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단체 '우리나라'가 일본에서 공안기관의 사찰을 받았다.

지난달 29일, 신원불상의 40대로 보이는 남성 A씨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계 '민족학교' 공연을 위해 일본 공항을 빠져 나오는 '우리나라' 멤버들을 몰래 사진촬영 했다. '우리나라' 일행에 덜미가 잡힌 A씨는 자신을 국군기무사 소속이라 밝혔고, 가방 안에선 '3급 기밀'이라고 적힌 문서가 나왔다. 공안기관의 것으로 보이는 이 문서를 통해 '우리나라' 일행들은 자신들이 공안기관으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내사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됐다.

'우리나라' 강상구 대표는 자신의 팀이 어떤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지, 더욱이 사찰주체가 왜 '기무사' 인지에 대해 '황당'해 하고 있다. 헌법(제27조 제2항)은 군인.군무원처럼 군에 속하지 않은 국민은 중대한 군사상 기밀.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군용물에 관한 죄를 범하거나 비상계엄이 선포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지 않도록 정해 놓고 있다.

▲지난 11일 저녁, 서울 마포 서교동에 위치한 '우리나라' 사무실에서 강상구 대표를 만나 공안기관의 사찰을 받은 것에 대한 심경과 함께 그들의 '음악세계'를 들어봤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강 대표는 통일부에 '북한주민접촉신고'를 하고 일본으로 갔음에도, 왜 공안기관으로부터 '사찰'을 받아야 하는지를 납득하지 못했다. 정부의 '이중적 태도'라는 거다.

일본 현지에서의 사찰뿐만이 아니다. 이미 출국 전 '우리나라' 쪽의 이메일을 감청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도 확인된다. 이메일을 통해 '우리나라' 쪽이 여행사로 보낸 문서, 일본 쪽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보내온 문서들과 '3급 비밀' 문서의 첨부자료가 거의 동일한 것이다.

"행정기관에서는 허가를 하고 수사기관에서는 그물망처럼 엮어서 뭔가를 파헤치려는 이중적 모습들을 보여주는 게 국가의 태도로는 신사적이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위험스런 느낌을 받는다면 행정기관에서 차단하면 되지... 왜 이렇게 불편하게 하고 신경 쓰게 하는지 모르겠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하는데 그게 뭔지 알 도리가 없고. 솔직하게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위반 혐의가 뭔지."

올해는 '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시작한 노래패 '우리나라'가 창립한지도 10년째가 되는 해이다. 팍팍한 경제환경 속에서도 '강산이 한 번 변할 동안' 꿋꿋히 버텨온 멤버들에게는 무척 뜻 깊은 해이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의 음악적 색깔이 '통일'이라는 원색(原色)에서 '삶과 사람'이라는 파스텔 컬러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5집 앨범을 5년 만에 발매하기도 했다.

"1집과 5집은 완전히 다르다. 1집 때는 '주한미군철거가'라는 것도 있고, 아주 투쟁적이다. 아주 격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저는 30대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20대 중후반이었다. 가슴이 뜨거울 때다. 대학에서의 여운이 남아있는 혈기왕성했던... 작년에 5년 만에 음반을 냈는데,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아픔, 사색, 사랑, 삶에 대한 얘기들을, 우리가 30대 후반에서 40대를 넘어가는 시점에서 우리 스스로 돌아보고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해서 '삶과 사랑'이라는 주제이다."

공안기관의 사찰을 받은 이번 일본 공연에서도 5집 앨범이 공연의 주축이었다. 강 대표가 '우리나라'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와 재일동포 공연 사찰을 납득하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다. 게다가 사찰대상이 된 재일동포들을 위한 공연은 노래 '고향의 봄' 한 구절에도 공연자나 관객이나 모두 눈물을 쏟아내는 자리였다.

지난 11일 서울 마포 서교동에 위치한 '우리나라' 사무실에서 강상구 대표를 만나 공안기관의 사찰을 받은 것에 대한 심경과 함께 그들의 '음악세계'를 들어봤다.

