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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처럼 자유로웠던 음악가의 경계넘기’<관람기> 연극 ‘윤이상, 나비 이마주’를 보고
김양희 기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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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11.03  15:5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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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1.

윤이상: 초청장이야. 강서고분의 사신도를 보여주겠다는 거야.
아    내: 가실꺼예요?
윤이상: 당신도 잘 알잖아~내가 얼마나 강서고분의 사신도를 실제로 보고 싶어 했는지. 
오래 전부터 음악을 만들고 싶었던 소재야.

윤이상: 강서고분의 사신도. 네 개의 수호신.
            튕겨나갈 듯 두 눈을 부라리며 하늘로 승천하고 있는 푸른색의 청룡-오보에야. 
            목을 길게 뻗고 입을 크게 벌린 흰색의 백호-물론 첼로지. 
            머리를 곧추세우고 날개를 힘차게 펼쳐 비상을 준비하는 붉은색의 주작-바이올린. 
            상서로운 빛 속에서 거북을 휘감고 있는 검은색의 현무-플루트. 
            이들은 네 개이며 또 하나이기도 하다. 
            고구려의 웅혼한 기상과 세련되고 정신적인 깊이를 지닌 강서고분의 사신도.

최상한: 상아 내래 한 가지 묻자. 너는 왜 유럽에 머물고 있간?
윤이상: 유럽은 작곡가가 일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지.
최상한: 하지만 네 음악은 무조음악이고 자본주의적인 영향을 받은 지식인들에게 도움이 될 뿐
인민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어.
윤이상: 상한아 미안하다. 나는 음악가지 정치가가 아니야. (나비 이마주 중에서)

윤이상, 그는 나고 자란 땅에서 억울하게 간첩 혐의를 받았고 스트라빈스키, 슈톡하우젠, 카라얀 등 150여명의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구명요구로 2년 만에 옥에서 풀려났다. 조국이 ‘독재’와 ‘군사정권’의 어둠을 헤매고 있을 때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를 작곡하며 조국의 민주화를 염원한 음악가이고 미국 뉴욕 브루클린 음악원의 교수진이 선정한 ‘사상 최고의 음악가’ 44명 중에 한 사람이지만 고국에서는 잊혀진 사람, 하지만 늘 분단된 조국을 기억한 음악가, 그가 연극 ‘윤이상 나비이마주’로 다시 태어났다.

   
▲ 연극 ‘윤이상, 나비 이마주’ 포스터.
서울시문화상을 받는 등 대한민국에서 작곡가로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늘 부족하다고 여긴 그는 음악 공부를 위해 40이 넘은 나이에 처자식을 두고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다. 프랑스에서 1년 1개월간의 힘든 파리 유학생활을 마치고 서독 베를린으로 가서 전위음악을 접한다. 윤이상은 귀국을 미루고 유럽에 남아 한국의 전통과 서양의 음악, 동양과 서양의 음악을 융합해 유럽에서 전혀 새로운 음악 세계를 펼치며 주목을 받는다.

이런 가운데 윤이상은 1963년, 일본 유학 시절 함께 공부했던 죽마고우 최한상을 만나 그의 가족들의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다. 또한 그가 늘 벽에 붙여놓고 바라보며 음악적 모티브로 삼고 싶었던 강서고분의 ‘사신도’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이유도 큰 의미 중의 하나였다. 그렇게 북한을 방문했으나 친구 최상한은 윤이상의 음악이 자본주의적 지식인들을 위한 효과음악이지 인민에게 봉사하는 음악이 아니라고 여기며 음악을 통해 정치를 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며 실망을 안겨준다.

그러나 이 일로 윤이상은 어느 날 한국 중앙정보부의 음모에 의해 납치되어 한국으로 강제 이송되고 소위 ‘동베를린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교도소에서 자살이 미수로 끝나고 극한적인 절망의 상황 속에 죽음을 처연히 받아들이며 교도소에서 ‘나비의 미망인’을 작곡했다.

1969년 대통령 특사로 석방됐으나 무죄 판결이 아닌 석방이어서 명예회복을 할 수 없었고 남한에서 그의 음악이 연주되는 것도 금기시 됐으며 차츰 잊혀져갔다.

출옥 후 그는 납치, 고문 수감의 악몽을 잊으려 음악에만 전념하다가 김대중 씨의 도쿄 납치사건을 계기로 남한의 민주화와 남북 평화통일을 위해 본격적인 운동을 전개한다. 

