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이 현재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감청 대부분이 단순 이메일 감청이 아닌 패킷감청이라는 사실 역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의혹에 머물렀던 패킷감청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향후 현행 통신보호비밀법의 개정과 시민사회 재판 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가 민주당 서갑원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가기관이 방통위의 인가설비를 도입하거나 직접 도입한 설비를 보유한 현황은 총 1,505대에 달하며, 이 가운데 2002년 5대, 2003년 2대, 2005년 4대 등 총 11대의 인터넷 패킷감청 설비가 인가된 내역이 확인됐다.
서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인가한 '인터넷 패킷 감청설비'도 총 11대로 밝혀"졌다며 "실제로 국정원 등 국내 정보수사기관 및 국가기관의 인터넷 패킷감청이 수년 전부터 이뤄져 온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상 정보.수사기관은 감청 설비를 설치하면 국회 정보위원회에 통보하게 돼 있고, 국가기관은 방통위에 신고해야 한다.
변재일 민주당 의원이 방통위에 확인한 결과, 설치 후 방통위에 신고한 국가기관은 한 군데도 없었다.
변 의원은 "이것은 11대 모두가 정보.수사기관(국정원, 기무사, 검찰청, 경찰 외사계)에서 활용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감청설비를 만든다고 방통위에 신고는 했지만, 어느 정보수사기관에서 몇 대가 운용되고 있는지는 정보수사기관이 통보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변 의원은 "우려가 사실로 확인된 데 대한 놀라움과 더불어, 막상 몇 대의 감청장비가 정보수사기관에 납품되어 운용 중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는 현행 통비법의 맹점에 답답함을 느낀다"면서 "정보수사기관이 스스로 감청장비를 제작하여 운용할 경우, 아무런 제어장치가 없는 현행 통비법의 문제점을 그대로 둔 채로 한나라당의 통비법 개정안이 통과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업자 측에 감청설비 구비 의무와 통보의무 등을 지우고, 정작 국가기관은 법적 사각에서 직접감청을 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통비법 개정안은 통신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반영하기 위해 반드시 문방위와 법사위 병합심의가 이뤄져야 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밝혔다.
패킷감청이 사실로 확인된 가운데,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에 의해 더욱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이 의원이 방통위로부터 제출받은 '09년 상반기 인터넷 감청협조 자료'에 따르면, 패킷감청을 포함해 인터넷 서비스에 있어 게시판이나 이메일을 들여다본 건수는 2007년 1,149건, 2008년 1,152건, 2009년 상반기 799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 가운데 "거의 대부분의 감청은 이메일 감청이 아닌 패킷감청"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정현 의원실에서 주요 통신사업자만을 대상으로 패킷감청 제공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A사는 50여 건, B사 50여 건, C사 10여 건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고, 과거 단순 이메일 감청은 한 두건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A사의 경우 패킷감청 허가서 1건당 10건의 IP주소를 감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의원은 "인터넷 패킷감청으로 인한 국민의 인권이 침해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패킷감청이 가능한 범위와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불법적인 패킷감청 의혹을 가장 먼저 제기했던 시민사회단체들은 경악하면서도 새로운 사실이 적지 않은 파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봤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지난 8월 의혹을 제기했을 때는 감청 영장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패킷감청 설비가 11건이 인가가 났다는 것은 실제로 집행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있다는 것이고, 그런 것이 확인됐다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구속된 한 간부에 대해 국정원이 2004년부터 패킷감청을 해 왔다고 의혹을 제기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의 원진욱 사무차장은 "의혹으로만 제기됐던 패킷감청이 증거자료를 통해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며 "진행되고 있는 범민련 재판 과정에서 패킷감청과 관련해 통비법의 폐해와 위험성을 법적 대응을 통해 공개적으로 쟁점화시키려고 하는데 이 같은 사실은 패킷감청의 위해성을 입증시키는 자료로 훨씬 힘을 실어줄 수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