"한쪽에선 허가, 한쪽에선 사찰... 정부, 이중적 태도".. '이메일 감청' 흔적까지

▲문화예술단체  '우리나라'  강상구 대표.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통일뉴스 : 일본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강상구 대표 : 우리나라가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일본 효고현 고베시에 있는 민족학교 '고베조선고급학교'를 방문했다. 

올해가 개교 60돌이 되는 해이다. 이 학교의 시설이 낙후되고 설비부분이 좋지 않기 때문에 보수공사를 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 개교 60돌에 즈음해서 공사비도 마련하기 위해 자선기금 마련 공연을 학교 어머니회가 주축이 돼서 사업을 진행했다.

그곳의 초청으로 학교에 갔고, 물론 그 전에 통일부 허가를 받았다. 서신 교환부터 시작해서 모든 부분에 대해 허가를 받고 갔는데, 도착한 날이 29일이었고 공항에서 나온 시간이 대략 12시 정도 즈음이었다.

그런데 공항 안에서 낌새가 이상한 게 있었다.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확하게 우리를 찍는 건지 아닌지 확실치 않았는데, 공항 출구를 나와서 우리를 환영해 주시는 분들하고 인사를 하고 있을 때 우리 단원 중 한 명이 사찰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사진 찍던 사람 옆으로 가서 보니까 우리를 찍는 것으로 확인이 되서 실랑이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우리말을 못하는 것처럼 얘기했다. 일본어 몇 마디하고, 우리말로 물어보면 못 알아듣는 것 같이 얘기를 했는데. 우리나라 식구 중에 일본어를 잘하는 친구가 있다. 일본어로 물어보니까 그것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거다. 실랑이를 벌이다가 어디서 나왔는지, 신분을 물어봐도 계속 못 알아듣는 척해서 "자꾸 그러면 경찰을 부르겠다. 국가 간의 문제로 발생하는 것이 좋겠냐. 아니면 순순히 협조를 하겠냐" 그러면서 "국정원에서 나왔냐"고 한국말로 물어보니까 대답을 하더라.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아니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럼 어디서 나왔냐고 물어보니까, 기무사에서 나왔다는 얘기를 했다.

다만 국정원이 아니라고 의사표현을 하는, 고개를 가로젓는 장면까지는 동영상으로 찍었는데 기무사라고 대답하는 부분은 일본 경찰이 오는 과정에서 찍지를 못했다. 몸수색을 일본경찰이 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일본경찰이 오기 전 우리와의 실랑이 과정에서 우리가 그 사람 가방에서 자료를 확보했는데 '3급 비밀'이라고 적혀 있는 문서였다. 우리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내사 중이라고 하더라.

신원을 알기 위해서 일본경찰을 요청했는데, 일본 경찰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은 "저 사람의 신원을 정확히 알려면 당신들이 확보한 물건들을 돌려줘야 할 수 있다"고 해서 다 돌려줬다. 사진기도 돌려주고. 돌려 준 다음에 일본 경찰서까지 갔다. 수사관하고 이야기를 해서 신원을 알아내고자 했는데, 그쪽 경찰 말로는 "당신이 저 사람한테 피해를 입었다는 명징 근거가 없다. 일본법 내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면서 "강제적으로 저 사람의 신원을 알아내서 당신들한테 알려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었다. 일본 경찰이 몸수색을 했는데 안 나온 것으로 봐서는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고.

▲'우리나라'는 지난 16일 오전 민주노총 6층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기무사 불법사찰'관련 동영상을 공개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공안기관의 사찰을 받았는데.

■ 국가기관이라는 것 자체가 행정기관이 있고, 수사기관이 따로 있어서 자기역할이 물론 다르겠지만, 행정기관에서는 허가를 하고 수사기관에서는 그물망처럼 엮어서 뭔가를 파헤치려는 이중적 모습들을 보여주는 게 국가의 태도로는 신사적이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위험스런 느낌을 받는다면 행정기관에서 차단하면 되지, 보내 줄 때는 언제고 다른 기관에서는 내사라고 조사를 하나. 처음부터 보내주지 말든가. 왜 이렇게 불편하게 하고 신경 쓰게 하는지 모르겠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하는데 그게 뭔지 알 도리가 없고. 솔직하게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위반 혐의가 뭔지.

