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단장으로 한 북측 ‘특사 조의방문단’이 청와대를 예방해 이명박 대통령을 접견하고 북으로 돌아갔다.

이날 북측 특사조문단의 청와대 예방은 예상된 사안이었지만 추진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고, 결국 일정을 하루 연장한 끝에 주요국 조문단 접견의 일환이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22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하에 현인택 장관과 외교안보 참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오찬 회의에서는 일부 접견 반대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북측 특사조문단의 남측 체류 일정을 하루 연장하고, 장례위원장인 한승수 총리의 주요국 조문단 접견을 이명박 대통령이 대신하는 것으로 변경해 23일 오전 주요국 조문단 접견의 형식으로 북측 특사조문단의 접견이 이루어졌다.

청와대 당국자는 23일 북측 특사조문단의 대통령 접견이 끝난 뒤 배경설명을 통해 “이날 면담은 미국, 중국, 일본 등 각국 조문단 접견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북 조문단에 대한 접견 뒤에 10시부터 바로 고노 요헤이, 탕자쉬엔, 올브라이트 등이 접견했다”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한마디로 얘기하면 ‘패러다임 시프트’(사고틀 전환, paradigm shift)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물론 남북관계라는 게 여러 측면에서 특수한 관계다. 그렇지만 이제 남북관계도 특수한 관계의 틀을 벗어나서 국제적인 보편타당한 관계로 발전해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승급, upgrade)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남북관계 틀이 바뀌어야 한다고 일관되게 말해왔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따라서 굳이 북측 특사조문단의 일정을 하루 늦춰가면서까지 여러 나라 조문 외교사절단의 하나로 북측 특사조문단을 맞는 것이 ‘패러다임 시프트’이고, 이것이 바로 ‘보편성’과 ‘국제 관례’를 적용한 것이라는 논지다.

그러나 이는 남북관계가 특수관계이자 일반관계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객관적 현실을 도외시한, 탈선한 ‘패러다임 시프트’에 불과하다.

특히 북측은 ‘특사 조의방문단’이라는 명칭에서 보여주듯 단순한 조문단이 아니라 ‘특사’ 자격을 부여받고 왔음을 명백히 밝혔고, 실제 이명박 대통령과 면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도 “우리 정부의 일관되고 확고한 대북 원칙을 설명한 뒤 이를 김 위원장에게 전해 달라고 당부”함으로써 특사 자격을 인정했다.

특사는 양측 최고지도자의 의사나 메시지를 서면이나 구두 형식으로 전달하는 것을 기본임무로 하고 있음은 상식에 속한다.

따라서 특사 자격의 북측 특사조문단 일행을 다른 나라 조문단과 같은 의전형식으로 응대해야 남북관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더구나 우리말도 아닌 ‘패러다임 시프트’니 ‘업그레이드’니 하는 영어를 구사하는 것도 공직자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

분명 지난 기간 남북관계가 미숙하고 특수관계와 일반관계가 균형감을 부분적으로 상실한 측면도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특수관계를 무시하고 일반관계로 북을 대하는 것이 ‘패러다임 시프트’요 남북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라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1991년 남북합의서 채택 당시부터 남북 공히 인정했듯이 남북은 ‘통일지향적 특수관계’임을 상기할 때 남북관계 발전은 특수관계와 일반관계의 적절한 균형점 속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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