낼 수 있다는 인식이다. MB 정부가 북미 양자대화 시기를 연장해 달라고 오바마 행정부 측에 강력히 주문한 것도 이같은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 즉 조금만 있으면 북한이 굴복하고 나올 텐데 굳이 지금 북미 양자대화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강력한 문제제기였던 것이다.
서해충돌은 MB에게 독될까 약될까
그와 같은 논리가 지금까지는 통했다. 동맹 관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남측 당국의 강력한 연기 요청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미국 내 세력관계 속에서 네오콘의 강력한 견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오바마로서는 남측 당국의 요청을 거부하고 무리하게 양자대화를 추진했을 때 네오콘들로부터 역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존재했을 것이다. 여하튼 MB의 ‘속도 조절 요구’가 통할 수 있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서해충돌로 MB의 논리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공산이 크다. 우선 NLL 에서의 군사적 충돌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행정부는 북미 양자대화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북한에 통보까지 했다. ‘돌이킬 수 없는’ 북미양자대화 국면으로 선회한 것이다.
MB의 북미관계 속도조절론은 ‘아직 남북관계가 정상화되지 않았으니 남북 관계 정상화와 북미대화가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했다. 그러나 이번 서해충돌로 MB가 주장해왔던 남북관계 병행론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그 전만 하더라도 남북 대화가 있고,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 접촉이 진행되는 등 남북관계가 곧 정상화될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 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충돌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MB는 답변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13일 북측 남북장성급 회담 대표단장 명의로 NLL이 무의미해졌다며 ‘무자비한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남측에 통보했다. 서해에는 오직 북한이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이 선은 NLL 아래쪽에 있다)만이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무자비한 군사적 조치’가 무엇인지 아직 확인할 수는 없다. ‘무자비한 군사적 조치’를 어떻게 취할 것인지도 불확실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3일 북측의 발표로 남북 관계는 다시 빌 클린턴 방북과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이 방북했던 8월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공산이 커졌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는 미국의 질문에 ‘기약없음’이라는 답변이 정해져 버린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문제를 덧붙이자면 NLL 문제는 다시 북미 간의 협상 의제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과거 북한은 남북 간에 NLL 논의를 거부했었다. NLL은 북미 군사 문제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절 NLL은 남북의 의제가 되었고 2007년 11월 국방장관 회담에서는 남북간의 불가침합의를 재확인하고 해상불가침경계선을 설정하고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키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서해충돌이 발생하고 북측이 NLL은 무의미해졌다고 선포한 것은 NLL을 다시 북미 회담 의제로 만들겠다는 의사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오바마 행정부가 그 제의를 받으면 북미 협의에 NLL 문제가 포함되는 것이고, 오바마 행정부가 그 제의를 거부한다면 NLL은 다시 한반도 문제의 주요한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어떤 경우가 되었건 MB의 ‘대북 관리 정책’은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북한 관리에 실패함으로써 스타일을 구기고 명분과 논리를 상실한 MB 정부의 속도조절 요구를 오바마 행정부에 어느 만큼 받아들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결국 MB의 ‘북한 관리 정책’ 실패는 MB의 대미 ‘북핵 외교’의 실패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 글은 새세상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주간통일동향 [통일돋보기 8호]에 동시 게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