□ 비밀문서에 단원들의 신상과 항공 출국 정보, 공항 입출국장과 공연장 도면 등도 함께 들어 있다고 했는데.

■ 이메일을 감청한 걸로 보인다. 문서양식이 우리가 이메일로 여행사에 보낸 양식과 형식적으로 유사하다. 폰트와 순서만 바뀌고. 이메일 감청 증거로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우리한테 보내온 문서를 보면 'CD판매'라고 적힌 게 있는데 첨부 된 문서에도 똑같이 씌여 있다. '뒤처리'라는 말도 우리나라 사람이 썼다면 아마 시옷(ㅅ)받침을 썼을 것이다. 기밀문서의 참고문서로 된 부분을 보면 '뒤처리'라고 적힌 말이 있다.

□ 공항에서 사찰을 하던 이가 자신을 기무사라고 밝혔다고 했는데.

■ 너무 황당한 얘기다. 기무사는 기본적으로 군내에서의 정보활동 등을 자신 본연의 임무로 할 텐데. 저는 군인도 아니고, 친척을 포함해서 제 주변에 군인으로 있는 사람도 한 명도 없다. 제 신분이 군인도 아닌 상태에서 저를 기무사가 사찰을 했다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패킷감청이다 도감청이다 이런 것들이 과거 정부보다 훨씬 활발한 것으로 봐서는 기본적으로 국민 대다수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사찰의 근거나 범위가 명백해야 할 것 같다.

아무 이유도 없는데 이렇게 사찰을 하는 부분들은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다. 설사 우리가 위법적 공연, 반정부적, 친북적 공연을 했다고 얘기를 한다면 우리는 당당하게 공개할 수 있다. 전혀 그런 내용이 없다. 티끌만큼도 없다. 동포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일본땅에서 살아가는 동포들의 애환을 달래주고 우리말과 글, 민족문화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찬사를 보내고 박수를 쳐주고 힘을 내라는 것 정도지 다른 내용은 전혀 없다는 거다. 공개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있는데, 왜 사찰을 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강상구 대표는 "제 신분이 군인도 아닌 상태에서 저를 기무사가 사찰을 했다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최근 폭로된 기무사 S 대위의 '민간인 사찰 수첩'에서 재일 민족학교에 책 보내기 운동을 하는 '뜨겁습니다'와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 관계자들이 사찰 당한 것으로 밝혔다. 우리나라가 이들과 관계를 맺어 왔나?

■ 예전에 '뜨겁습니다' 분들이 책 보내기 운동 사업을 진행하면서, 문화사업으로 우리나라나 이런 팀들 하고 같이 문화사절단처럼 해서 공연을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몇 번 받았다. 2007년 4월에 우리가 일반 시민분들한테서 기금을 마련했다. 이것은 <CBS>에도 보도가 됐다. 재일동포 분들이 일본의 우익이나 이런 사람들한테 테러를 당하고 치마저고리가 찢기고, 고베나 시가 지역이나 오사카 지역이나 일본 전역에 경찰들이 들이닥쳐서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 것들로 인해서 동포들이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전까지 재일동포들과 교류나 공연사업들을 많이 해 온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 분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뜨겁습니다'와 영화 '우리학교' 팬까페 등이 재일동포들을 위한 공연의 기금 마련에 도움을 줬다. 직접적으로 도와주기 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홍보를 해줬다. 그러면서 만나서 인사도 하고 친분을 쌓는 기간이 있었다. 저희가 그때 천만 원이 넘는 금액을 정말 짧은 시간에 모금을 해서 그걸 가지고 고베, 시가, 오사카, 센슈, 와카야마 등 6개 지역을 순회 공연했다. 그때의 인연이다.

