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새세상연구소 연구위원)


깜박깜박 하던 남북관계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졌다. 임진강 수해방지와 관련한 당국간 회담을 열자던 남측의 제의를 북측이 받아들였고, 그 회담장에서 북측은 임진강 사고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더 나아가 유가족에게도 조의를 표명했다. “더 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긴급히 방류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까지했다.

확실히 북측은 남북관계 개선에 방향타를 맞추고 있는 것 같다. 남측 내에서 임진강 참사의 원인이 북측의 무단방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측의 무책임한 대처에도 있다는 여론을 북측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임진강 실무회담에서 나온 북측의 발언은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측 일각에서는 북미관계에 ‘올인’하고 있는 북측이 남북관계 개선에 소극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7일자 노동신문 역시 ‘북남협력을 위한 실천행동’을 강조했다. “실천행동만이 우여곡절을 거듭하는 현 북남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아도 북측은 ‘북미관계, 남북관계 병행론’을 추진해 왔다. 1992년 미국이 한반도 전술핵무기를 철수시키고 팀스피리트훈련을 중단하는 등 북미관계 개선의 조짐이 있을 때 남북기본합의서가 나왔다. 1994년 카터의 방북으로 북미 사이에 극적인 핵협상 돌파구가 마련되었을 때, 비록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되었다.

2000년 북미 미사일 회담이 진척하는 등 북미 관계가 호전되었을 때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2007년 북미직접대화에 기초해 6자회담이 성과를 거두고 있을 때 2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북측은 ‘북미관계, 남북관계 병행론’을 철저하리만치 고수했던 것이다.

다소 속도감이 떨어지고 있긴 하지만 북미 관계는 양자대화의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미 국무부가 북 외무성 리근 국장에게 비자를 발급했다. 뉴욕까지 방문하여 미 당국자를 만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상 양자대화의 시작이다. 북의 ‘북미관계, 남북관계 병행론’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MB 정부는 여전히 ‘그랜드 바겐’에 집착하고 있다. ‘핵 해결 우선론’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15일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주한 외교관들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도 이제 핵을 포기할 때가 됐”다고 발언했다. 이렇게 되니 관료들도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 시기 북에 대한 지원을 ‘대규모’로 설정하고, 그것보다 극히 적은 양의 지원만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소극적 추진론’이다.

이 시점에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된다. 북측이 제재를 감당하지 못해 대화에 나서고 있다고 판단하는 MB 정부는 보다 강력한 압박을 꾀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임진강 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아냈으니 지난 해 7월 발생한 금강산 사건에 대한 사과도 받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것을 위해 대북 인도적 지원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그렇게 상황이 전개된다면 남북관계는 다시 경색될 것이다. 다시 부활의 기지개를 켜는 개성공단이 제일 먼저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며, 남북관계의 진전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한반도 핵문제 해결과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남북관계는 주역.조역은 고사하고 악역만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MB에게 ‘적극추진론’을 기대하기는 난망하다. 다만 ‘병행추진론’과 ‘소극추진론’의 간극을 좁히기를 바랄 뿐이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첫째, 대북인도적 지원을 즉각 재개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MB는 ‘북한의 요청이 있다면 지원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지난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북측은 인도적 지원을 ‘요청’했다. 인도적 지원은 ‘금강산 사과’와도, ‘추가 상봉 여부’와도 무관하게 시작되어야 한다.

둘째, 금강산 관광 재개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북측의 사과를 전제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철회해야 한다. 금강산 관광 재개를 선언하고 금강산 관광을 진행하면서 관광객의 신변 안전을 위한 조치를 합의해 나가는 탄력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미 북측은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나서 ‘관광객의 신변 안전’을 보장했다. 그에 필요한 실무적 조치들은 관광을 진행하면서 당국 사이에 협의하고, 합의하면 될 일이다.

‘병핵추진론’과 ‘소극추진론’이 배타적인 것만은 아니다. 둘 사이의 간극은 충분히 좁힐 수 있다. 문제는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MB 정부가 진정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가 있다면, 남북관계를 소극적으로라도 개선할 의지가 있다면, 대북인도적 지원을 추진하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볼 일이다.

* 본 글은 새세상연구소 <통일돋보기 5호>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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