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마침내 베일에 쌓여있던 ‘유성진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정부의 조사결과 발표를 접한 기자들은 깜짝 놀랐다. 사건 자체의 내막도 놀랍거니와 ‘솔직한’ 정부의 사건내막 공개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세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사건의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 통일부, 국가정보원 합동으로 조사반을 구성, 8.14~20간 유씨가 입원중인 서울아산병원에서 억류 경위 등에 대해 조사했다”며 △사건 개요 △체포.억류 경위 △북측 조사 상황 △석방 경위 △결론에 걸쳐 자세히 밝혔으며, 억류시 북한 통지문 요지(3.30)와 석방시 북한 구두 통지문 요지(8.13)까지 친절하게 덧붙였다.

특히 “공단내 숙소 청소를 담당한 북한여성 이모씨와 업무상 잦은 접촉으로 친분이 두터워지자 영화CD.MP3.화장품.손목시계 등을 선물하며 교제해오던 중 이모씨에게 수차례에 걸쳐 북한 최고지도자 사생활.탈북실태 등 북한 정치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이 일부 포함된 편지를 전달하였다”다거나 1998년 리비아 근무시 북한여성 정모씨와 교제하며 탈북을 모색했다는 등 생생한 내용이 담겨있다.

또한 “북측 최고지도자에 대한 비판 등 혐의를 인정”하고, “리비아 건과 관련해서는 북측 강요로 남한 정보기관의 지시를 받고 활동하였다는 허위진술서를 작성한 후 석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도 인정했다.

물론 “조사관 및 경비요원 등이 반말.욕설 등 언어폭력을 수시로 행사하고 무릎 꿇어 앉히기(총 10여회, 매회 3-5분간) 등 강압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든가 “리비아건과 관련해서는, 북측으로부터 남한 정보기관의 지시를 받고 활동하였다는 허위 자백을 집요하게 강요”받아 단식투쟁까지 벌이다 결국 인정하고 ‘허위 진술서’를 작성해줬다는 이야기도 포함돼 있다.

이날 정부 합동조사단 발표는 통상적으로 정부가 정보관련 사안을 브리핑할 때 비교적 엄격한 정보통제를 실시해온 것과는 확연히 비교돼 그 배경에 오히려 의혹이 제기될 정도였다.

“개인의 인권과 관련 한 문제를 굳이 정부가 알려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제기됐고, “보도 가이드라인은 없느냐”는 질문이 나올 정도였지만 통일부 관계자는 “배포한 자료는 보도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세간의 의혹들이 많아 상세히 브리핑한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고 “있는 그대로를 공개했고, 목적의식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며 “그 정도는 발표해야 앞뒤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서 한 것일 뿐이다”고 답했다.

기자들의 눈이 삐딱한 때문일까? 혹시 최근 일련의 남북관계 급진전이 이날 ‘친절한’ 발표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혹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남북 모두 ‘유씨 문제’는 털고 가야 할 사안이고, 연안호 문제나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도 마무리돼야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관계 개선이 현실화 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음이 분명하다.

남측 정부가 이례적으로 자세한 사건의 전말을 공개하고 “금번 사건에서 유성진은 북한여성 교제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개성.금강산지구 출입 체류에 관한 합의서’를 일부 위반하였다”고 인정했고, 유씨가 “북측 최고지도자에 대한 비판 등 혐의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더구나 북측도 ‘강압적 조사’를 통해 ‘남한 정보기관의 지시를 받고 활동하였다’는 유씨의 진술을 확보하고서도 지난 13일 유씨를 추방할 때에 최종 통지한 ‘범죄행위’에는 △수차례 우리 국가의 정치체제 비방 내용의 문서 조작 유포, △퇴폐적인 출판물 및 녹화물 밀반입 유포, △공화국민 유괴 시도 만 명시됐을 뿐 이 대목이 빠졌다.

남측의 대부분 ‘범죄행위’ 인정과 북측의 ‘정보기관원 혐의’ 삭제가 눈길을 끌고, 이로써 136일 간의 ‘유씨 사건’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겨졌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정부의 ‘친절한’ 브리핑이 남북관계에 적용되는 순간 구구한 억측과 해석이 나도는 우리의 현실이 비감하지만 정부가 그런 오해를 살만한 행보를 걸어오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부디 정부의 발표대로 모든 것이 그저 단순한 사실(fact)이기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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