올 4월에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 백창화 씨한테서 연락이 왔다. 어린이도서관협회가 일본 기후지방 기후조선초급학교에 가서 책을 증정하는 사업이 있었는데, 그걸 계기로 해서 한류콘서트라는 걸 기획했다. 거기 가서 조선학교 사람들 만났다. 조선학교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자체는 국내법상으로 위법이기에 갑작스럽게 만났기에 다녀와서 사후 신고를 했다. 그러고 나서 고베 사업이 진행이 됐던 거다. 어린이도서관협회의 백창화씨나 '뜨겁습니다'나 이런 사람들하고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만난 적은 있는 거다. 이것을 기무사 사찰의 근거가 된다라고 한다면 이해할 수 없다.

□ 수첩에 기록돼 있는 1월 8일 출판기념회에도 참석했나?

■ 아니다. 다만, 정확히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데, 1월에 우리 식구들하고 술을 한잔 하고 있었는데 동포 분이 와 있으니까 술 한 잔 하자고 해서 가서 만난 적은 있다.

□ 수첩에 기록된 사찰 기간인가?

■ (정확한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뜨겁습니다' 대표와 통화를 한 후) 사찰 기간은 아니다.

□ 기무사에서 현역군인과 관계가 있다는 해외교포 A씨는 알고 있나?
■ (1월 술자리)그날 처음 만났다. 이게 관련이 있다면, 기무사에서 '뜨겁습니다'를 사찰하다가 '어, 이상한 녀석이 나오네. 강상구라는 놈도 있네' 하며 우리나라를 조사하는 황당한 상황일 수도 있다.

▲공안기관으로부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우리나라 단원들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말할수 없이 크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데.

■ 결백하다. 우리의 공연내용이나 공연할 때 발언이나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는 위법한 수준을 우린 넘어서 본 적이 없다. 우리가 공연을 하고 다닌 공간도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에서도 공연을 했고. 이번 5집의 경우, 정치적 내용이 전혀 없는 음반이다. 또 설사 정치적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예술분야가 다루는 폭은 한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분야가 필요하다면 다루는 것이다. 감상하는 사람은 취사선택 하면 된다.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술이라는 것이 폭넓게 작용해서 인간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인데 어떤 재단으로, 우리의 예술활동을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으로 위반이라고 한정지어 그 부분만을 파는 것은 저열한 방법이다.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도 수준이 없다고 봐야 한다. 그들 주장대로라고 하면 예술작품 모든 부분에 대해서 공안기관에서 내용적 감정을 받아야만 안전하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이 되는 것인데, 거기에는 어떤 예술가도 동의할 수 없다.

"통일만 노래해선 진짜 통일이 될 수 없겠더라"

□ 우리나라는 정규앨범을 다섯 장 낸 보컬그룹이다.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음악은 어떤 것인가?

■ 우리나라는 99년에 구성했다. 당시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음악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 같은 경우는 학교를 다니면서 음악을 할 때, 경기남부에서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제주도에서까지 바쁘게 살았다. 각 지역의 음악적 지향이 있는 친구들 몇몇을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한테 우리나라 결성 제안을 했다.

우리가 꿈꾸는 음악은 초기 처음 모일 때는 통일음악이었다. 통일음악도 많이 불렀지만, 통일만을 화두로 공연을 한 적은 1년 정도에 지나지 않더라. 점점 시민사회단체, 노동현장으로 확대가 됐고. 4-5년 전부터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일반시민과 호흡할 수 있는 음악들을 많이 만들어서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음악을 하다보면 어느 한 분야에만 국한돼서 완성도를 높이려는 사람도 있지만, 음악에 몰입을 하다보면 욕심이 커진다. 음악적 숙련도가 높아지면서 점점 탈피하고 싶은 게 많아지고 음악적 가치와 지향은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형식이나 내용, 만나고자 하는 대중도 점점 확대가 되기 마련이다. 자가발전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5년 만에 음반을 냈는데,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아픔, 사색, 사랑,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우리가 30대 후반에서 40대를 넘어가는 시점에서 우리 스스로 돌아보고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해서 '삶과 사랑'이라는 주제로 담았다. 거기에는 정치적 내용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 음반을 가지고 꾸준히 활동을 하는 것이고. 이번에 일본 고베에 가서도 공연을 한 것도 그 노래들이 주축이었다.

