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정보원의 시민단체 사찰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박원순(53)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구체적 사찰 사례를 추가로 폭로했다. 박 이사가 지난 17일 서울 평창동 희망제작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폭로한 ‘구체적 사찰 사례’들은 그를 비롯한 시민사회에 대한 국정원의 사찰과 개입이 정부차원에서 일상적이고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짐작케 해 파장이 예상된다.
박 이사가 직접 쓴 ‘진실은 이렇습니다’는 제목의 A4용지 14장에 달하는 장문에 글에는 그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폭로한 ‘지역홍보센터 위탁계약 해지’, ‘하나은행 협력관계 중단’ 외에도 국정원의 개인에 대한 사찰과 희망제작소 및 ‘아름다운 가게’가 진행하는 사업에 대한 개입 정황이 드러난 사례들이 담겨 있다.
국정원 사찰... “국정원에서 찾아와 박 변호사 자세히 탐문했다”
박 이사는 “모 재단에 가서 강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재단의 이사장께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며 “국정원에서 찾아와서 박 변호사에 대해 자세히 탐문을 했다. 너무 이상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말해주면 심란할 것 같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 해 주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박 이사가 모 그룹이 세운 재단 이사로 등재돼 있는 것과 관련해 “국정원에서 연락이 와서 월급을 얼마나 받는지,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자세히 물어보았다”고 관계자로부터 전해 들은 내용을 말했다.
국정원이 박 이사의 사회활동을 꼼꼼히 사찰해 온 흔적은 또 있다. 박 이사는 자신이 한 기업의 사외이사로 활동한 것과 관련해 “거기에서 나오는 월급은 모두 ‘아름다운 재단’과 희망제작소의 ‘아름다운 조합’과 ‘공육기금’에 기부해 왔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한 바 국정원 직원이 내 활동내역에 대해 물어보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전화가 와서 희망제작소가 공무원 교육하는 것을 자세히 파악해 보려 했던 일도 있었다”고 박 변호사는 전했다.
그는 “나는 과거 윤석양 이병에 의해 폭로된 보안사 민간인 사찰 명단에도 들어 있어, 보안사의 사찰 피해자이기도 하다”며 “20년도 더 지난 오늘날, 국가기관에 의해 이런 야만적이고 비정상적인 사찰활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저는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고 심정을 밝혔다.
국정원, ‘아름다운 가게’, ‘아름다운 커피’ 개입 의혹
박 이사는 개인에 대한 사찰뿐만 아니라, 자신이 관여한 ‘아름다운 가게’와 ‘아름다운 커피’ 등의 사업에 대한 국정원 개입 의혹도 제기했다.
박 이사는 올해 4월 ‘아름다운 커피’ 모 대학점 오픈식이 끝난 후 “국정원 직원이 그 대학 총무과를 찾아와 아름다운 가게를 왜 지원했는지를 문의했다”며 “좌파단체들의 자금줄이며 운동권 출신 직원들이 대다수인 아름다운 가게를 후원한 사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문의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한 “2009년 6월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힌 사람이 모 은행 담당자에게 전화해 ‘아름다운 가게와 무슨 관계가 있길래 오랜 시간 많은 돈을 지원했느냐’라고 문의했다”면서 “그 은행은 아름다운 가게가 벌이고 있는 특정 프로젝트를 몇 년째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2009년 5월 ‘아름다운 가게’가 경기도 한 시의 평생학습센터 요청으로 자선바자회 행사를 한 것과 관련해서도 “관련자가 ‘국정원에서 전화를 받았다. 아름다운 가게의 행사를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민간단체 개입 의혹
박 이사는 그가 관여한 사업들뿐만 아니라, 주변 인사들을 통해 전해들은 것을 토대로 정부의 민간단체 개입을 주장했다. 다음은 박 이사가 밝힌 사례들이다.
➀ 이 정부가 집권한 뒤 어느 날, 사회투자지원재단의 모 상임이사가 한번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이야기인즉슨, 나라는 존재가 정부부처로부터 사회투자지원재단이 지원을 받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 말고도 이 재단의 이00 연세대 교수도 그러하다는 것이었다. 그 교수님은 참여정부하에서 대통령 직속 무슨 위원장을 했다는 것이다.
➁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 사무총장이 저에게 전화를 해서 상의를 해 왔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자꾸 물러나라고 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실무 담당자들이 노골적으로 요청해 올 뿐만 아니라 이사장을 시켜서도 압박을 가해온다는 것이었다.
➂ 얼마 전 어떤 모임에서 사회연대은행 상임이사를 만났다. 그는 지난번 정부 지원 대상에서 사회연대은행도 완전히 배제되었으며, 그 이유는 이사진 중에서 참여정부와 친했던 인사들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➃ 더 심각한 일들도 벌어졌다. 어느 시민단체의 평생회원들 중에 한 사람은 기업의 임직원이었는데 그 사람이 국정원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어떻게 시민단체의 회원이 될 수 있느냐"는 이야기를 듣고 평생회원의 신분을 정리한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➄ 한 여성단체가 후원회를 열었는데 어느 중소기업에서 전화가 와서 "여성민우회는 불법시위단체라고 하는 명단이 와서 지원을 못하게 되어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고 한다.
➅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 소속된 변호사들에게 공공기관들의 사건을 수임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법률고문직에서 해촉된 사람들도 여러 명 있다고 들었다.
박원순 “국정원 사찰, 국정원장과 대통령의 지휘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주장
박 이사는 “사실 따지고 보면 저는 많은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특별히 반정부인사이거나 국가안보에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며 “나를 이렇게 하는 정도라면 정부의 여러 활동에 반대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에게는 오죽하겠냐”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국정원 직원의 한두 번의 실수도 아니고 이렇게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사찰과 감시가 일어나고 있다면 이것은 국정원을 운영하고 집행하는 책임자의 철학과 원칙, 기능과 활동의 방향이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국정원이 시민사회나 정치적.비정치적 영역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으며 이것을 지휘하고 집행하는 부서가 존재하며, 나아가 이것은 그 책임자인 국정원장과 대통령의 지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냐?”고 정부차원의 조직적 사찰 의혹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원래 어떤 정부의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중간 전달기관, 중간 지원기관, 이른바 인터미디어리(Intermediary)기관이 필요한 것인데 이것이 바로 시민단체이고 NGO.NPO가 아니고 무엇이냐?”며 “그런데 이런 거버넌스 시스템을 완전히 붕괴시킨 상태에서 정부의 정책이 일선과 현장에 제대로 전달될 리가 만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이사는 국정원이 ‘대한민국’을 원고로 해 명예훼손 소송을 한 것에 대해서 별도의 기자회견문을 통해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이유로 손배소송을 제기한 것은 아마 처음 있는 일일 것”이라며 “법리적으로나 형식논리로 보더라도 성립 불가능한 소송”이라고 밝혔다.
또한 “불법적인 민간 사찰로 대한민국과 국민의 명예를 심대히 훼손한 것은 바로 국정원”이라고 비난했다.
박 이사는 자신이 폭로한 ‘사찰사례’들에 대해 “제 삶과 활동을 통하여, 제가 가진 모든 양심을 걸고 증언하건데 모두가 진실”이라고 강조하면서 “기무사와 국정원의 사찰 사실은 공지의 것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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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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