S# 2.

윤이상: 정치가는 음악가가 될 수 없지만 음악가는 정치가가 될 수 있어.
            분단의 장벽을 넘나들 수 있는 게 뭘까? 나비 같은 음악.
            어떤 단단한 철벽도, 정치적 대립의 벽도 허물 수 있는 것, 바로 음악이고 예술이 야, 남한과 북한이 함께 휴전선에서 연주하는 음악회를 여는 거야.
아    내: 당신의 이 마음 누가 알아줄까요? 세상의 오해가 두려워요.
윤이상: 진정성을 갖고 일하면 돼.

허인수: 이번이 좋은 기회입니다.
            박 정권 때는 못 오셨지만 현 정권은 선생님의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오신다면 국민적, 아니 국가적인 영웅으로 추대하겠습니다.
윤이상: 왜 광주 시민들을 무참히 살육했습니까?

허인수: 남한은 가시기 어렵고 북한은 자유로이 왕래하시기 편하다.
윤이상: 나는 남한과 북한을 동등하게 사랑할 자격이 있고 두 체제가 동등하게 발전하길 바 라오.

윤이상: 조건이 하나 있소.
            대통령은 광주에 큰 위령탑을 세워 원한을 풀어주시오. 그때에 조국 땅을 밟을 수 있을 겝니다.
허인수: 현 정부가 정통성을 스스로 부인하라는 말씀이군요,
윤이상: 대체 현 정권이 무슨 정통성을 갖고 있단 말입니까.

이 시기에 그는 음악가로서 서베를린 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되고 민주인사로서 한국민주민족통일해외연합(이하 한민련)의 유럽본부 의장으로 추대돼 도쿄, 뉴욕 등에서 활동한다.

1983년부터 1987년까지 그는 교향곡 5개를 연작으로 써내는데 메시지는 모든 적대적인 것들과의 화합과 세계 평화이다. 이를 계기로 1988년 독일 대통령으로부터 ‘대공로훈장’을 받게 된다. 그는 한민련 활동으로는 남한과 북한의 문제해결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휴전선에서의 민족합동음악 축전을 계획하나 수포로 돌아간다.

1990년 그러나 음악으로 남북한을 하나로 아우르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실천하려 남과 북에서 각각 남북통일음악제를 주관해 10월에는 평양에서, 12월에는 서울에서 교류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기는커녕 귀향을 하겠다는 소망마저 번번이 좌절시켰다.

결국 그는 1995년, 민족화합의 결실을 보지 못하고 그토록 밟아보고 싶어 한 고향땅에서도 아닌 이역만리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번 공연 나비이마주는 2007년 초연에 윤이상 선생의 고민과 사색이 더욱 풍부하게 재구성된 작품으로 ‘음악 안에서 나비처럼 자유로웠던 작곡가의 경계넘기’라는 부제처럼 음악을 통해 경계의 벽을 허물고자 했던 선생의 음악세계와 삶을 관객들과 호흡하며, 그 경계의 벽을 서서히 허물어내고 있다.

극에 몰입할수록 음악이라는 매개로 민족화합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선생을 보며 ‘동베를린 사건’ 주모자라는 선입견은 서서히 사라진다.

또 음악을 사랑하고 가족과 친구를 너무도 사랑하며, 민족을 사랑한 선생의 모습을 보며 그동안 북한을 넘나들고 정치적인 현실을 비판한 음악을 작곡했다고 해서 간첩으로 낙인찍고 외면한 우리를 반성케 한다.

공연이 끝나고 난 후에도 한참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아 자리에 앉아 있는데 한 관객이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 공연은 이명박 대통령도 봐야 하는데, 공연만 본다면 내가 표 끊어 준다.”

은세계 씨어터컴퍼니 이동준 대표는 “부디 선생께서 바라시던 남과 북이 함께 발전하고 궁극적으로는 남과 북이라는 용어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시기가 빨리 와서 연극 ‘윤이상, 나비이마주’가 기차타고 평양에서 베를린에서 공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이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음악가, 윤이상 선생이 되살아나 우리 사회 곳곳에 높이 둘러쳐진 경계의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한편, 이번 공연은 11월 8일까지(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3시, 7시, 일요일 오후 6시) 대학로 문화공간 엘림홀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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