□ 우리나라의 '테마'가 변한 것 같다.

■ 테마가 변한 거다. 통일에서 사람으로. 통일만 노래해서는 진짜 통일이 될 수 없겠더라. 그거 가지고는 누구와도 만나기 어렵고. 현실자체가 그렇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그런 테마를 가지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 그렇다면 '우리나라'라는 팀 이름에 대한 고민도 있겠다.

■ 지금 논의하고 있다. 고민만 있다. 우리의 변화된 지향, 가치와도 유사하다. 과거에는 통일지향의 음악들로 우리의 음악적 가치를 하려고 했다면, 지금은 통일을 이루려면 사람을 형상해야 하기에 우리 이름도 통일이라는 것과 맞았던 우리나라가 아니라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을 하고 있다.

▲홍대 근처 연습실에서 공연 준비가 한창인  '우리나라'  단원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5집 앨범에서 우리나라의 가치 지향점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노래는?

■ '나무를 꿈꾸며'란 곡이다. 대부분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들의 고민들, 어려웠던 것들, 하지만 새롭게 해보려고 하는 이런 것들이 많이 담겨 있다. 함축적으로 담긴 게 '나무를 꿈꾸며', '후회', '꽃이 되고 싶었어' 이런 것들이 우리 내면을 많이 드러냈다. '나무를 꿈꾸며'는 마치 통섭적인 작품인데, 하나의 씨앗이 나무가 되는 과정처럼 비바람이나 폭풍우나 이런 속에서도 조그만 싹 자체는 꺾이지 않지 않나? 인간이 뽑지 않는 한. 자연 속에서 거친 풍파를 겪고 나무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런 것들에 앞으로 음악을 어떻게 해 나갈지의 자세, 지향이 담겨 있다. 지금은 씨앗이지만 나무가 되고 싶은 거다.

우리 안에서는 이름을 바꾸고 음악적 색깔을 논하고, 이런 음악적으로 초점을 맞춰서 계속 변화하고 발전할 것 같다. 멤버들이 흩어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올해가 10주년인데 너무 많은 어려움과 역경을 겪어 와서. 지금보다 더 어려운 일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제일 큰 게 생활고이니까.

□ 우리나라의 음악적 색깔이 명확하게 바뀌게 된 경계선은 4집과 5집인가?

■ 1집과 5집은 완전히 다르다. 1집 때는 '주한미군철거가'라는 것도 있고, 아주 격하고 투쟁적이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 저는 30대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20대 중후반이었다. 가슴이 뜨거울 때다. 대학에서의 여운이 남아있는 혈기왕성했던. 그래서 정치적으로 사회의 모순들이 발견이 될 때는 여과 없이 그대로 음악을 만들었을 때다. 그때가 시각을 여과 없이 송곳처럼 만들었었다고 하면 지금은 송곳을 끝에서 보면 날카롭지만, 송곳 옆에서 볼 줄 아는 시각으로 이동이 된 것이다. 사회에 대한 형상을 늘 다른 시선으로 해 보려고 하고 있다.

진보진영, 운동진영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관점도 많이 변화가 됐다. 시선을 바꾸다 보니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추구하는 음악적 지향에 대한 변화는 크게 없다. 다만 음악적 색깔을 변하게 하려는 거고, 자기 색깔을 명징하게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거다.

1집부터 4집은 조금씩 다르다. 조금씩 변화한다. 그런데 4집과 5집은 5년 만에 내는 과정에서 변화의 폭이 크다. 앞으로 6집을 낸다고 하면 우리나라 음악에서 1집에서 4집까지의 음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이제 우리는 대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들, 더 국한 지으면 대학교 운동권이 좋아할 만한 음악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운동적으로도 우리의 음악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대학생들이 하면 되는 문제다. 나이를 마흔 먹었는데 대학생들의 정서를 알지도 못할뿐더러, 그 정서를 대변할 거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자가당착이다.

