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서 영면에 들기 전 40여년 동안 '사랑하는 아내' 이희호 여사와 함께 한 동교동 사저를 둘러봤다.
그토록 열망했던 대통령에 당선돼 취임식을 했던 국회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사저 골목에 도착하자, 생전에 다니던 서교동성당의 성가대가 '고통도 없으리라', '불의가 세상을 덮쳐도' 등 15곡의 성가를 부르며 맞았다.
생전 참 많이도 아꼈다는 손자 종대 씨가 고인의 영정을 들고 사저로 들어갔다. 이 여사 등 가족들은 진달래꽃이 흐드러지던 정원에 멈춰섰다. 이 여사는 이제 이 집에 '남편'이 없다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나는 듯 손자가 할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사저를 둘러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평소 즐겨 앉았던 소파에 잠시 머무른 김 전 대통령은 곧바로 2층 침실에 들렀다. 김종대 씨는 고인의 영정을 침실 앞 의자에 올려놓으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김 전 대통령이 영면에 들었지만 5평 남짓한 서재는 아직 그대로다. 책상 위에는 연설하지 못한 '최후의 연설문'인 주한 유럽연합 상공회의소 연설의 줄거리가 적힌 원고가 그대로 놓여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 휘호로 '진실로 그 가운데를 취하라'는 뜻의 '윤집궐중(允執厥中)'이라고 적힌 족자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폐렴증상으로 지난 7월 13일 입원하기 전 김 전 대통령이 읽었을 『조선 왕조 실록』, 『제국의 미래』, 『오바마 2.0』도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문명의 충돌』, 『제3의 물결』, 『오늘의 북한』 등 500여권의 책이 꽂혀 있는 책장 뒷편은 하루 4시간 주 3번 투석치료를 받은 치료실이다. 간이침대 옆 진열장에 故 김수환 추기경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등과 찍은 사진이 있다.
형광등 버튼 6개 중 2개만 사용할 수 있게 해 놨고, 방안 보일러 온도표시계 위에는 '18-22도 적정온도'라고 적혀 있다. 평소 검소하게 살았던 고인의 면면이 엿보인다.
김대중도서관을 끝으로 20여분 간의 마지막 사저 방문을 마친 뒤, 시민들과의 마지막 인사를 위해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명창 안숙선의 창으로 흘러나오는 이 여사가 관에 넣어 고인과 함께 보낸 '마지막 편지'가 영원한 이별의 시간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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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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