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 반대 시위를 비롯한 대학가의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학원통제 정책을 벌인 사실을 규명했다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안병욱)가 30일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이날 오전, 보도자료를 통해 "박정희 정권이 대학 내 사찰은 물론, 분담지도교수제와 교수재임용제 시행, 학도호국단제도 부활 등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동원해 학원통제를 꾀했으며, 소위 '문제학생'으로 지목된 학생들을 강제로 휴학시키거나 군에 강제징집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2월 유신헌법을 공포한 이후, 긴급조치권을 발동해 유신헌법의 개정을 주장하거나 정부를 비판하는 일체의 활동을 규제하고 처벌에 나섰다.

계엄령, 긴급조치, 위수령, 휴교령 등 잇단 강압적인 공권력의 행사에도 불구하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유신 운동이 거세어지자, 박정희 정권은 학원가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위험집단'으로 규정하고 범정부적인 차원에서의 통제정책을 시행했다.

이로 인해 학생과 교수들의 인권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권과 신체의 자유 등이 침해됐고, 헌법상 보장된 대학의 자치와 자율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진실화해위는 밝혔다.

진실화해위 조사결과, 사찰은 중앙정보부 학원과 관할 경찰서 정보과 직원 등 사찰요원들이 대학행정기구의 도움을 받아 학내에 상주하면서 학생 및 교수의 동향, 학생회 활동, 시위 정보 등을 파악해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포섭한 학생 '프락치' 강요..가족 이력까지 조사

이 과정에서 사찰요원들은 학생들을 포섭해 이른바 프락치 행위를 강요하고, 심지어 사찰 대상 인물(학생 및 교수)의 가족에 대한 이력까지 조사해 이를 사찰에 활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서울대생 A씨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중앙정보부 직원이 돈을 주면서 학생운동에 대한 정보를 묻기에 돈을 던져버리고 나온 적이 있다", "또 중정직원이 집을 찾아와 아들이 학생운동을 못하게 해라. 연탄을 사주겠다며 어머니를 회유했다"고 진술했다.

학생 동향 파악 '분담지도제', '교수재임용제' 통해 교수들 통제

당시 정부는 또 교수들에게 학생의 학업 이외에 개인신상까지 지도하고 이를 매학기 보고하도록 하는 '분담지도제'를 실시했고, 지도실적에 따라 분담지도비를 차등 지급하는 등 교수들을 학원통제에 이용했다.

표면상 교수들의 연구풍토 조성을 목적으로 도입된 '교수재임용제' 역시, 실제로는 이른바 '문제교수'를 대학에서 축출하려는 의도가 컸으며, 재임용 심사기준에 학생지도 능력 등이 포함돼 있어 교수와 학생에 대한 또 다른 학원통제 장치로 기능을 했다고 진실화해위는 밝혔다.

'학도호국단', '강제지도휴학'..학생들, 병영식 통제

1975년 6월 부활된 '학도호국단 제도' 또한 학원을 병영화하고 학생자치 활동을 금지하는 등 학생들을 병영식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1979년 서울대 등에서 실시된 '강제지도휴학'은 학교장이 학생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학생을 휴학시킬 수 있는 징계조치로, 학칙 위반이 아닌 시위전력이나 성향 등 그간의 사찰결과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해 강제로 휴학시켰다. 강제 휴학생 중 징집대상자는 곧바로 군대에 강제 입영됐다.

모 대학 재학 중 지도휴학을 받았던 B씨는 "시위 등 과거의 전력만으로 대상자로 분류, 강제휴학을 명한 것은 구시대의 사상범 예비검속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병무당국은 6개월 이상 수형자의 경우 징집면제 대상자임에도, 긴급조치 위반 수형학생들을 학교와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 군에 강제로 징집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결국 당국은 강제입영조치를 통하여 학원문제 관련 학생들을 학교로부터 격리시켜 군이라는 강한 통제 시스템 속에서 관리하고자 하였던 것"이라고 판단했다.

학사담당관실 설치..정부, 대학 학사행정에 개입

1975년 긴급조치 9호 시행 이후 학생회는 해체됐고, 학생들의 일상적인 생활공간인 학과는 학도호국단의 중대로 편성됐다. 모든 과외활동은 학도호국단 안에서 학교당국의 승인 하에 진행됐으며, 학생들의 자치적 활동은 감독.감시의 대상이 됐다.

이와 함께 정부는 대학에 대한 관리.감독권을 내세워 학사행정에 개입하거나 학생의 제명을 지시하는 등 지나지게 간섭.통제했고, 각 대학은 지시에 불응할 경우 재정적인 지원 등 불이익을 우려해 이에 순응했다.

1971년 문교부는 '학사담당관실'을 설치해, 각 대학에 대한 학사지도를 실시했다. 학사담당관실은 대학의 교수재임용, 교수추천제, 학사경고제, 지도교수제 운영 및 문제학생 지도실태 감독뿐 아니라, 학원사태 주동자의 처리 등에 대한 지시.감독, 축제 등 학내행사에 대한 규제업무까지 담당했다.

진실화해위, 정부와 대학당국에 관련 피해자에 사과 권고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대해 유신시대 정보기관 등을 이용한 학원에 대한 사찰 및 학사행정 간섭, 학도호국단제도를 통한 학원 통제, 강제지도휴학제도의 실시, 징집권의 변칙적인 운영 등 유신시대 자행됐던 학원탄압에 대하여 신청인 및 관련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앞으로 정치적 목적으로 학원에 대해 부당하게 간섭하는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

또 "대학당국은 당시 정부의 학원통제 정책에 편승하여 학생들의 자율적인 학내활동을 앞장서 통제하고 학생들에 대한 권력기관의 인권침해 행위를 방치 내지 방조한 부분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고, 피해학생들을 포함한 관계자들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라"고 권고했다.

아울러 지난 유신정권의 학원탄압에 책임이 있는 정부기관과 학교당국은 학생과 교직원들이 입은 전반적인 피해실태를 파악하고, 피해자들의 피해회복과 명예회복을 위한 심층적인 조사를 할 것도 함께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