우리는 40대, 보편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그들이 어떤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만들어서 노래를 하고 싶다. 그런 노래를 가지고 통일현장이든 노동현장이든 어디서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선이 바라보는 통일도 더 이상 20대 운동권이 바라봤던 시각만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바라볼 수 있는 통일에 대한 이야기, 시선을 음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통일로도, 음악적으로 우리에게도 발전이 있다. 그렇게 바꾸는 과정이고 많이 바뀌어져 있다.

□ 우리나라의 지향점을 좀 더 폭넓은 대중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 맞다. 통일에 대한 부분도 보다 많은 시민들이 접수할 수 있는 형상을 택하겠다는 거다. 우리 문화운동에 대한 한계가 거기에 있다. 조직화된 대중들, 집회 앞에 모여앉아 있는 사람들만을 놓고 하는 문화운동을 그동안 많이 해 왔다. 그래서 문화운동에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들이 아니라, 그 사람 뒤편에 있고 그냥 걸어가는 시민들의 발길도 붙잡을 수 있는 형상과 접근법을 택해야만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작품생산이 가능하다. 그렇게 시선을 바꾸는 일이 저희한테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노력을 많이 했고 성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 세칭 분류로 인디와 대중음악 사이에 또 다른 영역을 만들려는 시도로 이해해도 되나?

■ 그렇게 나누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인디적 가치에 대한 부분들, 인디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대중음악을 안 하겠다는 것이라고 해서 배타적이라는 게 아니라 대중음악이 취하고 있는 상업적 룰, 마켓팅 등으로부터 자유롭게 자기의 지향과 가치를 가지는 음악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저희도 동감을 하고 그런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런 가치 지향적 부분은 인디와 동일하다.

저는 대중음악하고 민중음악을 나누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고, 그리고 그걸 자꾸 나누려고 하는 사람들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제든지 대중 음악판으로 우리는 갈 수도 있다. 다만, 대중 음악판에서 음악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을 노력할 따름이고, 그들의 시스템에 동화될 생각은 없다. 지금 현재로는. 우리의 가치, 삶에 대한 시선을 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우리 안에서 자체적으로 살면서 나이가 들고 늙어가면서 상업적 룰에서 우리의 것들을 용인해 준다면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투쟁판에서 불리면 민중음악이고 TV에 나오면 대중음악인가? 철학이 있으면 민중음악이고 돈을 추구하면 대중음악인가? 이런 이분법적 생각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경계하고 반대하는 입장이다.

▲  강 대표는 "우리나라는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따뜻한 음악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다"라며 "우리의 가치, 삶에 대한 시선을 놓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우리나라'라는 밴드는 '이런 밴드다'라고 정의한다면.

■ 한 명씩 한 명씩 40대 문턱을 넘어가고 있는, 그러나 마음은 젊은...(웃음)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따뜻한 음악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측면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보컬그룹이다. 보컬그룹이기에 각자 다섯 명이 독자적 색깔이 있으면서 팀으로 모이면 팀의 또 다른 색깔들이 펼쳐지는 다이나믹한 팀이다. 대신 추구하고 있는 음악자체는 사람에 대한 것, 사람이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이고, 특히 5집은 대부분의 내용이 사람의 삶과 사람이 사랑하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을 담고 있는 것이다.

형식으로 치면 팀 전체로는 포크 보컬 그룹이라고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다 다르다. 예를 들면 백자씨는 모던락 쪽 계열의 음악을 하고 있고, 공연도 채우기 보다는 비우는 음악을 하고 있다. 혼자 기타만 들고 한다든지, 단출하고 어쿠스틱한 맛을 가미해서 하고 있고. 현재 홍대클럽에서도 공연을 하고 있다. '작은나무'라고 하는 성미산마을 까페에서도 꾸준히 공연을 하고 있다. 자기활동의 영역이 따로 있다. 이혜진 씨는 애니메이션 '하얀물개'의 주제가도 불렀다.

"재일동포, '고향의 봄'이란 노래만 불러도 눈시울이 그렁그렁..."

□ 재일동포 공연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 2002년도에 금강산에 있었던 6.15 행사에서 공연을 했다. 남북해외가 다 모인 자리인데 그때 재일동포를 만난 거다. 거기서 만나서 우리공연을 보고 초청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받았다. 그 뒤 2003년 10월에 일본에서 첫 공연을 시작했다.

□ 재일동포 공연을 할 때 느낌이 남다를 것 같다.

■ 공연을 할 때마다 100이면 100 저희는 다 운다. 처음에 충격을 많이 받았다. 우리가 이렇게 재일동포들을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하급수적으로 동포수가 줄어들고 있다. 우리말과 글도 점점 없어지는 게 사실이고. 동포들의 삶이라는 게 할 수 있는 게 많지가 않다. 생활고도 어마어마하고. 그러면서도 동포사회를 지켜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다.

총련이다, 민단이다 이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 만나려고 노력도 하고. 한국의 정치현실 때문에 가장 많은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일본에 있는 동포들이다. 남과 북이 화해가 되고 분위기가 좋으면 거기서도 총련과 민단이 화해가 된다. 한번은 같이 공동으로 만나고 악수도 하고 이런 장면도 있었다. 사이가 나쁘면 똑같이 나빠진다. 사이가 좋으면 동포수도 늘어나고, 동포들하고 결혼하려는 횟수도 늘고. 나쁘면 일본사람과 결혼하는 거다. 왜냐면 핍박을 너무 많이 받으니까.

재일동포들 중에 경상도 사람들이 제일 많다. 제주도도 좀 있고. '고향의 봄'이란 노래만 불러도 눈시울이 그렁그렁하다. 우리민족의 정서를 갖고 있는 게 풍물이기에, 꽹가리 북 장구 치면서 맨 마지막을 풍물편으로 끝낸다. 10분짜리다. 아리랑도 들어가고 우리가 만든 노래도 들어가고 통일을 하자, 우리가 통일을 해야 모두가 행복하다, 춤도 추게 만들어내는 그런 음악이다. 그거는 여기서는 불러도 감흥이 없을 만한 음악일 수 있다. 거기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게 우리 공연의 피날레고. 그거를 끝내고 나면 많은 동포들이 몸에 땀이 젖어 있고, 감동을 한다.

동포들의 삶의 이야기, 꿋꿋하게 견뎌 줘서 고맙습니다, 좋은 세상이 와서 민족이 힘을 얻고 남과 북이 통일되고, 일본 사람들한테 핍박받지 않으면서 언제든지 북이든 남이든 원하면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지금의 눈물을 거둘 수 있을 것이란 내용들을 많이 노래한다. 이지상씨가 만든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라든가 이런 걸 부르면 울지 않을 수가 없다. 우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운다. 굉장히 감동적이다.

▲강 대표를 비롯한 '우리나라' 단원들은 공안기관이 재일동포 공연을 사찰하려고 했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공안기관이 우리나라의 재일동포 공연을 사찰하려고 했다.

■ 정부가 보내줬으면 믿고 보내줘라. 불안하면 보내지 말고. 뭐 하러 보내놓고 사찰하냐는 거다. 관계기관이 협의해서 통일부에서 허가하지 않도록 하든가. 허가는 허가대로 해주면서 의심스러우니까, 이런 혐의가 보이니까, 내사를 한다는 것은 치졸하다는 거다. 국가정책을 펴는 입장에서 일반시민들을 놓고, 마치 덫을 놓고 '그래, 말 한마디 잘못해 봐라. 잡아야지' 처럼. 그게 뭔가, 막걸리 보안법이지. 불법적으로 잠입.탈출할 사람들이 아니다. 치졸하다. 신고할 것 정확하게 신고하고 가면 문제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했는데도 문제를 삼으니까 너무 불쾌하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음반을 많이 사줬으면 좋겠다는 게 있고.(웃음) 음반시장 많이 어렵지만 우리 쪽 진영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그 이상으로 어렵다. 우리는 끊임 없이 변할 것이다. 물론 저는 저 혼자 변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식구들의 모든 합의에 의해서 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데, 우리는 끊임없이 변할 거다. 변화를 잘 지켜봐줬으면 좋겠고. 그것이 우리 문화,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정체성을 더 키워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심 있게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